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쾌청한 하늘과 맑은 바람이다. 덜컹이는 기차를 타고 이름 모를 간이역에 내려 나그네처럼 서성여보는 건 어떨까. 경춘선 열차를 탄 당신이라면 ‘김유정역’에서 무작정 내리시라. 작은 역사의 서정적인 가을 풍경도 메마른 마음을 적셔주지만, 그 앞에 펼쳐지는 문학향취 그윽한 소설 속 무대는 당신을 가을나그네로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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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유정문학촌 |
역명에서도 알 수 있듯 이 곳, 춘천시 신동면 실레마을은 ‘1930년대 한국 소설의 축복’이라 평가받는 소설가 김유정(1908~1937)의 고향이다. 마을 전체가 작품의 산실이며 현장이다. 그래서 역이름까지 1914년부터 사용했던 "신남역"을 2004년 12월1일부터 "김유정역"으로 바꿨다.
역에서 나와 5분 정도 거리에 생가와 전시관이 있는 김유정문학촌이 있다. 책을 펼쳐든 김유정동상이 있고, 그 동상이 내려다보는 앞뜰에는 정자와 연못, 야생화가 가을볕 아래 어우러졌다. 뜰에 서면 그의 고향마을인 실레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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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제가 열리는 실레마을 |
‘나의 고향은 저 강원도 산골이다. 춘천읍에서 한 이십 리 가량 산을 끼고 꼬불꼬불 돌아 들어가면 내닿는 조그마한 마을이다. 앞뒤 좌우에 굵직굵직한 산들이 빽 둘러섰고 그 속에 묻힌 아늑한 마을이다. 그 산에 묻힌 모양이 마치 옴팍한 떡시루 같다 하여 동명을 실레라 부른다. 집이라야 대개 쓰러질 듯한 헌 초가요, 그나마도 오십호 밖에 못 되는, 말하자면 아주 빈약한 촌락이다…’
1936년 "조광"(5월호)에 김유정이 발표한 수필 <오월의 산골짜기>에는 이렇게 고향마을을 묘사하고 있다. 그가 발표한 31편의 소설 중 12편의 무대가 모두 이 곳이다. 금병산자락 아래 잣나무숲 뒤쪽은 <동백꽃>의 배경이다. 맞은 편 언덕에는 김유정이 움막을 짓고 아이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친 야학터가 있다. 마을 가운데 잣나무숲으로 들어서면 실존인물이었던 <봄·봄>의 봉필이 영감이 살았던 마름집이 있다. 점순이와 성례는 안시켜주고 일만 부려먹는 데 불만을 느낀 ‘나’가 장인영감과 드잡이를 하며 싸우는 모습이 절로 그려지는 곳이다. 그 옆으로 김유정이 세운 간이학교 금병의숙이 있고, 건물 옆에는 당시 김유정이 기념으로 심은 느티나무가 아름드리로 자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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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백꽃 단행본들 |
이 밖에 <산골나그네>, <총각과 맹꽁이>, <소낙비>, <노다지> <금 따는 콩밭>, <산골>, <만무방>, <솥>, <가을> 등의 작품이 실레마을을 무대로 하고 있다.
여유있는 걸음이라면 실레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는 금병산(해발 652m)에 올라 김유정의 소설 제목을 딴 등산로를 거닐어보는 것도 의미있다. ‘동백꽃길’, ‘금따는 콩밭길’을 거닐며 점순이, 덕돌이, 덕만이, 뭉태, 춘호, 근식이 등 작품 속 등장인물을 불러보는 것도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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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이역 이름은 김유정 |
김유정은 해학적인 그의 작품과 달리 가난과 병마와 싸우며 31년의 짧은 삶을 산 비운의 작가다. 1908년 실레마을에서 팔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몸이 허약했다. 여섯 살 때 서울로 이사와 일곱 살에 어머니를, 아홉 살에 아버지를 여의였다. 휘문고보를 거쳐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했으나 결석 때문에 제적처분을 받았던 그는 당대 명창 박녹주에게 열렬히 구애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귀향해 야학운동을 벌인다.
1933년 다시 서울로 올라간 김유정은 고향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기 시작한다. 1933년 처음으로 잡지 "제일선"에 <산골나그네>와, "신여성"에 <총각과 맹꽁이>를 발표한다. 이어 1935년 소설 <소낙비>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노다지>가 "조선중앙일보"에 입선되면서 떠오르는 신예작가로 활발히 작품발표를 한다. 이듬해인 1936년 폐결핵과 치질이 악화되는 등 최악의 환경 속에서도 왕성한 작품활동을 벌이지만 결국 1937년 3월29일 쓸쓸하고 짧았던 삶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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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관 |
그의 사후 1938년 처음으로 삼문사에서 김유정의 단편집 《동백꽃》이 출간됐다. 그의 작품은 우직하고 순박한 주인공들 그리고 사건의 의외적인 전개와 엉뚱한 반전, 매우 육담적인 속어와 비어의 구사 등 탁월한 언어감각으로 1930년대 한국 소설의 독특한 영역을 개척했다. (김유정문학촌 제공자료 참조)
이 가을, 청량한 바람과 햇살 속을 거닐어 실레마을로 떠나보자. 요절한 작가 김유정의 문학과 생애를 떠올려보는 여행은 가슴에 오래도록 남는 느낌표 하나를 새겨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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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양간 |
*정보
김유정문학촌에서는 오는 10월10일(오전 9시~오후 6시) ‘소설의 고향을 찾아가는 문학기행’을 개최한다. 선착순 70명, 참가비 2만원(왕복열차표, 중식 제공)이다. 033-261-4650 www.kimyouje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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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장 너머로 보이는 생가 |
*맛집
춘천은 막국수와 닭갈비의 고장. 김유정의 소설 <산골나그네>에도 "급시로 날을 받아서 대례를 치렀다. 한편에서는 국수를 누른다. 잔치 보러온 아낙네들은 국수 그릇을 얼른 받아서 후룩후룩 들여 마시며 색시 잘났다고 추었다"라는 장면이 나온다. 실레마을에서도 막국수와 닭갈비를 맛볼 수 있는 곳이 많다. 시골장터 막국수, 삼포가는 길, 대용닭갈비 등. 김유정문학촌과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유정마을(033- 262-0361)은 닭갈비와 막국수를 전문으로 한다.
*가는 요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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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못과 정자가 있는 뜰 |
청량리역에서 경춘선 열차를 타고 김유정역에서 내려 5분 거리에 문학촌이 위치하고 있다. 청량리역 출발 첫 기차는 06시15분, 김유정역 출발 마지막 기차는 21시53분.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서울~춘천고속도로 남춘천 인터체인지에서 빠져 신동면으로 향한다. 경춘국도를 탈 경우 강촌유원지 지나 의암터널을 빠져나와 오른쪽으로 보이는 이정표를 따라가면 김유정역을 지나 곧 문학촌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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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정식당의 막국수 |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