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츠 뉴 E클래스를 처음 본 건 지난 3월 제네바모터쇼에서다. 분리형의 둥근 헤드 램프가 사각형으로 바뀐 걸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던 기억이 난다. 뉴 E클래스는 종류도 많다. 국내에 출시된 차종만도 모두 7가지나 된다. 디젤엔진을 얹은 차종으로는 220 CDI 블루이피션시 아방가르드가 있다. 이 밖에 가솔린엔진을 탑재한 차종은 300 엘레강스, 300 아방가르드, 350 아방가르드, 350 4매틱 아방가르드, 63 AMG 그리고 쿠페로 350가 있다. 이번에 시승한 차종은 220 CDI 블루이피션시 아방가르드다.
▲스타일
뉴 E클래스의 가장 큰 변화는 외모다. 헤드 램프가 원형에서 사각형으로 바뀌면서 색다른 이미지를 풍긴다. 원형이 유려함을 표현한다면 사각형은 ‘직선의 날카로움’을 준다. 실제 뉴 E클래스 스타일 전반에는 직선이 많이 사용됐다. 앞에서 보면 사각형의 헤드 램프와 굵은 3선의 크롬 라디에이터 그릴이 웅장하다. 범퍼 좌우에 LED 타입의 안개등을 뒀는데, 이 역시 원형에서 벗어났다. ‘직선의 역동성과 보수’가 디자인 전반의 주제인 것처럼 보인다. 아쉬운 건 안개등과 병행되는 주간주행등이 국내 법규에 맞지 않아 작동할 수 없는 점이다.
측면의 캐릭터라인도 직선이기는 마찬가지다. 마치 CLS를 연상시킨다. 얇은 펜으로 선을 그은 것 같은 주름이 인상적이다. 또 ‘앞은 낮고 뒤는 높은" 전형적인 스포츠 세단의 스타일도 눈에 들어온다. 벤츠뿐 아니라 요즘 나오는 세단형 승용차의 대부분이 앞은 낮추고 뒤를 높인다. 공기저항을 줄일 수 있고, 점잖은 세단이라도 역동적으로 보일 수 있어서다. 덕분에 이 차는 공기저항계수가 0.26에 불과하다. 스포츠카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리어 램프도 다듬어졌다. 이전에는 부드러운 삼각형이었으나 유려한 사각형으로 변했다. 전체적인 디자인 주제로 ‘사각형’이 채택됐음을 알리는 증거다.
운전석에 앉았다. 계기판에서 이채로운 건 아날로그 시계가 왼편에 비교적 크게 자리한 점이다. 대부분 아날로그 형태의 시계는 센터페시아에 있기 마련인데 뉴 E클래스는 독특하게 계기판에 있다. 덕분에 중앙 속도계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시계에 눈이 간다. 시간과 속도를 동시에 보는 셈이다. 계기판은 비교적 다양한 정보들이 일목요연하게 보이도록 설계했다. 속도계 안에 조그만 액정이 있고, 그 곳에서 주행정보를 원하는대로 표시할 수 있다. 운전중에는 주로 순간연비계와 기름잔량이 가리키는 남은 주행거리를 보여줬다.
계기판에 나타나는 연료효율성을 보고 놀랐다. 220 CDI의 연료탱크 용량은 80ℓ이고, 국내에서 인증받은 연료효율은 ℓ당 15.1㎞로 1등급이다. 단순계산으로도 기름을 가득 채웠을 때 1,200㎞를 달릴 수 있다는 얘기다. 시내주행이 많을 경우엔 불가능하겠지만 기자가 차를 받았을 때는 가득 주유가 돼 있었고, 이 때 정보창에 표시된 남은 주행거리는 900㎞가 넘었다. 서울-부산을 충분히 왕복할 수 있는 거리다. 그 만큼 연료효율성이 뛰어나다는 얘기다.
실내 전반은 벤츠의 특성을 잘 살려냈다. 기본적으로 크루즈컨트롤 기능이 있고, 센터페시아는 잘 정돈돼 있다. 특히 센터페시아에서 눈길을 끈 건 공조버튼이다. 대부분의 공조버튼은 평면을 누르는 로직 방식이거나, 레버를 돌리는 로터리 타입이지만 뉴 E클래스는 S클래스처럼 위아래 조작이 가능한 업다운 방식이다. S클래스를 시승하면서 접하고는 무척 감동했는데 뉴 E클래스에서 다시 볼 수 있었다. 일렬로 늘어선 스위치는 고급스러움을 물씬 풍긴다. 다양한 기능도 체감할 수 있다. 블루투스 연결이 가능하고, 내비게이션도 있다. 그러나 내비게이션은 화질이 다소 떨어진다. 벤츠의 브랜드 이미지와 부합되지 않는 것 같아 아쉽다. 국내에서 별도 장착한 것으로 보이는데, 개선이 필요하다.
▲성능&승차감
220 CDI는 뉴 E클래스 가운데 유일하게 4기통 디젤엔진을 얹었다. 배기량은 2,143㏄, 최고출력은 170마력이다. 요즘 나오는 동급의 다른 엔진과 비교하면 월등한 수준은 아니지만 최대토크가 40.8㎏·m로 높은 편이다. 같은 차종의 3,498㏄ 가솔린엔진에 비해서도 토크가 높다. 역시 열효율이 좋은 디젤임을 보여준다. 최대토크가 발휘되는 엔진회전구간도 1,400~2,800rpm으로 비교적 넓다.
가속 페달은 묵직하다. 페달을 밟을 때 들어가는 힘을 흔히 ‘페달 에포트"라고 한다. 얼마나 힘이 들어가느냐에 따라 운전자가 느끼는 역동성에 대한 느낌이 달라지는데, 가벼운 일본차의 페달 에포트와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페달을 밟았을 때 차가 반응하는 순간속도가 빠른 편은 아니다. 그럼에도 일단 속도가 붙으면 거침없이 내달린다. 최대토크가 쉼없이 뿜어져 나오는 덕분이다. 시속 80㎞에서 페달을 끝까지 밟아보니 시속 160㎞까지 부족함없이 오른다. 고속에서도 느껴지는 안정감이 인상적이다.
주행중 디젤 특유의 밸브 노이즈는 시속 60㎞까지만 들린다. 시속 80㎞를 넘어서면 전혀 들을 수 없다. 그런데 ‘소리’라는 부분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있다. 자동차에 있어 소리를 모두 억제하는 게 과연 옳으냐는 것인데, 소리의 억제는 자동차의 본질적인 기계적 특성을 무시하기에 운전하는 맛이 떨어진다는 주장이 최근들어 적지 않게 나온다. 그래서 조금은 남겨둬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일반적으로 독일차는 약간의 기계적 사운드를 남겨둔다. 반면 일본차는 소리를 모두 제어하는 쪽이다. 따라서 기술의 차이가 아니라 메이커의 철학이 "소리"를 좌우하는 시대가 됐다. 소비자 사이에서도 분명 호불호가 있을 수 있는 부분이다.
고속에서의 편안함은 승차감과도 무관하지 않다. 특히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 느낌은 S클래스에 버금갈 정도다. 게다가 어지간한 충격은 대부분 흡수하되 지나치게 물렁하지도 않다. 승차감과 핸들링 성능을 동시에 확보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음을 알고 있는 터라 무척 좋은 인상을 받았다.
굴곡 깊은 도로에 들어서서 핸들링과 차체의 반응을 시험했다. 일정한 원을 정해 놓고 회전하는데 속도를 어지간히 올려도 타이어 마찰음이 울리지 않는다. 마찰음이 울리는 속도를 임계속도라고 하는데, 마찰음이 생기면 더 이상 차체가 지탱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타이어가 밀리면서 노면과 마찰음을 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뉴 E클래스는 기대 이상의 속도에서도 마찰음을 내지 않는다. 약간 쏠림만 있을 뿐 한쪽으로 치우치는 하중을 차가 모두 견뎌낸다. 세밀한 튜닝이 뒷받침될 때 가능한 것인 만큼 운동성능은 구형에 비해 진일보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가솔린엔진은 대부분의 변속기가 7단이지만 220 CDI는 5단이다. 효율은 뒤질 수 있지만 디젤엔진이기에 중요한 건 변속 때의 충격이다. 220 CDI의 변속충격은 거의 없다. 게다가 연료효율은 디젤이어서 상당히 좋다. 뉴 E클래스에 대한 접근성을 높인 차종임이 확연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뉴 E클래스를 경제적으로 운용하고 싶은 사람에게 220 CDI는 적절한 선택이 되겠다. 변속 때의 감성도 좋다. 손에 잘 잡히는 변속레버를 ‘D"에서 ’N"으로 움직일 때의 절도감은 매우 인상적이다. 마치 기어가 제자리를 찾아가듯 순간적으로 자리를 이동하는데 그 질감이 뛰어나다. 변속레버의 움직임은 감성에 속하는데, 그 만큼 감성에도 신경썼다는 얘기다.
▲총평
차를 세우고 트렁크를 열었다. 540ℓ 용량이지만 뒷좌석을 앞으로 180도 접을 수 있어 필요하면 다양하게 쓸 수 있다. 고급 세단이지만 실용적인 면도 충분히 가미된 셈이다. 조수석 옆에 수납함이 있고, 조수석 아래에도 서랍이 있다. 고급스러움을 표시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곳곳에 실용성을 충분히 담아낸 셈이다. 국내에서는 고급 중형 세단의 지존이기도 하지만 유럽의 경우 세단이면서도 다목적을 추구하는 소비자를 겨냥한 흔적이다. 제아무리 고급 세단이라도 실용성이 있어야 가치를 발휘할 수 있다는 면에서 칭찬받을 만하다.
시승을 마치고 뉴 E클래스 220 CDI 블루이피션시를 ‘프리미엄 디젤 중형 세단의 지존’으로 정의했다. 여기에는 벤츠라는 브랜드가 주는 신뢰감도 작용했다. 경제적이면서도 품격을 갖춘 차임에도 6,500만원이란 판매가격이 구매가치를 더욱 높인다. 덕분에 뉴 E클래스는 출시되자마자 대박이 났다.
시승 / 권용주 기자 soo4195@autotimes.co.kr
사진 / 권윤경 기자 kwon@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