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운전대만 잡으면 사람이 바뀔까

입력 2009년10월28일 0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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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운전대만 잡으면 사람이 바뀐다"는 말을 흔히 한다. 평소 소심하고 조심성 많은 사람도 운전을 할 때면 과감한 정도를 넘어 난폭해진다. 미국의 심리학ㆍ과학 전문 기자 톰 밴더빌트는 "트래픽"(김영사 펴냄)에서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이런 현상을 심리학적, 사회학적으로 풀이한다.

차 안에 앉아 있으면 다른 운전자와 의사소통할 수 없다. 일상생활에서 대화를 나눌 때 쓰는 복잡한 언어와 얼굴 근육을 쓸 수 없고 경적이나 수신호를 사용했다가 오히려 오해만 살 수 있다. 화는 나는데 화를 낼 대상이 없으니 분노는 점점 커지고 책임을 남 탓으로 돌리게 된다. 여기에 익명성까지 보장되니 정상적인 사회 규범을 벗어난 행동도 감행하게 된다. 결국 운전자는 누군가가 자기 차 앞에서 차선을 바꾸면 진로를 방해받았다는 생각에 갑자기 화가 치밀어오른다. "본때를 보여주겠다"거나 "나한테 나쁜 짓을 한 인간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겠다"는 생각에 상대를 맹추격하기도 한다.

이 책은 "왜 내 차선은 늘 가장 늦게 빠질까", "왜 보행자일 때와 운전자일 때 마음가짐이 180도 다를까", "대체 이 사람들은 죄다 어디서 나오는 걸까" 등 대도시에 사는 운전자라면 누구나 읽다가 절로 무릎을 칠 만큼 도로 위에서 흔히 드는 생각과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현상들을 담고 있다. 게다가 이런 사례들을 파고들면서 인간의 본성과 사회의 본질을 샅샅이 파헤치며 도로 위의 "인생극장"을 보여주므로 평소 운전을 하면서 "운전은 인생 또는 사회생활의 축약판"이라는 생각에 잠시라도 빠져본 적이 있는 운전자라면 쉽게 공감할 법하다.

읽다가 뜨끔할 만한 내용도 많다. 그토록 믿었던 눈과 귀, 피부가 나를 배반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때다. 눈으로 재는 거리와 실제 거리가 다른 착시 현상은 물론, 관성 때문에 고속도로를 내달리면서도 과속하고 있음을 잘 느끼지 못한다. 지나치게 익숙한 길에서 "과잉 학습 행동"으로 의식을 내려놓고 운전하는 사람들이 많아 오히려 낯선 길보다 더 위험할 수도 있다.

저자는 운전 습관과 교통 체계를 풀어보면서 심리학에서 멈추지 않고 문화사회학, 경제학에까지 손을 뻗는다. 상당수 나라가 도로에서 우측통행을 허용하는데 영국과 일본 등의 도로는 좌측통행이다. 영국에서는 마부들이 대부분 오른손잡이였기에 마차 오른쪽에 앉아 오른손으로 채찍을, 왼손으로 고삐를 잡아야 했는데, 이런 전통이 자동차로도 이어진 것이다. 개인주의가 팽배한 뉴욕에서는 무단횡단을 "군중 속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방법이자 뉴요커만의 특별한 경험"으로 여겨 쉽게 저지르지만, 합의 도출의 전통과 냉정한 북구식 사고가 퍼진 코펜하겐에서는 무단횡단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긴 세월이 흘러 운전 조건과 교통 체계가 달라져도 여전히 유지되는 현상도 있다. 1950∼1980년대 워싱턴D.C 시민들의 평균 출근 시간을 계산한 학자들은 평균 32분이라는 답을 얻어냈다. 21세기가 된 지금도 왕복 통근 1시간은 "원칙"처럼 지켜지고 있다. 도시가 커지고 사람들이 교외로 빠져나가도 도시 외곽 순환도로를 지어 통근 시간을 1시간에 맞춰 왔기 때문이다.

물론 도시계획이 늘 기대했던 효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도로를 늘려도 통행량이 따라 늘어나므로 교통 체증은 해결되지 않는다. 운전자 개인은 자신에게 최선이라고 믿는 결정을 내리는데 전체 운전자의 총 운전 시간은 오히려 늘어나기도 한다. 이는 시장에서와 마찬가지로 "나에게 최상이 남에게는 최악이 되는 상황"이 도로 위에서 벌어지기 때문이다. 운전자 개개인은 자신에게 이익인 일을 택함으로써 전체에게 손실을 입힌다. 남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를 바라면서 자신은 자가용을 탄다거나 남들이 이용하지 않기를 바라는 도로에 진입하는 것이다.

저자가 이 문제를 깊이 파고드는 것은 결국 운전 습관이 단순한 교통 문제를 넘어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와 관련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운전자들에게 사회에서 인간다운 삶을 살듯이 도로에서도 인간다운 운전을 하라도 주문한다. 자신이 보통 사람들보다 운전을 잘한다는 헛된 믿음과 교통의 흐름을 망치는 개성을 버리라는 것, 도로에 감춰진 인간의 비이성적인 본성을 깨닫고 이성을 일깨우라는 것이다. 김민주ㆍ송희령 옮김. 768쪽. 2만9천원.

cheror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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