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대우자동차와 대우자동차판매 간 갈등의 골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 양측 모두 국내 딜러권을 둘러싸고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을 태세다. 상호 충돌로 불이익이 발생해도 어쩔 수 없다는 게 양측 모두의 강경한 입장이다. 두 대의 자동차가 마주보고 달려 오며 서로 먼저 피하기를 기다리는 치킨게임을 연상시킨다.
▲논란의 발단은
GM대우와 대우자판 간 갈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2년 대우자동차를 인수한 GM은 당시 대우자판의 비독점적 내수판매 대행체제를 인정했다. GM의 세계 사업장 어디에도 한 국가 내에서 단일딜러체제가 없었음에도 대우자판과의 특수성을 감안, 양측은 일단 동반자적인 관계를 형성했다. 그러나 GM대우는 향후 딜러를 추가로 영입하겠다고 공공연히 밝혀 왔다. 실제 GM대우는 법적으로도 딜러를 더 둘 수 있는 길을 열어 놓고 대우자판과의 관계를 유지했다. 사실상 이 때부터 제품 공급권과 국내 판매권을 쥐고 있는 두 회사 간 긴장감이 서서히 형성되기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GM대우는 내수판매체제에 불만을 조금씩 나타냈다. 기본적으로 판매는 경쟁체제로 가야 실적이 극대화됨에도 대우자판이 내수시장을 거의 독점하고 있어 판매증가가 쉽지 않다고 판단해서다. 반면 대우자판은 GM대우가 지나치게 수출에 의존하는 제품정책을 가져갔고, 그에 따라 내수시장의 제품 대응속도가 늦어져 판매가 어렵다고 하소연해 왔다.
▲갈등의 표면화는
이 처럼 티격태격하던 양측 중 먼저 칼을 빼든 곳은 GM대우다. GM대우는 대우자판의 독점적 판매체제로는 내수시장 확대가 쉽지 않다고 판단, 지난 7월 딜러 추가 영입을 발표했다. 대우자판은 이에 대해 전국을 담당하는 영업망에 다른 딜러가 끼어들 가능성이 적고, 설령 영입돼도 대우자판이 전국 대리점과 계약관계인 만큼 당장 판매를 중단하기에는 절차상 까다롭다는 점에서 GM대우가 이를 실행에 옮기기는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게다가 딜러를 추가로 영입하는 데에는 대우자판의 협조가 절대 필요한 만큼 GM대우가 일정 시간을 갖고 충분한 협의를 할 것으로 기대했다.
GM대우는 그러나 일정 시간을 필요로하는 절차 상의 문제해결보다 지역총판제라는 강행 카드를 내밀었다. 전국을 8개 광역판매권으로 나누고 우선적으로 부산·경남(대한모터스), 경북(삼화모터스), 수도권 동부(아주모터스)지역의 판매권자로 세 회사를 영입하겠다고 대우자판에 일방 통보한 것. 여기에는 대우자판의 유동성 문제도 배경으로 작용했다. 지난해말 대우자판이 유동성 위기를 겪자 GM대우는 월 단위로 받던 대금을 당일 현금결제 방식으로 변경했다. 더구나 GM대우는 이 일을 겪으며 대우자판 붕괴가 자칫 판매망이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갖게 됐다. 이런 이유로 일부 지역의 경우 GM대우가 직접 판매에 나서기도 했다.
올 3월 이후 대우자판의 유동성 문제가 진정국면으로 전환되고, GM대우의 직접 판매도 원상회복됐지만 내수판매에 대한 GM대우의 고민은 해소되지 않았다. 결국 지난 7월 GM대우는 지역총판제 도입을 선언, 전격적인 내수총력전을 선언했다. 그럼에도 대우자판은 GM대우의 지역총판제가 성공하지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GM대우가 세 곳의 신규 딜러를 영입했다 해도 공정거래법 상 대우자판에 제품공급을 중단할 수 없는 만큼 지역총판제가 자리잡기는 어려울 것으로 확신했다.
하지만 이 같은 대우자판의 예상을 깨고 GM대우는 지역총판제 도입 강행은 물론 확대쪽으로 전략을 전면 수정했다. 여기에는 시보레 브랜드 도입 여부도 고려됐다. 향후 GM대우 브랜드를 포기하고 시보레 브랜드로 전환한다는 전제 하에 시보레 브랜드의 신규 딜러로 대우자판 외 딜러를 물색해 놓은 셈이다. 쉽게 보면 GM대우가 시보레 브랜드를 들여와 새 딜러에게 차를 공급하면 기존 대우자판의 전국 판매망을 경쟁체제로 가져갈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를 이유로 GM대우는 대우자판에 기존 지역의 영업망을 통째로 신규 딜러에게 넘겨 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대우자판은 18년 동안 딜러 사업을 하면서 쌓은 자산과 권리 등을 포기할 수 없다며 그에 상응하는 가치를 인정해 달라고 맞섰다. 그러나 대우자판의 기대는 큰 반면 GM대우는 가치 인정에 소극적이어서 양측은 아무런 결론을 내지 못했다.
상황이 점점 대립하는 구도로 치닫자 GM대우는 올해말로 종료되는 대우자판과의 제품공급계약을 놓고 압박했다. 내수에서 치명적인 손해를 보더라도 대우자판에 대한 제품공급권을 활용해 부담을 주면 GM대우 의도대로 대우자판의 협조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 것. 대우자판은 이에 대해 강력히 반발했다. 만약 제품공급이 중단돼 전국의 모든 영업망 가동이 중단될 경우 GM대우도 치명적인 손해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감안한 저항이다.
대우자판이 강경하게 나오자 GM대우도 내심 당황했으나 해묵은 문제를 더 이상 안고 갈 수는 없다고 보고 신규 딜러의 판매준비를 도왔다. 그러나 끝내 신규 딜러에게 지역 내 독점공급권을 인정하지 못했다. 국내 실정법을 위반하는 행위여서다. 이에 따라 대우자판은 신규 딜러와 대우자판의 기존 딜러가 한 지역에서 경쟁하자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신규 딜러 입장에서 보면 이는 대우자판이라는 거대 딜러와의 경쟁이어서 GM대우와 손잡은 것 자체가 무의미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GM대우는 지역제한을 설정했지만 이 또한 대우자판의 협조없이는 지켜지기가 어려운 형편이다.
GM대우와 대우자판 간 갈등은 신규 딜러에게 불안감을 안겨주고 있다. GM대우가 대우자판과의 판매권을 정리하겠다고 약속해 계약한 만큼 자칫 두 회사 간 균열이 봉합되지 않으면 판매에 제대로 나서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 부산의 신규 딜러로 영입된 대한모터스는 기존 대우자판 영업소 외에 자체 영업소를 만들었으나 대우자판 산하 영업점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될 경우 GM대우가 바라는 지역총판제는 물 건너갈 수밖에 없다.
▲해법은 없나
GM대우가 생각하는 지역총판제가 자리잡으려면 무엇보다 대우자판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GM대우가 바라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대우자판이 영업소와 판매권을 통째로 신규 딜러에게 넘겨주는 것. 대우자판도 권리양도에 따른 프리미엄만 주면 못할 것도 없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러나 양측은 가치 산정을 두고 신경전을 벌일 게 뻔하다. 더구나 양측이 일치한 가치를 산정하더라도 지급주체가 논란이다. GM대우가 아닌 신규 딜러가 지급해야 할 수도 있어서다. 그럼에도 GM대우는 대우자판의 영업권을 새 딜러에게 낮은 가격에 넘기라는 요구를 줄기차게 하고 있다. GM대우는 대우자판이 원할 경우 시보레 딜러권도 일부 줄 수 있다는 당근책을 내놓고 있다. 물론 GM대우의 요구에 대우자판은 합의할 의사가 현재로선 전혀 없다.
치킨게임에서 어느 한 쪽이 운전대를 틀지 않으면 양측 모두 큰 사고를 겪게 된다. 이 경우도 마찬가지다. GM대우는 이를 감수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모든 새로운 제도 도입에는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이며, 시간이 지나면 아픔은 치유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물론 대우자판도 손해를 감수하겠다는 의지를 비치고 있다. 오랜 기간 투자하며 형성해 놓은 영업권을 제대로 인정받지도 못하고 넘길 수는 없다는 얘기다. 일부에선 새 딜러가 대우자판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해주면 해결된다지만 그러기 위해선 엄청난 자본 투입이 불가피하다. 제아무리 자본력이 튼튼한 신규 딜러라도 쓰기 어려운 수다.
따라서 현재로선 두 회사의 갈등 해소가 쉽지 않다. GM대우는 지역총판제를 강행하겠다는 입장이고, 대우자판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자세다. 신규 딜러의 영입은 인정하되 협조하려면 몸집을 줄이는 시간이 필요함에도 GM대우가 이를 무시하고 일방통행했다는 이유에서다. 양측의 갈등은 이제 감정싸움으로 치닫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GM대우도 지역총판제 도입을 강행했지만 내년 1월1일부터 당장 신규 딜러들의 실질적인 판매행위가 일어날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는다"며 "그러나 지금 하지 않으면 앞으로 계속 하기 어렵다는 판단 하에 지역총판제를 밀어붙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GM대우, 대우자판 모두 한 발씩 물러나지 않으면 양측 모두 큰 상처를 입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권용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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