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는 사람의 마음을 무장해제시킨다. 얼어붙은 마음도, 날 세웠던 표정도 따뜻한 미소와 마주하면 강퍅했던 마음이 저도 몰래 풀썩 누그러진다. 차고 삭막한 이 겨울, 팍팍하고 메마른 세상살이에 지친, 언 가슴 녹여주는 따뜻한 미소는 어디에 있을까.
|
| 여인의 기원에 염화미소로 |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가야산 끝자락인 수정봉 북쪽 산중턱에는 "백제의 미소"로 널리 알려진 그 유명한 마애삼존불이 자리하고 있다.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변함없이 따뜻한 미소를 머금고 나그네를 반기는 마애삼존불. 짧은 겨울 햇살이라도 비낄 때면 더욱 생생히 피어나는 환한 미소는 천년도 넘게 간직해 온 바로 그 "살인미소"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마애불 중 가장 오래 되고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손꼽히는 서산 마애삼존불은 국보 제84호로 지정된 유적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애불은 보호각 속에 갇혀 있던 운명이었으나 지금은 자연 속에서 맘껏 호흡하고 있다.
|
| 햇빛에 따라 더해지는 생동감 |
"마애불상은 자연 상태에서 가장 아름다운 빛을 발한다"는 전문가의 의견이 잇따르자 문화재청은 지난 2007년 11월, 42년간 마애불을 에워싸고 있던 보호각을 전면 철거했다. 보호각이 폐쇄형이어서 자연통풍과 채광을 막고, 내부와 암벽에 과다한 습기를 유지하게 해 오히려 훼손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제시되면서였다.
햇살과 바람과 빗줄기와 때로는 눈송이도 머금게 된 화강암 피부는 이제사 온전히 제빛깔을 되찾았다. 그리고 마침내 천년의 미소도 돌아왔다. 햇살이 옮겨 갈 때면 마애불의 얼굴에 때론 온화한 미소가, 때론 유쾌한 웃음이 활짝활짝 피어난다. 빛이 비치는 방향에 따라 시시각각 웃는 모습이 달라지는 놀랍도록 정교하고 신비한 그 모습과 마주하면 아무도 감히 생명없는 돌덩이라고 말하지 못한다.
아는 이들에겐 잘 알려진 이야기이지만, 서산 마애삼존불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 과정은 퍽 재미있다. 1958년 무렵 근처 보원사지를 발굴작업하던 문화재발굴단에게 동네의 한 노인이 다가와 이런 말을 했다.
|
| 불이문 |
"저기 숲속에 가면 벼랑바위에 산신령이 새겨져 있는데, 양 옆에 본마누라와 작은마누라를 끼고 기분 좋게 웃고 있시유."
백제의 미소가 긴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이었다.
|
| 입구 계곡 |
커다란 암벽을 안쪽으로 파내고 들어가 부조 형식으로 조각된 마애불은 중앙에 산신령이라 표현된, 본존인 석가여래입상이, 좌우에는 노인의 눈에 본마누라와 작은마누라로 비춰졌던 제화갈라보살입상과 미륵반가사유상이 자리하고 있다. 둥글고 풍만한 얼굴에 활짝 웃고 있는 본존불과, 역시 티없이 맑은 웃음을 보이는 제화갈라보살입상, 미래불인 미륵반가상 또한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다. 이들에게 "백제의 미소"라는 타이틀이 부쳐진 건 아주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금방이라도 바위를 뚫고 빠져나올 듯한 입체감과 생동감이 느껴지는 마애삼존불상은 백제시대의 뛰어난 예술세계를 보여주는 정수다.
그 앞에서 한 여인네가 치성을 드리고 있다. 차가운 겨울바람도 아랑곳없이 합장한 두 손을 오래도록 풀지 않는다. 여인은 무엇을 기원하는 걸까. 여인의 간절한 기구에 말없이 미소로 화답하는 마애불. 어쩌면 "인간사가 참으로 여여(如如)하다"며 흘리는 염화미소인지도 모른다. 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돌아가는 세상살이에 대해‥.
*맛집
|
| 삼존불 오르는 길목 |
마애불 주차장 주변 계곡을 따라 여러 음식점이 자리잡고 있다. 용현집(041-663-4090)은 어죽과 민물매운탕, 토종닭 백숙을 전문으로 한다. 용천골가든(041-669-3819)도 비슷한 메뉴를 선보인다. 서산의 색다른 별미를 맛보고 싶다면 대산 방면 왕산포 바닷가에 자리한 우정횟집(041-662-0763)의 박속밀국낙지탕이 있다. 서산의 토속음식인 박속밀국낙지탕은 시원한 박속과 왕산낙지의 부드럽고 연한 맛이 어우러져 시원한 맛을 낸다.
*가는 요령
서해안고속도로 서산 인터체인지에서 나와 32번 국도를 타고 운산(원평리)으로 향한다. 고풍리로 가는 지방도 618번을 타면 용현리 마애삼존불상 주차장에 이른다.
|
| 보라, 천년을 이어온 백제미소 |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