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마 사이로 살짝 고개 내민 수줍은 봄빛

입력 2010년03월05일 0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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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달산 품에 안긴 김룡사
빗줄기처럼 낙숫물이 떨어졌다. 지붕 위에 쌓였던 눈이 녹아내리면서 낙숫물은 봄비처럼 절집을 적셨다. 아직도 처마 끝엔 긴 고드름이 매달려 있건만…. 추적추적 떨어지는 구성진 낙숫물소리가 고요한 절집을 울린다. 묘한 느낌이다. 하늘은 저렇듯 말갛게 웃고 있는데. 금방이라도 맞닿을 듯한 두 처마 틈새로 살짝 보이는 하늘 한 자락엔 수줍은 봄빛이 살며시 얼굴을 내민다.



문경시 산북면 김룡리에 있는 김룡사는 이웃한 대승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천년 고찰이다. 눈썰미 있는 이라면 벌써 알아챘겠지만, 절 이름과 마을 이름이 동일한 것을 보면 이와 관련된 어떤 전설이 내려옴을 짐작할 수 있겠다.

일주문인 홍하문


김룡사는 신라 진평왕 10년(588) 운달조사가 창건한 절로 원래 이름은 운봉사였다. 김룡사로 바뀐 연유는 여러 가지 전해지고 있으나, <운달산김룡사사적서>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옛날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이 죄를 지어 이곳 운봉사 아래 숨어 살다가 신녀를 만나 아들을 낳았는데 이름을 용이라 하였다. 김룡이 자라서 뒷날 큰 재산을 모으자 사람들은 그가 사는 동네를 아예 김룡리(金龍里)라 불렀다. 또한 김룡이 운봉사에 많은 시주를 하자 사람들이 운봉사 대신 "김룡이절 김룡이절" 하고 부르게 되어 절 이름이 김룡사가 되었다고 한다.



전나무 숲길
김룡사를 처음 찾는 이들은 절 주변 자연환경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자동차가 절 마당까지 들어갈 만큼 개방된 곳이지만 원시림을 방불케하는 숲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잎을 떨궈낸 지금도 숲의 기세가 예사롭지 않건만 여름철에는 아마도 그 울창함이 하늘을 가리고도 남을 만한 숲이다. 숲과 함께 이어지는 계곡 또한 여름이면 얼음물처럼 차고 맑은 물줄기가 끊이질 않고 이어져 "냉골"이라 불리는데, 바로 운달계곡이다.



원한다면야 절 마당까지도 자동차를 타고 들어갈 수 있지만 계곡 초입에 마련된 주차장에 차를 두고 오르는 편이 오히려 낫다. 전국 어디서도 쉽게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숲길을 놓치지 않으려면 말이다. 숲길을 얼마쯤 들어가면 김룡사의 일주문인 홍하문(紅霞門)이 나타난다. "붉은 노을 문"이라는 서정적인 그 이름이 너무도 잘 어울린다. 홍하문을 지나면 숲은 전나무군락지로 바뀐다. 쭉쭉 뻗은 아름드리 전나무들이 양쪽으로 도열해 길을 내고 있다.

화강암으로 만든 사천왕상


전나무 숲을 지나 보장문을 들어서면 오밀조밀하게 자리한 절집이 모습을 보인다. 다닥다닥 머리를 맞댄 전각들이 얼핏 답답한 느낌을 줄 수도 있으나 절집을 에워싼 운달산의 늠름한 산세가 그런 느낌을 저만치 밀어낸다. 오래된 전각은 고졸한 멋으로, 단청이 화려하면 화려한 대로 운달산의 수려한 자연과 어우러진다.



고드름을 매달고 있지만...
대웅전으로 오르는 보제루 옆 모퉁이 계단은 설선당 처마와 보제루 처마가 겹칠 듯이 머리를 맞댄 곳이다. 두 곳의 낙숫물이 동시에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장맛비 쏟아지는 듯하다. 채 녹지 않은 눈이 아직 절 마당 한쪽에 쌓여 있지만 절집에는 벌써 봄빛이 살며시 스며들고 있다.



대웅전의 불상과 괘불탱화가 유명하지만 그 못지 않게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사실은 이곳이 근대불교사에 많은 인재를 배출한 산실이라는 점이다. 근세의 걸출한 학승으로 손꼽히는 초대 동국대 총장 퇴경당 권상로 대종사를 비롯해 조계종 종정을 지낸 성철, 서암, 서옹 스님 등이 모두 이곳에서 수행했다. 풍수가들에 따르면 김룡사의 가람은 누운 소[臥牛]의 형국인데 그 소의 눈에 해당하는 부분이 동쪽에 있는 명부전 자리라고 한다. 우연히도 김룡사에 머물렀던 그 스님들은 모두 이곳 명부전에 머물렀다고 한다.

봄빛이 기웃대는 절마당


특히 성철 스님은 팔공산 성전암에서 10년 동안 동구불출을 하다가 1965년 이곳으로 돌아와 대중들에게 "이겨내라 참아내라 기다려라 넉넉한 마음으로 느긋하게 살아라" 하고 첫 설법을 한 곳으로 유명하다.



수려한 산세를 병풍처럼 끼고 있다
*가는 요령

중부내륙고속국도 문경새재 IC에서 나와 3번 국도를 타고 견탄 교차로에서 직진해 34번 국도를 탄다. 불암삼거리에서 좌회전해 59번 국도를 따라 산북, 동로 방면으로 향한다. 혹은 중부내륙고속도로 점촌·함창 IC에서 나와 점촌시내로 향한다. 34번국도를 따라 예천 안동방면으로 가다가 59번 국도로 갈아타고 산북·동로방면으로 향한다. 김용 삼거리에서 이정표를 보고 왼쪽길로 접어들면 김룡사에 이른다.

겹칠 듯한 처마
대웅전 불상과 탱화


이준애 (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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