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답지 않은 날씨에 꽃이 피는지 지는지 가늠치 못한 채 봄이 지나가는 듯하다. 꽃소식이 들려오는가 싶더니 벌써 다 져버린 곳도 있고, 아직 채 피우지 못한 꽃망울을 매달고 개화를 기다리는 곳도 있다. 아름다운 벚꽃 길로 이름난 충남 논산 관촉사 가는 길은 시방 벚꽃이 절정이다. 논산 시내에서 관촉사에 이르는 4km 길이 온통 연분홍 꽃구름으로 뒤덮였다. 벚꽃 아래를 거니는 상춘객의 얼굴도 연분홍 꽃물이 곱게 물들었다.
벚꽃이 지기 전 논산으로 가보자. 벚꽃 터널 지나면 반야산 기슭에 우뚝 선 미륵불이 반긴다. 천 년 세월을 품어온 미륵불의 미소가 관촉사 무르익은 봄꽃 속에 녹아 있다. 미륵불 찾아가는 길목에 놓치지 말 곳이 하나 더 있다. 조선 초 대표적인 문신으로 일편단심 굳은 절개를 지킨 뒤 형장의 이슬이 된 사육신 성삼문의 묘소가 논산 땅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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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촉사 벚꽃길 |
사서(史書)에 세조 찬위(世祖 纂位)로 기록되는 비극의 역사는 조선왕조 500년에 가장 성군으로 손꼽히는 세종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종에게는 모두 18명의 왕자가 있었는데 세종의 뒤를 이은 문종은 글 잘하고 효성이 뛰어났지만 병약한 몸이었다. 비극의 역사는 여기에서 시작했다. 병약했던 문종이 겨우 열두 살짜리 어린 세자를 남기고 세상을 떠나자 정국은 술렁였다. 야심을 가진 대군들이 다투어 세력을 확장했고, 그중에서도 포부와 수단이 남달랐던 수양대군은 정인지, 한명회, 권 탁 등과 결탁해 단종을 폐위시키고 실권을 잡았다.
세조 2년(1456) 성삼문, 박팽년, 이 개, 하위지, 유응부, 유성원 등 세종의 신임이 두터웠던 집현전 학자들은 어린 조카의 왕위를 빼앗은 세조를 반대하고 단종 복위를 노렸으나 사전에 발각돼 모두 끔찍한 참형을 당했다. 이때 참형당한 성삼문, 박팽년, 이 개, 하위지, 유응부, 유성원 등을 훗날 사람들은 "사육신(死六臣)"이라 부르며 그들의 굳은 절개와 높은 기개를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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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촉사 일주문에서 바라본 벚꽃 |
특히나 성삼문은 세조를 끝까지 "나으리"라 불렀고, 이에 화가 난 세조가 시뻘겋게 달군 쇠로 그의 팔과 다리를 지지게 했지만 오히려 "쇠가 너무 식었구나, 다시 달궈라!"라며 호령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의 이런 기개는 형장으로 끌려가면서 남긴 시에서도 잘 나타난다.
북이 울려 이 내 목숨을 재촉하는데(擊鼓催人命)
돌아보니 해는 서산에 걸렸구나(回頭日欲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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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진미륵 |
황천길엔 주막도 없다거늘(黃泉無客店)
오늘밤은 뉘 집에서 쉬어갈거나(今夜宿誰家)
성삼문의 묘는 서울 노량진에 있는 사육신묘역(노량진역에서 한강대교 방향으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다. 하지만 이곳 충남 논산시 가야곡면 양촌리에도 그의 무덤이 있다. 이렇게 무덤이 둘인 까닭은 당시의 끔찍했던 참형을 말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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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삼문 묘역 진입로 |
성삼문은 멸문(滅門)의 참화를 당했다. 아버지 승을 비롯하여 세 동생과 세 아들 등 남자는 젖먹이까지도 죽임을 당해 혈손이 끊겼고, 부인과 딸은 관비가 됐으며 가산은 몰수됐다. 능지처참을 당해 사지가 찢긴 그의 육신은 팔도(八道)에 조리돌려졌는데, 그의 한쪽 다리를 운반하던 사람이 이 고개를 넘을 때 더운 날씨에 지치고 짜증나 투덜거리자 "아무 데나 묻으라"는 소리가 들려 지금 자리에 묻었다는 말이 전해온다.
그 뒤, 근처의 절 쌍계사에 머물던 김한이라는 사람의 꿈에 한 장부가 나타나 "내가 있는 곳이 어찌나 불편한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에 잠에서 깨어난 그가 쌍계사 승려와 함께 그곳을 가봤더니 드러난 백골이 있어, 입고 있던 적삼을 벗어 백골을 싸서 묻고 봉분을 다시 만들었다는 전설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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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나무가 둘러선 묘역 |
성삼문 묘역은 쌍계사 가는 길목 도로변에서 쉽게 갈 수 있다. 찻길 바로 옆에 사당이 있고 묘소까지는 100여 미터 더 들어가야 한다. 진입로는 넓적넓적한 돌을 박아 시원스레 길을 내어놓았다. 꼿꼿한 소나무가 빼곡하게 둘러 서 있는 묘역은 아담한 규모로, 상석 문인석 석주 등은 후손들이 최근에 제작해 배치했다. 무덤 앞에 서 있는 향나무 두 그루가 인상적이다.
*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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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박한 묘소 |
가야곡면 왕암리에 오리고기를 전문으로 하는 가야식당(041-741-9144)이 있다. 논산시내서 관촉사 가는 길목에 있는 해물칼국수 전문집 정칼국수(041-735-7340)는 알짜배기 맛집. 논산시 연무읍 양지리에는 40여 년 동안 손맛을 이어온 갈치조림과 꽃게장 요리의 대가 보은집(041-741-6960)이 있다.
*가는 요령
논산 시내에서 가야곡면으로 이어지는 643번 지방도를 탄다(논산기점 18km). 가야곡면에서 양촌면을 잇는 602번 지방도를 따라 가면 오른쪽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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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구의 사당 |
이준애 (여행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