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포드자동차가 현대자동차에 적극적인 관심을 표명해 눈길을 끈다. 특히 현대차가 베이징에서 열리는 "오토차이나 2010(북경모터쇼)"에 중국형 베르나(프로젝트명 RC)를 세계 최초로 공개하자 유독 포드 직원들이 베르나에 관심을 보여 더욱 궁금증을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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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베르나 |
통상 국제모터쇼 프레스 컨퍼런스에는 각 회사 임원들이 참석하고 새로운 차가 등장하기에 경쟁사 관계자들이 서로 만나 의견을 나누곤 한다. 차를 살펴보는 모습도 그리 어색한 광경은 아니다. 하지만 베이징에서 보여준 포드의 행동은 매우 달랐다. 아예 커다란 평가 리스트를 들고 차를 꼼꼼히 살피며 평가하자 현대차 직원들도 의아해 했을 정도였다.
평가하던 포드 직원에게 중국형 베르나를 어떻게 보냐고 물었다. 잠시 눈치를 보더니 그는 "보기에 좋다"고 짧게 답했다. 무슨 의미인지 다시 물었더니 "말 그대로 보기 좋다는 뜻"이라며 "매우 무난한 차"라고 잘라 말했다. 이어 한국에서 온 언론임을 밝히자 포드 직원은 재빨리 평가리스트를 숨기며 긴장한 표정을 내보였다. 몇 가지 질문을 추가했지만 형식적인 대답만 돌아왔다. 한 직원은 "단지 신차라 가볍게 살펴보는 중"이라 얼버무렸지만 포드 직원들의 행동과 표정에선 베르나를 철저히 해부하려는 의지마저 느껴졌다. 인사를 나누고 자리를 비켜주자 그들은 다시 차를 꼼꼼히 살피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포드는 왜 현대차 베르나에 시선을 모았을까 궁금해진다. 업계에선 신형 베르나가 중국 내에서 포드 포커스를 견제할 수 있기 때문일 것으로 보고 있다. 포커스가 베르나보다 큰 차임은 분명하지만 비슷한 급의 엔진을 비교하면 두 차의 성능은 거의 같아진다. 중국형 베르나는 1.4ℓ와 1.6ℓ 감마엔진을 적용했으며, 1.6ℓ는 최고출력 123마력, 최대토크 15.8kg·m의 성능을 낸다. 포커스는 1.8ℓ와 2.0ℓ의 두 차종이 있으며 1.8ℓ는 최고출력 124마력, 최대토크는 16.4kg·m로 베르나와 성능 차이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하지만 실질적 실내공간을 좌우하는 휠베이스는 포커스가 준중형차로 개발된 까닭에 2,640mm로 2,570mm의 베르나보다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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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드 포커스 |
그럼에도 포드가 베르나에 관심을 보인 이유는 자칫 베르나가 포커스에도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포드로선 중국에서 50만 대 넘게 판매한 주력 차종 포커스의 또 다른 경쟁차종이 생겼다는 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얘기다. 소형차인 베르나가 준중형차인 포커스와 비교된다는 자체가 포드 입장에선 자존심이 상하겠지만 민망함을 무릅쓰면서도 차를 자세히 살펴봤다는 점은 그만큼 포드의 걱정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 중국에서 만난 업계 관계자는 "과거와 달리 포드가 현대차를 얕볼 수 없을 만큼 현대가 경쟁력이 생겼고, 시장의 뜨거운 반응이 이를 입증한다"며 "포드가 현대를 견제한다기보다 오히려 한 수 배우고자 하는 심정이 더 클 것"이라 전했다.
현대는 중국에서 생산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인기가 좋다. 베이징현대차 관계자는 "중국형 아반떼인 위에둥에 탑재된 1.6 ℓ 감마엔진이 그대로 탑재되는 까닭에 중국인들이 베르나에 거는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지난 2005년 중국 시장에 진출한 포커스가 올해 2월 역대 최고 판매대수를 기록하며 승승장구하는 상황에서 현대가 중국형 베르나라는 강력한 경쟁상대를 선보이니 포드가 바짝 긴장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대가 시장의 흐름에 대응해 시장이 원하는 제품을 공급한 것이 포드와 달랐고, 특히 같은 값이면 크고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중국인들의 습성을 잘 이해한 것도 맞아떨어졌다. 한때 자동차 업계에서 "빅3"로 꼽힌 포드가 이제는 한 수 아래로 평가되던 현대차를 공식 행사장에서 벤치마킹하는 모습을 보니 한국차의 위상이 새롭게 느껴진다. 그런가 하면 변화하는 시장 흐름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면 쉽게 뒤로 밀려날 수 있다는 점도 아울러 느끼게 했다.
베이징(중국)=박찬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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