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인이 애인 삼은 마애불이 버티고 선 곳

입력 2010년06월25일 00시00분
트위터로 보내기카카오톡 네이버 밴드 공유
시인 이정록의 "애인"은 충남 홍성군에 있는 용봉사 마애불을 노래하고 있다. "천이백세 살 먹은 / 내 애인 용봉사 마애불은 / 천 년 넘게 돌이끼를 입고 서 있다 / 돌이끼의 수명이 삼 천살 정도라니 / 내 생애에 옷 한 벌 해 입히기는 글렀다… "고 시인은 투덜댄다. 그 마애불을 만나러 홍성 땅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마애불과 함께 마애불을 거느린 용봉사며, 용봉사를 품은 용봉산이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병풍바위가 보이는 용봉사 전경


충청남도 홍성군 홍북면과 예산군 덕산면·삽교읍에 걸쳐 있는 용봉산(龍鳳山ㆍ381m)은 그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용의 몸집에 봉황의 머리 형상을 하고 있다.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산 전체가 기묘한 바위 봉우리로 이뤄져 "충남의 금강산"이라 불릴 만큼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그래서 사철 등산객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데, 등산로를 따라 정상으로 오르는 동안 악기봉, 장군바위, 병풍바위 등 금강산 만물상을 축소해놓은 듯한 기기묘묘한 풍경이 발길을 잡는다.



용봉사는 아담한 절이다.
어디 그뿐인가. 등산로를 타고 용봉산 정상에 오르면 수덕사가 있는 예산의 덕숭산, 서산의 가야산, 예당평야의 시원한 경치가 한눈에 들어온다. 홍성 사람들뿐만 아니라 멀리서도 이 풍광을 눈에 넣고자 주말이나 주중 할 것 없이 많은 이들이 용봉산을 찾는다. 용봉산 중턱에 있는 용봉사는 산을 찾는 이들이 빼놓지 않고 들르는 코스다. 용봉산 병풍바위를 그야말로 병풍처럼 거느리고 있는 까닭에 아담한 절 규모와 달리 그 모습이 자못 위풍당당하게 보인다.



용봉사는 수덕사의 말사로 절의 연혁이 전해지지 않아 자세한 역사는 알 수 없으나 전하는 유물로 봐 백제 말에 창건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돌 축대 위에 대웅전과 삼성각이 자리잡고 있는데 지금 절은 원래 있던 자리가 아니라고 한다. 지금 위치에서 서쪽으로 조금 더 올라간 곳에 원래 절이 있었는데 그 터가 명당이라 해서 평양 조씨 일가가 절을 없애고 그 자리에 묘를 쓰는 바람에 지금의 자리로 내려왔다고 한다.

영산회괘불탱


경내에 있는 용화보전에는 보물 제1262호로 지정한 "용봉사영산회괘불탱"이 보관돼 있다. 괘불이란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하기 위해 법당 앞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는 대형 걸개그림으로서, 석가모니가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장면을 그렸다. 이 그림은 숙종의 아들이 일찍 죽자 거대한 불화를 그려 아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제작한 것이다. 조선 숙종 16년(1690)에 승려 화가 진간이 그렸는데, 영조 1년(1725)에 그림을 고쳐 그리면서 적어 놓은 글이 그림의 아랫부분에 있다.



용봉사지 석조
"어쩌다 속세의 아내와 아이들 앞에다 세우고 / 본처이자 큰 엄마니 절 올려라 농을…" 친다는 시인의 목소리를 떠올리며 찾아간 마애불은 용봉사 일주문을 지나 왼쪽 바위에 숨은 듯 자리하고 있다. 시인의 말처럼 "배꼽 언저리 물오른 돌이끼"가 그대로 붙어 있는 마애불은 바위를 불상 모양보다 크게 파내고 조각했는데 마멸이 심하다. 머리 부분은 뚜렷하게 돌출했으나 아래로 내려갈수록 평면에 가깝다.



문득 시인의 마음이 궁금해진다. 바위 틈에 숨어 있는 이 흐릿한 마애불을 하필이면 왜 애인으로 삼았을까. 늘씬한 자태를 자랑하는 신경리 마애불이 그곳에서 몇 발짝 떨어진 곳에서 휘황찬란한 광배를 빛내고 있음에도…. "노각시바위"라고도 하는 신경리 마애불은 커다란 바위 표면에 타원형 감실을 파고 그 안에 부조로 불입상을 조각했다. 큰 키(4m)에 보물(제355호)로 지정됐으니 꽤 볼 만한 작품이기도 하다.

부도


세속의 잣대를 들이대며 주판알을 튕기고 있는 가련한 이 중생을 향해 순간 "피식" 웃는 마애불의 얼굴이 거짓말처럼 눈앞에 다가왔다.



약수터의 약사여래불
*맛집

용봉산 최고봉으로 오르는 돌머리에 있는 돌산가든(041-634-8500)은 식당 주변에 야외 행사를 위한 넓은 잔디밭이 있고, 식당 아래에 승마장이 있어 눈길을 끈다. 유명한 홍성한우의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곳으로, 특히 숯탄으로 생갈비를 구워 독특한 쇠고기 맛을 낸다.



용봉사 마애불
*가는 요령

서해안고속도로 홍성 나들목에서 빠져나와 홍성 읍내를 거쳐 천안·예산 쪽으로 가는 29번 국도를 탄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세광엔리치빌을 지나 만나는 사거리에서 덕산 쪽으로 이어지는 지방도 609번을 따라 좌회전한다. 용봉산자연휴양림을 알리는 이정표가 보일 때까지 계속 직진하다가 이정표가 나오는 곳에서 좌회전한다. 사설 주차장이 있는 작은 삼거리에서 용봉사는 오른쪽 진입로를 따라 더 들어가는데, 휴양림 매표소를 지나 안쪽으로 얼마쯤 들어가면 절 주차장이 나온다.

신경리 마애불


이준애 (여행 칼럼니스트)

무통장입금 정보입력
입금할 금액은 입니다.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