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의 승용 전기차인 미쓰비시 아이미브(i-MiEV) 내부를 살펴보다가 조수석에 설치한 독특한 빨간 막대를 발견했다. 대충 봐서는 정확한 쓰임새를 알 수 없어 설명서를 읽어보니 불꽃과 연기를 내 차의 위치를 확실히 알릴 수 있도록 준비된 안전용품이었다. 주행거리가 짧은 전기자동차라는 특성에 따라 제조사가 배려했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 안전용품, 즉 ‘플레어’는 일본 운전자가 의무적으로 차에 갖고 다녀야 한다는 사실을 안 순간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국내 현실과는 너무나 다른 의무조항에 놀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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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비시 아이미브에 비치된 안전용품, 플레어 |
이와 관련해 일본 수입차 관계자는 “일본에선 안전 삼각대뿐만 아니라 플레어를 의무적으로 비치해야 한다”며 “산악 지형이 많은 일본 도로의 특성상 발광체를 따로 준비토록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해당 조항은 모든 차에 의무사항이며 주기적으로 새 제품으로 교체해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일본 현실과 달리 국내에서 자동차 안전용품을 바라보는 시각은 너무나 안이하다. 우리나라는 국토의 70% 이상이 산악지형이어서 도로를 건설할 때 많은 터널을 뚫고 다리를 놓는 특징이 있다. 또한 고속도로도 과거와 달리 굴곡을 줄이고 직선화하는 추세인 데다 차의 성능도 좋아져 평균속도가 높아졌다. 그러나 인프라 발달과 달리 운전자들의 안전 불감증은 일본과 큰 차이가 있다. 국내 운전자들은 트렁크 어딘가에 굴러다니는 안전삼각대를 찾을 수 없어 헤매기 십상이고, 설치법을 모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안전삼각대를 의무적으로 차에 비치하는 운전자가 많지만 실제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셈이다.
안전 불감증은 단지 안전삼각대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자동차 화재의 초기 진압을 위한 휴대용 소화기를 가지고 다니는 운전자도 드물다. 7인승 이상 승합차에서는 소화기 비치를 의무화하고 있지만 7인승 미만 차에선 소화기의 존재를 확인하기 어렵다. 거의 모든 운전자들은 강제 조항도 아닌 데다 필요성도 느끼지 못해 따로 구입을 꺼리는 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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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삼각대 사용법은 미리 잘 알아둬야 한다 |
안전용품을 의무적으로 갖춰놓고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따라서 안전용품의 비치장소를 지정해 긴급 상황에 손쉽게 찾을 수 있어야 하고 안전용품을 제대로 쓸 수 있도록 이용방법 교육도 반드시 해야 한다. 사고가 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고가 발생했을 때 더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도록 조치하는 것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안전용품 캠페인"을 제안하고자 한다. 정부와 자동차 제조사, 용품 제조사가 머리를 맞대고 좋은 대안을 마련해 운전자들이 안전조치를 적극 이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운전자들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꼴’이 되기 전에 미리미리 사고에 대비한 안전용품을 준비하는 현명한 자세도 필요하다.
박찬규 기자
star@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