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는 미국에서는 "어큐라 RL"로 알려진 혼다의 대표 대형 세단이다. 국내에서는 2006년에 출시했으며, 현재 시판되고 있는 제품은 2008년에 출시한 4세대 부분변경 모델이다. 레전드라는 이름은 혼다의 정신과 기술력이 "전설"처럼 오래 남을 수 있기를 바라는 뜻에서 붙인 것. 혼다 레전드 3.7을 시승했다.
▲스타일
레전드는 길이 4,985mm, 너비 1,850mm로 대형 세단으로서는 섭섭(?)지 않은 볼륨을 지녔다. 전체적인 디자인을 살펴보면 기존 공기역학을 중시한 디자인에 근육질의 강인함을 더한 것이 특징이다. 프런트 그릴에서는 힘이 느껴지며 후면은 리어 컴비네이션 램프 디자인을 채택, 세련미를 더해 혼다의 기함다운 위용을 뽐내고 있다.
실내는 센터페시아를 중심으로 도어 트림까지 이어진 우드 패널이 인상적이다. 전체적인 분위기를 이끌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센터페시아의 버튼들은 조작하기 편리하게 정리돼있다. 가운데 있는 조그셔틀 타입의 조절 다이얼은 유럽 브랜드들이 가지고 있는 조작성과 비슷한 느낌을 낸다.
센터페시아 맨 위에는 디스플레이 모니터가 있다. 이 모니터로 내비게이션과 자동차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처음 출시한 2008년에는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시점에서 이 모니터에 비치는 그래픽들은 어딘지 모르게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주기는 한다. 해상도도 그렇고 지도 내용도 그렇고 최근의 인포테인먼트 경향과 조금 거리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기능상의 문제는 없다.
전동으로 조작할 수 있는 4스포크 스티어링 휠에는 운전석에서도 각 기능을 조절할 수 있는 버튼들이 있다. 대형세단임에도 스포티함을 잊지 않은 탓인지 패들 시프트도 갖췄다. 계기판은 원통형으로 세 개. 속도계는 가운데 있고 아래로 트립컴퓨터 모니터가 나타난다. SH-AWD의 작동 상황과 연비, 주행거리를 표시한다.
기어 레버는 어코드와 비슷하지만 레전드가 조금 더 고급스럽다는 느낌이다. 센터 콘솔박스는 좌우로 열리지만 수납만 생각하면 큰 활용도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탑승인원은 다섯 명으로 앞좌석은 냉난방 시트를 적용했지만 뒷좌석은 열선만 들어갔다.
▲성능
레전드에 얹은 엔진은 V6 3.7ℓ VTEC이다. 기존 모델보다 배기량이 높아진 것이 특징이다. 최고출력은 307마력, 최대토크는 37.7kg·m을 낸다. 변속기는 수동모드가 포함된 5단 자동변속기로 대형 세단에는 보통 고단변속기가 들어간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의외다.
첫 가속에서 응답성은 예민한 편이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대형 세단의 그것보다 조금 더 날렵하다. 밟으면 쭉 뻗어나간다는 말로 설명할 수 있들 듯하다. 이후로 페달을 더 깊게 밟아 가속을 재촉하면 경쾌하게 따라주는 속도감이 인상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음은 귀에 거슬리지 않을 만큼 작다. 일본차 특유의 정숙성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혼다는 헬리콥터나 잠수함 등에 적용하는 소음 제거 시스템을 적용시켰다고 설명한다. 차체나 외부에서 침투하는 소음을 막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제거하는 역할을 하는 이 시스템의 이름은 "ANC(액티브 노이즈 캔슬레이션)"다.
혼다가 자랑하는 4륜구동 SH-AWD를 느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SH-AWD는 세계 최초로 구동력 자유제어를 실현한 4륜구동 시스템으로 전·후·좌·우 바퀴에 각각 다른 동력을 전달하고 제어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는 도로 상태와 관계없이 각각의 바퀴에 최적화된 구동력을 배분함으로써 주행 안전성을 한 단계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실제로 코너링 때 차가 밀린다는 느낌이 거의 들지 않았다. 하지만 ESC의 개입은 늦은 편이다. SH-AWD의 자유도를 극대화하기 위함이다.
승차감도 여유롭고 부드럽다. 일본차의 전반적인 특성이다. 대형 세단이지만 역동성을 강조한 차치고는 조금 아쉬운 게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든다. 그러나 레전드를 구매하는 소비자층의 성향을 생각해보면 그런 아쉬움은 그들에게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총평
레전드는 7,250만 원이란 차 가격으로만 따지면 벤츠 E클래스, BMW 5시리즈, 아우디 A6 등과 경쟁을 벌여야 한다. 이런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들이 단단한 하체를 바탕으로 한 강인한 주행과 승차감을 자랑할 때 레전드는 동력성능에서 결코 뒤떨어지지 않으면서 승차감마저 국내 소비자에게 좀 더 인상적으로 다가서는 게 사실이다. 게다가 이들보다 조금 더 크다는 장점도 있다. 그러나 다른 브랜드들이 새로운 모델로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것과 달리 4세대 모델이 처음 나왔던 2005년 이후로 완전변경 모델이 지금까지도 없다는 것은 분명한 약점이다. 이는 레전드가 시장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혼다가 극복해야 할 과제다.
시승/박진우 기자 kuhiro@autotimes.co.kr
사진/권윤경 기자 kwon@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