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신문에서 "정치인은 많으나 진정한 인물이 드문 시대"라는 글을 보며 얼마 전 다녀온 충남 홍성의 큰 인물 매죽헌 성삼문(1418∼1456)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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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삼문 유허지 전경 |
조선 초기의 대표적인 문신인 그는 훈민정음 창제에 큰 공을 세운 학자로 유명하지만 사육신의 한사람으로 더 높은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수양대군이 어린 조카 단종의 왕위를 빼앗아 즉위하자 박팽년·유응부·유성원·하위지·이개 등과 함께 단종의 복위를 노리다 발각돼 목숨을 잃은 성삼문은 절의를 지닌 대표적인 선비로 오늘날까지 많은 이들의 우러름을 받고 있다. 요즘 걸핏하면 "훗날 역사가 기억할 것"이라며 공언하는 위정자들을 보면 과연 저들 가운데 훗날 역사에 길이 남을 인물이 몇이나 될지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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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삼문 유허지의 충문사 |
홍성 읍내에서 예산군 덕산 방향으로 달리다가 608번 지방도를 타고 홍성군과 예산군 경계인 노은리에 이르면 성삼문 선생의 생가 터와 사당이 있는 유허지가 나온다. 놀랍게도 이곳은 고려 말의 명장 최영 장군이 태어난 곳이기도 해 풍수지리에 문외한이라 해도 예사로운 곳이 아님을 짐작케 한다.
성삼문 선생의 생가 터인 홍북면 노은리는 외가가 있던 곳으로, 태어날 때 하늘에서 "낳았느냐" 하고 묻는 소리가 세 번 들려서 "삼문(三問)"이라 이름을 지었다는 일화가 전해 내려온다. 하지만 지금 이곳엔 옛집의 흔적은 찾을 길 없고 "노은단"이라 이름 붙은 사당 안에 봉분 하나가 덩그러니 자리하고 있다. 이 봉분은 선생의 무덤이 아니다. 사육신의 위패를 묻은 봉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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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삼문 유허비 |
선생의 묘는 서울 노량진의 사육신묘역과 충남 논산시 가야곡면 양촌리 등에 나눠져 있다. 무덤이 이렇게 나눠져 있는 까닭은 당시의 끔찍했던 참형을 확인시켜주는 것이다. 단종 복위를 노리다 실패해 능지처참을 당한 그의 육신은 팔도(八道)에 조리돌려져 흩어졌고, 뒷날 흩어진 육신을 수습한 곳곳에 무덤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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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은단 입구 |
숙종 때에야 비로소 선생의 명예와 관직이 회복됐는데, 생가 터인 이곳에 사당을 세우고 사육신의 제사를 지내오다 조선 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철폐됐다. 당시 유생들은 사육신의 위패를 묻고 단을 모아 "노은단"이라 이름 짓고 제사를 지냈다. 이후 해마다 음력 10월20일에는 제사를 지내고 있다.
노은단과 가까운 곳에 조선 현종 9년에 세워진 선생의 유허비가 있다. 송시열이 지은 글에 김진상의 글씨로 비문을 새겼다. 노은리와 맞닿아 있는 대인리에는 성삼문의 부모 묘소와 부인의 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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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신 위패를 모신 노은단 |
성삼문유허지에서 최영 장군 사당을 찾아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다. 노은리 삼봉산 꼭대기에 있는 사당은 가파른 산길을 한참 올라가야 한다. 반듯하게 닦인 시멘트도로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오르지만 막상 오르다 보면 가파른 산길에 진땀 깨나 흘리게 된다. 정상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올라온 길을 뒤돌아보면 아찔한 그 기울기에 한 번 더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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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허지 부근 우물 |
1316년 외가인 이곳에서 태어난 최영 장군은 어려서부터 기상이 영민하고 남다른 용맹과 지모가 있는 비범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공민왕 이후 각종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뛰어난 장군이자 고려정권의 핵심에 있었으나,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에 맞서다 권력을 잃고 참수를 당한다. 당시 이 소식을 들은 개성 사람들은 저자의 문을 닫고 슬퍼했고, 온 백성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성계는 새 왕조를 세우고 나서 6년 만에 무민(武愍)이라는 시호를 내려 장군의 넋을 위로했으나, 개풍군 덕물산에 있는 최영 장군의 무덤은 지금껏 풀이 나지 않는 붉은 황토무덤, 즉 "적분(赤墳)"으로 있다고 한다. 원래 이곳에 있던 최영 장군의 사당은 언제 철거됐는지 알 수 없고, 지금의 건물은 1995년 말 새로 지은 것이다. 홍성군에서는 이곳에서 영신제를 올리며 최영 장군의 넋을 달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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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초밭 |
*맛집
성삼문과 최영 장군의 유허지는 홍성과 예산군계 부근이라 예산 쪽의 이름난 맛집을 찾아가는 것도 수월하다. 예산군 오가면 역탑리에 있는 "할머니딸 숯불 곱창마을"(041-334-9999) 은 돼지곱창으로 유명한 집이다. 48년째 곱창을 구워 온 이 집은 예산 돼지곱창구이의 원조다. 누린내 나지 않는 쫄깃쫄깃한 맛이 연륜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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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 장군 사당 오르는 길 |
*찾아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 홍성 나들목에서 빠져나와 홍성 읍내을 거쳐 국도 21번을 따라 예산으로 간다. 금마면 화양리(5km)를 거쳐 홍북 노은리(3km)에 이른다. 노은리에서 이정표를 따라 움직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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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 장군 사당인 기봉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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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봉산정에서 본 전망 |
이준애 (여행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