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의 역사는 195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부에선 1906년으로 시작을 잡기도 하지만 2차 대전 후 여러 곳에서 열리던 자동차경주의 통합을 위해 FIA가 발족하면서 본격 출발을 알렸다.
▲1950년대
1950년 FIA(Federation Internationale de l"Automobile)가 주최하는 포뮬러 원(Fomula 1™) 세계 챔피언쉽이 출범했다. 1라운드는 영국 실버스톤에서 열렸으며, 대회의 우승자는 이탈리아의 주세페 파리나였다. 이듬해에는 페라리가 F1에서 첫 우승했다. 후안 마뉴엘 판지오는 처음으로 챔피언에 등극했다.
1952년에는 "알베르토 아스카리"라는 드라이버가 시즌 전승으로 챔피언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아스카리는 이듬 해에도 9연승으로 전성기 실력을 뽐냈으며, 페라리는 14연승이라는 대기록을 작성했다.
1954년에는 2회 대회의 챔피언인 판지오가 생애 두 번째 F1 챔피언에 등극했다. 또한 7월31일 F1에서 첫 드라이버 사망자가 나온 안타까운 해이기도 하다. 이듬해인 1955년에는 판지오가 또다시 챔피언에 올랐다. 2년 연속 통산 3회 우승을 차지했다. 그 해 열린 모나코 그랑프리에서는 루이 사론이 56세의 나이로 레이스에 출전, 최연장 기록을 세웠다. 오늘날 보편적으로 쓰이는 디스크 브레이크가 처음 등장했다.
1956년 판지오가 3회 연속 챔피언에 오르고 다음해인 1957년에도 챔피언에 올라 4년 연속 우승이자 통산 5회 우승의 짜릿함을 맛봤다. 그러나 판지오의 세계 챔피언은 그 해가 마지막이었다.
1958년에는 F1에서 처음으로 컨스트럭트 챔피언쉽을 도입했다. 첫 우승은 반월(VANWALL)이 차지했다. 이 해는 엔진을 드라이버 후방에 장착하는 포뮬러 머신이 최초 우승한 해로도 기억된다. 이 기술은 1960년대의 기술 표준이 됐다. 또한 레이스 도중 드라이버 교체가 금지됐다. 벨기에 그랑프리에서는 F1 사상 처음으로 여성 드라이버 테레사 데 필립스가 출전했다.
▲1960년대
1960년에는 로터스가 F1 최초로 미드쉽 엔진을 올린 머신을 투입했다. 로터스는 1962년에도 모노코크 섀시 기술을 F1에 등장시키며 자동차 기술의 선구자로서 이름을 날렸다. 다음해에는 현대적인 깃발 신호체계가 F1에 처음 등장했다.
1964년은 존 셔터스라는 드라이버가 모터사이클과 F1에서 우승하는 최초의 선수가 됐다. 한편, 혼다는 아시아 최초로 F1에 참가했다.
▲1970년대
1970년 요헨 린트라는 드라이버가 레이스중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그는 시즌 득점에서 종합 우승을 차지, "사후(死後) 챔피언"이라는 독특한 이력을 남겼다. 굿이어 타이어는 처음으로 슬릭 타이어를 F1에 소개했고, 관중석과 피트 사이에 펜스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는 규정이 첫 등장했다.
1972년에는 F1 머신에 브레이크 라이트를 처음 적용됐다. 1973년에는 출발 그리드가 종전 3열 체제에서 2열 체제로 개편됐으며, 드라이버의 메디컬 테스트도 처음 실시됐다. 1975년에는 렐라 롬바르디라는 여성 드라이버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6위에 입상하며 0.5포인트를 획득했다.
1977년은 르노가 F1에 첫 참가했다. 새로운 터보엔진을 장착한 르노팀은 1979년 터보차저 기술로 첫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1978년에는 로터스가 그라운드 이펙트 기술을 F1에 소개했다. 이 기술은 F1 항공역학에 일대 변혁을 가져온 기술로 평가받고 있다.
▲1980년대
탄소섬유 차체를 가진 차가 F1에 1981년 첫 등장했다. 그 다음해인 1982년에는 레이스 도중 급유를 하는 제도가 처음 만들어졌다. 1983년에는 공기역학을 강조하는 그라운드 이펙트 기술이 금지 됐다. 대신 바닥을 평평하게 만드는 플랫 보텀(Flat Bottom) 기준이 등장하고 4륜구동을 금지하는 규정도 생겨났다.
굿이어 타이어는 슬릭 타이어에 이어 레디얼 타이어를 F1에 1984년 투입했다. 이듬해에는 의료용 헬기의 의무화가 추진됐으며, 1987년에는 엔진 배기량이 3,500cc로 확대됐다.
1988년은 아일톤 세나라는 레이서가 데뷔 후 첫 챔피언에 오른 해로 기억된다. 그의 소속팀인 멕라렌은 16개의 그랑프리 중 15개의 우승을 독식했다. 페라리는 최초의 세미오토 변속기를 만들어 냈고 머신 충돌 테스트가 의무화 됐다.
1989년은 터보차저 엔진이 금지됐다. 드라이버의 약물 테스트 규정도 첫 도입됐다.
▲1990년대
1991년 호주 그랑프리에서는 악천후로 경기가 14랩만에 중단되는 최악의 결과를 맞았다. 역대 최단 시간 레이스(24분34초899)라는 명예 아닌 명예도 받았다. 1992년 F1은 무연휘발유의 이용 규정을 만들었다.
1994년은 슬픔과 희망이 동시에 나타난 해로 기억된다. 1988년 데뷔와 함께 우승이라는 화려한 경력의 아일톤 세나가 레이스 도중에 사망하는 한편, 역사상 가장 위대한 F1 드라이버라는 미하엘 슈마허가 사상 처음으로 챔피언에 올랐다. 모든 피트크루는 방화복 착용을 해야 한다는 규정이 처음 만들어지기도 했다.
1995년 엔진 배기량이 종전 3,500cc에서 3,000cc로 낮아졌고 1996년에는 데이먼 힐이 F1에서 우승하며 처음으로 아버지 그라함 힐에 이어 아들도 챔피언이 되는 진기록을 수립했다. 그 다음해에는 브리지스톤의 F1 첫 참가가 이뤄졌다. 1998년은 슬릭 타이어가 금지되고, 그루브 타이어의 의무화가 실행됐다.
▲2000년대~현재
미하엘 슈마허가 챔피언에 오른 2000년은 페라리에게도 뜻 깊은 해다. 소속 드라이버가 챔피언에 오른 것이 21년만이어서다. 2003년 슈마허는 또다시 챔피언에 올라 6번째 월드 챔피언에 올랐다. F1 최초의 기록이다. 드라이버의 목을 보호하는 HAHS라는 장치가 2003년에 첫 등장했다.
2004년 미하엘 슈마허는 통산 7번째 종합 우승을 거머쥐었다. 바레인에서는 처음으로 F1경기가 열렸다. 슈마허가 2007년 은퇴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스피드 중독이라는 말까지 써가며 언젠가 그가 F1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2008년도 F1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시기다. 영국 출신의 루이스 해밀턴이 최연소 우승을 일궈냈다. 해밀턴은 또한 최초의 흑인 챔피언이라는 명예도 가져갔다. 다음해 혼다 팀은 F1에서 빠지기로 결정했다. 세계 금융위기에 따른 비용 절감 차원에서였다. 팀의 단장인 로스 브라운은 혼다팀을 인수하기로 결정하고 신생팀 브라운GP를 탄생시켰다. 그리고 브라운GP는 사상 처음으로 신생팀 컨스트럭트 챔피언에 올랐다.
2010년 슈마허가 F1으로 돌아왔다. 1년 계약으로 메르세데스-벤츠 팀에 둥지를 틀었다. 골수 페라리 팀 팬들은 팀의 영웅이었던 슈마허를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그리고 마침내 2010년 10월, 역사적인 한국 그랑프리가 시작된다.
박진우 기자
kuhiro@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