곶감이 익어가는 주황빛 시간 속으로

입력 2010년11월05일 0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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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밝히는 것은 단연 오색 단풍이다. 노란 은행나무 가로수는 가로등보다 더 환히 도심의 가을을 밝히고, 땅거미 내려앉은 시골의 산과 들은 색색의 단풍이 불을 밝혀 늦도록 저물지 않는다. 경북 상주시 외서면 남장리는 또 다른 가을빛에 온 동네가 환하다. 나뭇가지가 휘도록 매달린 주황빛 감들과 속살을 드러낸 곶감용 감들이 건조장마다 처마마다 타래에 매달려 가을을 밝힌다. 알전구처럼 환하게 불 밝힌 가을이 상주를 황홀하게 물들이고 있다.

풍경 저편 풍경


경북 상주는 예부터 "삼백(三白)의 고장"으로 불렸다. 이곳을 대표하는 특산물이 흰 누에고치, 흰 쌀, 곶감의 흰 가루 등이어서 그렇게 불리고 있다. 특히 곶감은 전국 생산량의 60%를 차지해 국내 최대 곶감 산지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소백산맥 줄기인 청화산과 속리산, 지압산이 상주의 서·남·북을 에워싸고 있는데, 이런 높은 산에 둘러싸인 지형적 특성이 오늘날 상주를 "곶감의 본고장"으로 자리를 굳히게 했다.

곶감마을 입구


흔히 "곶감은 한로가 환갑"이라는 말이 있다(한로는 추분과 상강 사이의 절기로 올해는 10월8일). 한로가 지나면 감이 물러 연시가 되기 때문에 그 이전에 나무에서 감을 따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높은 산에 둘러싸인 상주는 상강 앞뒤로 감을 딴다.

남장리


이 무렵은 상주의 여러 곶감마을들이 가장 바쁜 철이다. 연시가 되기 전 나무에서 "털어낸" 감들의 껍질을 벗기고 줄줄이 엮어 타래를 만든 뒤 건조장에 내거는 작업이 바삐 이뤄지기 때문이다. 칠순을 넘긴 할머니도 이때는 일등일꾼이다. 점심이 "코로 들어 갔는지 입으로 들어갔는지 모를 만큼 후딱 먹어치우고" 작업장에 둘러앉아 바쁘게 손을 놀린다. 한쪽에선 기계를 돌려 순식간에 감 껍질을 벗겨내고, 몇몇은 "홀딱 벗은" 알맹이 감을 손질해 한데 모아놓고 다른 쪽에선 곶감타래를 만들어 건조장에 달아매는 과정이 일사불란하게 이어진다.

남장리 곳곳에 있는 곶감 건조장


아낙들의 잽싼 손놀림으로 건조장은 곧 감타래로 가득 찬다. 그 넓은 건조장을 온통 주홍빛으로 채우는 모습은 참으로 장관이다. 그렇게 건조장에 옮겨진 감은 한 달에서 한 달 보름 동안 햇볕을 받고 찬바람을 맞아가며 말린다. 인고의 그 시간을 거치면 비로소 온몸에 뽀얀 분을 바른, 쫀득하고 달콤한 곶감으로 태어난다.

나뭇가지의 감


노악산 자락의 남장리는 상주에서도 손꼽는 곶감마을이다. 길가며 들판이며 산자락 모두 눈길 닿는 곳엔 감나무다. 그래서 이맘때면 주황빛 알전구가 불을 켜는 듯한 장관을 놓치지 않으려 관광버스까지 앞세워 찾아오는 외지인들이 많다. 유독 남장리 곶감마을에 많은 이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 데에는 곶감 말고도 다른 이유가 있다. 마을 안쪽으로 더 올라가면 천년 고찰 남장사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곶감이 익어가는 시간


남장사의 고즈넉한 가을 정취는 이미 알만한 이들 사이에는 소문나 있다. 단풍 물든 계곡을 따라 오르는 진입로의 호젓한 분위기는 아껴가며 걷고 싶은 산길이다. 정교한 목공예가 눈길을 끄는 일주문을 지나 절집과 마주하면 소박하면서도 단아한 분위기가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힌다. 극락보전 앞마당에 가지런히 깔린 잔디며 절집을 둘러싼 담벼락이 돌담으로 이뤄진 것도 여운을 안긴다.

곶감건조장


국내 불교미술을 대표하는 걸작품이라는 철불좌상과 목각탱이 있는 보광전을 지나 절 뒤쪽으로 가면 본격적인 산책로가 펼쳐진다. 대나무숲 사이로 낙엽 쌓인 오솔길이 운치 있게 이어지는 길이다. 낙엽 밟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고요한 숲길, 가을 빛깔을 찾아 나선 여행이 어느새 내 속에 있는 또 다른 빛을 찾아가는 사색의 여정이 된다.

뒤돌아볼 겨를도 없다


*맛집

연중 가장 바쁜 아낙들
남장리에서 보은 방향으로 4km 남짓 가면 남장송어집(054-534-5539)이 있다. 운치 있는 식당 앞마당은 송어 양식장이다. 직접 재배하고 짠 야채와 들기름으로 맛을 낸 비빔회, 튀김, 소금구이는 물론 어린이를 위한 송어피자, 송어가스 등 송어를 이용한 다양한 메뉴를 선보인다.



연중 판매하는 곶감
*가는 요령

중부내륙고속국도 상주 나들목에서 빠져 25번 국도를 타고 상주 시내를 지나 보은 쪽으로 가면 남장리- 남장사에 이른다. 혹은 충주에서 3번 국도를 따라 문경-상주-25번 국도-남장리-남장사에 이른다.

남장사 입구 벅수


이준애 (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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