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빈 절터로 떠나는 여로는 각별한 여운을 준다. 맑고 고요한 바람을 맞으며 낙엽지는 숲길을 거닐어 멈춘 듯 흐르는 시간을 찾아가는 길은 내 안의 길을 찾아가는 사색의 여로다.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에 자리한 보원사지를 찾아가는 길은 이 계절, 더 깊은 울림을 준다.
|
만추의 보원사지 |
처음부터 보원사지를 목적지로 삼아 찾는 이는 드물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왕산 동편 계곡에 조성된, 백제미소로 유명한 마애삼존불상을 보러 온 걸음에 보원사지를 들른다. 그도 그럴 것이 마애불이 위치한 곳에서 불과 2km 떨어진 곳에 보원사지가 자리하고 있어서다.
|
단풍 든 아라메길 |
마애삼존불에서 강당천을 끼고 보원사지까지 이어지는 길은 자동차로 내달리기엔 아깝다. 이 길은 얼마 전 조성된 서산 ‘아라메길’의 한 코스다. 아라메길이란 바다의 고유어인 ‘아라’와 산의 우리말인 ‘메’를 합친 말로, 서산의 아름다운 산과 바다를 볼 수 있는 친환경 트레킹코스다. 아라메길 제1코스인 이 곳은 유기방가옥, 유상묵가옥, 마애삼존불, 보원사지, 개심사, 일락사, 해미읍성으로 이어져 전통가옥과 불교문화의 진수를 체험할 수 있다.
보원사지가 위치한 강당계곡의 특징은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형태의 계곡이며,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이 곳을 무릉동이라 했다. 입구의 좁은 계곡을 지나 복숭아꽃잎을 따라가면 별천지와 같은 마을이 전개되기 때문이다. 이 곳에 서산 마애삼존불상, 보원사지가 있고 주변에 백암사지를 비롯해 많은 암자터가 산재해 있으며 도장바위, 쥐바위, 중사란골, 구낭골, 선돌바위, 성안골 등이 있다. 그 중 중사란골은 승려가 죽으면 화장하던 곳이라 한다. 백암사지는 이 골 안에 99개의 사찰과 암자가 있었는데, 100개를 채우지 말라는 계시를 어기고 백암사를 지어 모두 망했다는 전설이 있다.
|
당간지주 |
보원사 옛 절터는 금방 모습을 보인다. 발굴조사중인 드넓은 절터는 당간지주와 석탑 등이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다. 보원사의 창건연대와 소멸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절터의 규모로 보아 웅장했던 사찰임은 짐작할 수 있다. 예부터 전하는 이야기와 출토된 유물로 보아 보원사는 백제시대 창건된 사찰로 추정되고 있다. 절터에 남아 있는 법인국사보승탑비에 승려 1,000여 명이 머물렀다는 기록이 있다.
|
보원사지 5층석탑 |
1969년에 보원사지의 금당지 남쪽 건물터에서 백제시대(6세기 중엽) 금동불입상이 출토돼 부여박물관에 보관돼 있으며, 1918년 금당지에서 중앙박물관으로 가져간 철조여래좌불상이 학계에서 연구된 결과 통일신라시대의 철불로 알려졌다. 또 1968년에 보원사지에서 출토돼 중앙박물관에 보관된 신라시대 금동여래입상 등이 출토된 사례와, 통일신라말 진성여왕 7년(893)에 이 곳 태수를 역임한 고운 최치원이 남긴 기록문으로 볼 떄 통일신라말 당시에 보원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보원사지 내에 현존한 유물로는 석조(보물 제102호), 당간지주(보물 제103호), 오층석탑(보물 제104호), 법인국사보승탑(보물 제105호) 등이 있다. 이들 석조 유물은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을 비롯해 출토된 기타 유물과 문헌 등을 참고하면 이 곳 보원사지는 백제시대에 보원사가 창건돼 통일신라시대를 거쳐 고려 제4대 광종의 국사였던 법인국사가 보원사에 기거하면서 보원사를 크게 중창, 조선시대까지 존치해 온 것으로도 추정되고 있다.
|
절터에 자리한 절집 |
*맛집
보원사지 가는 길목인 용현계곡에 자리한 용현집(041-663-4090)은 어죽을 전문으로 한다. 운산면에 돌솥밥(041-663-4654), 운산가든(041-669-6060) 등 한식을 하는 모범음식점이 몇 있다.
|
법인국사보승탑비 |
*찾아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 서산 나들목에서 나와 32번 국도를 타고 운산 - 지방도 618번 고풍리 - 마애삼존불/용현계곡 - 보원사지에 이른다.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할 경우 천안 나들목에서 나와 아산 - 예산 - 45번 국도 - 덕산 - 운산(원평리) - 618번 지방도 - 고풍리 - 마애삼존불 - 용현계곡/보원사지.
|
절집 감나무와 스님 |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
|
드넓은 보원사지 |
|
석탑에 새겨진 팔부중상 |
|
불사함을 지키는 고양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