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길손 반겨주는 아득한 시간 속으로

입력 2010년11월26일 0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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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엔 아직도 가을이 머물고 있다. 곳곳에 머무는 그 모습이 한량없이 깊다. 그 길을 따라 걸으면 절로 깊은 사색의 세계로 빠져들게 된다. 그래서인지 이맘때면 특히 그곳을 찾는 이들의 발길이 늘고 있다. 경북 안동에 조성된 퇴계 녀던길로 향하는 걸음들이다.

만추의 퇴계종택


조선 중기의 대학자인 퇴계 이황(1501~1570) 선생이 벼슬에서 물러나 후학을 돌보며 머물렀던 안동에는 선생의 발자취가 곳곳에 남아 있다. 도산서당에서 낙동강을 따라 이웃한 봉화 청량산을 즐겨 찾았던 선생의 흔적을 쫓아 안동시에서는 퇴계 선생이 걷던 옛길이라고 해 "퇴계 녀던길"을 복원해 놨다. 도산서원에서 청량산까지 50리길(20㎞)에는 퇴계종택-퇴계묘소-이육사문학관-단천교-청량산전망대-옹달샘정자-학소대-경암-농암종택-한속담-올미재-고산정 등이 이어진다.



퇴계종택은 도산서원 주차장에서 북쪽 언덕길을 넘어 가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이 건물은 퇴계의 13대 후손이 1926년에서 1929년 사이에 새로 지은 것이다. 원래 가옥은 1907년 일제가 불살라버렸다고 한다. 조선 말기~일제시대 때 안동은 항일운동이 활발했던 곳이었다. 퇴계 이황의 11대 손인 이만도가 의병대장으로 앞장서자 일제는 안동의 정신적 지주였던 퇴계종택을 불질러버린 것이다.

퇴계종택 솟을대문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 있는 퇴계종택은 퇴계의 손자 이안도가 지은 집이다. 퇴계선생은 만년에 고향인 이곳에 한서암(寒棲庵)이라는 작은 집을 짓고 머물며 학문에 몰두하다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퇴계의 손자인 이안도는 할아버지의 자취가 배 있는 한서암 동남쪽에 집을 짓고 대를 이어 살았다. 1715년에는 추월한수정(秋月寒水亭)을 건축하기도 했다. 10대 손인 이휘녕이 원래 집 건너편에 또 한 채 집을 지었으나 1907년 왜병의 방화로 두 곳 종택이 다 불타버렸다. 이에 13대 후손이 이곳에 살던 임씨들의 종택을 매입해 옮겨 세우고, 추월한수정도 옛 건물처럼 재건했다.



34칸, 2,119㎡(약 640평)나 되는 퇴계종택에는 지난해까지 4대가 한집에 살았으나 15대 손인 이동은 옹이 2009년 12월 23일 101세를 일기로 세상을 뜨면서 아들 근필(77) 옹이 뒤를 이어 종택을 지키고 있다.

"퇴계선생구택"이라고 쓴 대문 편액


퇴계종택에서 안쪽으로 조금 들어가면 하계마을이 나온다. 하계마을 뒷산에는 퇴계선생의 묘소가 있다. 표지석을 보고 돌계단을 밟아 올라가면 중간쯤 퇴계의 며느리 묘소가 있고 조금 더 올라가면 퇴계의 묘역이 눈에 들어온다. 대학자의 무덤치곤 언뜻 초라한 느낌도 없잖아 있으나 소박한 묘역에 감도는 범치 못할 기상과 기품에 머리를 조아리게 된다.



퇴계 묘소와 관련해 전해오는 일화가 있다. 퇴계선생 사후 선조가 나라의 이름난 지관을 보내어 묘지를 물색토록 명했는데 지관이 도산에 도착해 여러 날 산천을 답사한 끝에 건지산 골에 명지를 잡아 싸리나무를 묶어 표시를 해두었다. 황룡이 강을 건너는 형국인 황룡도강의 명당이었다. 그러나 퇴계의 제자들이 묘소는 예장을 하지 말라는 선생의 유계에 따라 지금의 묘소로 장지를 정했다고 한다.

추월한수정


그러자 인근의 사람들이 필요 없게 된 황룡도강의 명당 터를 너도나도 먼저 차지하려고 건지산골에 올라갔는데 온 산천이 싸리나무로 묶여 있어 어느 곳이 진짜 명당인지 알 수 없었다. 그 명당은 지금까지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소나무가 주위를 에워싼 묘역에는 망주석과 문관석이 묘소를 지키고 있다. 묘소 오른쪽에는 퇴계의 유계대로 자그마한 빗돌에 "퇴도만은진성이공지묘(退陶晩隱眞城李公之墓. 늘그막에야 도산에 물러나 숨어 산 진성 이공의 묘)"라고 쓰여 있고, 봉분은 잔디로 잘 가꿔져 있다. 묘역을 찾은 낯선 길손의 발소리에 조용히 책장을 넘기던 선생이 빙긋 웃으며 돌아볼 듯도 한 깊은 가을이다.

종택 앞을 흐르는 실개천


*찾아가는 길

중앙고속도로 서안동 나들목에서 빠져 안동 시내로 들어간다. 안동 시내에서 도산서원 이정표를 따라 가면 봉화쪽 35번 국도로 연결된다. 도산서원 주차장이 오른쪽으로 보이는 고갯마루를 넘어서면 이육사문학관과 퇴계종택 등을 알리는 이정표가 보인다. 이정표를 따라 우회전해 달리면 바로 퇴계종택이 나온다. 계속해 안쪽으로 들어가면 하계마을이 나오는데, 마을 입구 정자가 서있는 곳에서 퇴계묘소로 올라가는 돌계단이 나온다.



이준애 (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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