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선한 세모다. 캐럴송이 흐르는 거리를 걷는 사람들 표정에 근심과 우려가 안개처럼 살짝 내려앉았다. 문득 섬들의 안부가 궁금하다. 바싹바싹 타들어가는 속내를 숨긴 채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고 선 서해안의 섬들. 그 섬들 중에서도 강화도의 시름은 여느 섬보다 깊고 무거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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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족산성 남쪽 입구 |
강화(江華)는 "강물이 끝매듭하는 꽃"이라는 아름다운 이름과 달리 멍에처럼 짊어져온 시련의 역사는 길고도 길다. 몽고대군의 위협이 끈질겼던 고려 때부터 조선시대의 정묘·병자호란으로 겪어야 했던 참담했던 운명과, 한말의 소용돌이치는 역사 속에서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거쳐 운양호사건을 치렀던 시련의 역사를 고스란히 걸머지고 온 강화도는 저물어가는 2010년 오늘의 모습을 어떤 눈길로 바라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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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시련의 역사 현장 초지진 |
그 강화도로 가보자. 날카로운 겨울 칼바람을 기꺼이 안고서 곳곳에 오롯이 남아 있는 시련의 역사 현장들과 마주하자. 훗날, 당신은 저물어가는 12월 어느 날인 오늘을 오래도록 기억하리라. 강화도로 들어가는 초지대교를 건너면 곧 바로 초지진에서 발목이 잡히고 만다. 성벽과 늙은 소나무에 남아 있는 포탄자국이 생생하다. 타임머신을 타고 격전지로 날아간다. 황 냄새가 매캐하다. 눈을 뜰 수 없지만 사방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와 대포 소리가 끊이질 않는 걸 보니 아직도 전투가 계속되고 있는 듯하다.
고종3년(1866) 천주교 탄압을 구실로 침입한 프랑스군과 벌인 싸움에서 피해가 막심했는데 고종 8년(1871) 4월에 통상을 강요하며 내침한 미국군을 맞아 또다시 숱한 피를 흘린 것도 모자라 운양호를 앞세운 일본 군함을 맞아 고종 12년(1875년)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무고한 목숨이 맥없이 스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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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지진에서 본 초지대교 |
초지진에서 걸음을 옮겨 찾아간 광성보, 덕진진, 갑곶돈도 마찬가지다. 몽고항쟁 39년을 비롯해 조선 인조 때에 일어난 병자호란과 정묘호란, 개화기 때 밀어닥쳤던 열강의 세력들과 맞서 숱한 이들이 목숨을 잃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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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막리 해변 송림 |
전쟁의 흔적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예전과 달리 착잡하다. 떨치듯 그곳을 나와 강화도 남단, 전등사가 있는 정족산으로 향한다. 하지만 이곳 역시 시련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았다. 천주교 탄압과 프랑스 신부 살해를 구실 삼아 강화도에 침입한 프랑스군을 양헌수가 이끄는 조선의 정예부대 500여 명이 정족산성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프랑스군은 조선군의 화승총보다 발사거리가 월등히 길고 사격 속도도 빠른 최신식 개인 화기를 보유하고 있었으나 지형상의 이점을 이용한 양헌수의 작전 지휘로 프랑스군을 물리쳤다.
누가 승리하고 누가 패하든 무고한 목숨을 담보로 하는 전쟁의 역사는 왜 되풀이되는 걸까. 두렵고 우울한 뉴스를 접하는 보통사람들의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다 마찬가지일 게다. 정족산성을 지나 휑한 겨울 전등사를 찾는다. 인간세상의 이런 저런 번뇌를 모두 내려놓고 부처님을 향해 합장한다. 바람에 떠는 듯한 가녀린 풍경소리가 꿈결처럼 아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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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사 대웅전 꽃살문 |
*맛집
강화읍내 중앙시장 안에 가정식 백반으로 유명한 우리옥(032-934-2472)이 있다. 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손맛을 지키고 있는 맛집이다. 전등사 쪽에서는 동막리나 장흥리로 가면 너멍골숯불장어(032-937-6592), 강화장어구이(080-592-0592) 등을 비롯한 장어구이집이 줄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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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사 |
*찾아가는 요령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김포 나들목에서 나가 48번 국도를 타고 김포-강화대교-강화읍에 이른다. 강화읍에서 84번 지방도를 따라 이정표대로 움직이면 된다. 또는 국도 48번을 타고 김포 누산리에서 P자 좌회전해 양곡-대명리를 지나 초지대교를 건너면 오른쪽으로 초지진이 보인다. 덕진진, 광성보 등도 이정표를 따라 쉽게 찾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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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지대교 야경 |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