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 값, 세금은 '로맨스' 정유사는 '불륜'인가?

입력 2011년01월17일 0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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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시책에 맞춰 ℓ당 20원을 내렸습니다."

지난주 지방을 다녀오다 잠시 들른 휴게소 주유소가 내건 플래카드다. 청와대까지 나서며 기름 값 인하를 유도하자 한국도로공사가 전국 고속도로 주유소의 기름 값 인하를 유도했다. 대통령까지 기름 값 인하 얘기를 꺼냈으니 정부 산하 공기업으로선 행동으로 보여주려 한 게 아닌가 싶다.

플래카드 내용을 본 뒤 정부에서 한국석유공사에서 운영하는 오피넷을 검색, 유통단계별 가격을 들여다봤다. 먼저 정유사 공급 가격이다. 1월 첫째주 기준으로 정유사가 내보내는 휘발유의 공장도가격은 ℓ당 829원이다. 경유는 863원이다.

정유사 공장에서 막 뽑아져 나온 휘발유 1ℓ에는 교통세가 529원, 교육세가 79원, 주행세가 137원이 붙는다. 이들 세금을 더하면 휘발유 1ℓ를 정유사가 대리점이나 주유소에 공급하는 가격은 1,733원이 된다. 같은 기간 주유소는 정유사로부터 받은 기름을 평균 ℓ당 1,824원에 판매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정유사 공장도가격보다 세금이 더 많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정부는 세금 인하 없이 유통단계에서 어떻게든 기름 값을 내리려 하고 있다. 특히 기름에 부과되는 세금은 교통세에 따라 탄력적으로 움직이는 구조를 갖고 있다. 쉽게 보면 교통세를 내리면 교육세와 주행세가 덩달아 인하돼 사실상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 효과가 크다는 얘기다.

하지만 정부로선 기름으로 거둬들이는 세금을 포기하기가 쉽지 않다. 정유사가 네 곳으로 한정돼 있다 보니 징수가 편한 데다 금액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지난 2008년 기름 값이 치솟았을 때도 유류세 인하가 아니라 유류비 환급을 선택했다. 기름 값이 오르면 세금도 같이 올라 오히려 기름 값 부담을 더 부추길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감안, 늘어난 세수를 국민들에게 현금으로 돌려줬던 제도다. 세금을 내려도 국민들의 체감지수가 낮다는 점에서 선택된 방식이지만 핵심은 "내리기 싫고, 가급적 돌려주기 싫다"였다. 실제 당시 유류비를 환급받을 수 있음에도 그렇게 하지 못한 사람이 적지 않다. 근로소득자나 자영업자가 아닌 개인적인 아르바이트에 종사하는 사람은 추가 확인 서류 제출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당시 얼마나 유류비로 환급됐는지 알 길은 없지만 정부가 예상했던 1,380만 명이 모두 받지는 못했을 것이란 게 정유업계의 추산이다.

이런 이유로 기름 값을 내려 서민들에게 현실적인 도움을 주려면 정부의 세금 인하가 더욱 절실하다. 그렇지 않고 주유소나 정유사를 아무리 조사해봐야 "바위에 계란 치는" 격이다. 바위를 깨려면 바위나 그보다 센 도구를 써야 하는 것처럼 기름 값을 내리려면 정유사와 주유소 담합 조사와 함께 세금 인하가 전제돼야 한다. 지금처럼 ℓ당 20원 인하했다고 고속도로 주유소에 플래카드 내걸어봐야 코웃음만 나올 뿐이다. 어떻게든 세수를 늘리거나 유지하려는 정부의 생각이 변하지 않는 한 기름 값은 쉽게 내리지 않는다는 점을 국민들은 잘 알고 있다. 세금 내리지 않고 기름 값 내리려 했다면 아예 얘기를 꺼내지 않는 게 더 나았을 듯싶다. 세금은 로맨스고, 정유사와 주유소의 이익은 불륜인가?. 슬그머니 화가 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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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주 기자 soo4195@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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