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를 살 때 필요에 따라 선택하는 품목이 다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선택품목이지만 선택이 불가능한 품목도 적지 않은 탓이다.
가까운 지인이 뚜벅이 생활 청산을 위해 인터넷으로 견적을 냈다. 하지만 예상보다 높은 가격에 선뜻 결정 내리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선택품목을 몇 개 넣었더니 부담되는 가격이 산출됐다고 했다. 물론 선택품목 중에는 지인이 원하지 않는 품목도 있었다. 이들 장치를 빼면 간단하게 해결될 일이지만 필요한 장치와 패키지로 묶여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그는 이런 저런 고민을 하다가 인터넷 창을 닫았다.
이른바 "선택품목 끼워팔기"는 자동차 업계에서 어제 오늘 일이 아닐 만큼 오랜 관행이다. 그래서 소비자 불만이 큰 것도 사실이다. 이런 이유로 지난 2009년 안전장치 끼워팔기를 중지하라며 공정거래위원회는 국산차 업체를 제재하기도 했다. 현대차와 기아차를 비롯한 르노삼성, GM대우, 쌍용차 등 국내 제조사가 모두 해당됐다. 적어도 안전에서는 소비자 선택권을 보호하라는 단서도 붙였다.
1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소비자 기대만큼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오히려 더 심해졌다는 얘기가 적지 않다. 가령 얼마 전 출시된 신차는 6대4 분할시트를 적용하려면 40만 원짜리 선택품목을 따로 골라야 한다. 일종의 패키지 상품이다. 6대4 분할 시트 외에 발열 스티어링 휠, 전동 접이식 아웃사이드 미러 등이 한꺼번에 적용된다. 넣고 싶은 것 하나 때문에 원하지 않는 것까지 사야 하는 셈이다. 게다가 기본형에선 이들 품목을 고를 수도 없다. 기본형보다 100만 원 비싼 중급을 구입해야만 그나마 자격을 준다. 다시 말해 6대4 분할 시트를 넣고 싶다면 기본형이 아니라 중급 트림을 사야 한다는 말이다. 더불어 다른 편의 장치도 함께 말이다.
제조사가 이 같은 판매방식을 개선하지 않는 한 소비자의 선택권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차 가격도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비싸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구입을 포기하는 이도 적지 않다.
제조사도 할 말은 있다. 기본형에서도 최고급형에 들어가는 항목을 적용할 수 있도록 소비자를 배려하면 생산비용이 그만큼 증가한다는 설명이다. 쉽게 말하면 "맞춤 정장"이 기성복보다 비싸다는 의미다. 그러면 오히려 소비자 비용부담이 높아질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한 차종의 트림을 여럿으로 나누고 선택품목을 통합, 판매하는 방법을 택했다는 친절한 해설도 해준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핑계"라는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적어도 몇 가지 장치가 묶인 거라면 기본형도 보편적으로 제공돼야 이런 변명이 통한다. 가장 저렴한 트림을 사는 사람이라고 6대4분할 시트에 발열 스티어링 휠을 갖지 말라는 법은 없다. 선루프도 달고 싶고, 화려한 시트 색상도 고르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자신에게 필요치 않은 선택품목이 더 들어간 탓에 가격 상승 요인도 발생한다. 그러면서 선택권을 늘렸다는 말은 성립될 수 없다. 애초 상위 트림에 여러 장치가 묶여 있는 것을 사도록 해놓은 것 자체가 문제다. 소비자의 합당한 권리가 자동차 회사의 편의에 배척당한 꼴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제조사에 법적인 책임을 물을 수도 없다. 2년 전 소비자 손을 들어줬던 공정거래위원회는 "안전장치를 선택품목에 끼워 팔았다는 문제점은 당시 제재해 일단락됐다"며 "자동차의 선택품목은 수많은 항목이 걸쳐 있어 세세히 적용하기 힘들고, 개별 제품이 아니라면 제품 안에서 기능을 넣고 빼는 일이 도덕적으로는 부당할 수 있지만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전했다. 제조사의 생각이 바뀌지 않는 한 구조 자체가 바뀔 수 없다는 말과 같다.
결국 지인은 원치 않았던 품목까지 넣으며 비싸게 차를 구입했다. 그는 "차가 꼭 필요한 것 같아서 사긴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원하지 않는 물건을 산 것 같다"라며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금액을 지불했지만 일방적으로 제조사에 휘둘려 마음이 착잡하다"고 하소연했다.
선택이란 말은 자유롭게 고를수 있다는 의미다. 이름이 같은 차를 산다면 트림에 관계없이 편의장치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선택이 아닌 강요에 가깝다. 그러면서도 감내는 언제나 소비자의 몫이다. 돈을 내고도 하라는 대로만 끌려가야 하는 게 지금의 자동차 소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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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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