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타국땅에 잠든, 이땅을 밝힌 사람들

입력 2011년02월05일 0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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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별렀던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을 찾았다, 민족 최대 명절인 설날 아침에. TV에서는 간밤에 극심했던 귀성길 정체를 전하며, 이제 곧 차례를 마친 귀경인파가 다시 바쁜 목소리로 고속도로를 메울 거라고 예보했다. 모두들 고향을 찾고 조상을 찾는 명절에 외국인 묘지라니! 어이없어 하는 주변사람들에게 속으로 대꾸한다. "바로 설날이라서 찾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들은 왜, 살아서도 이토록 고향을 찾고 조상을 찾는 우리들과 달리 그리운 고향땅을 멀리 두고 낯선 타국에 묻히기를 소원했을까?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전경


양화진(楊花津)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름만 들으면 멀고 낯선 곳처럼 느껴지지만 서울 시내다. 바로 마포구 합정동 144번지. 쉼 없이 자동차 행렬이 이어지는 강변북로와 당산철교 사이에 있다. 나루터를 뜻하는 진(津)이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곳은 한강을 중심무대로 삼았던 조선시대 때 교통과 국방의 요충지였다. 당시 양화진은 물이 깊어 많은 선박들이 물품을 하역할 수 있었는데 제물포로 들어온 전국 각지의 생산물이 이곳을 거쳐 도성과 궁궐로 갔다고 한다. 하지만 그 흔적은 이제 찾을 길 없고 묘역에서 바라보이는 희뿌연한 한강 물줄기만이 당시의 모습을 짐작하게 해줄 뿐이다.

묘원 입구 푯말


외국인선교사묘원은 마치 다른 세상 같다. 바로 앞 강변북로 위엔 잠시도 쉬지 않고 요란한 소릴 내며 달리는 차들이 가득하지만 이곳에선 그 소음마저 아득하게 느껴진다. 휑한 몸을 드러낸 나목들 사이로 이국적인 비석이 촘촘히 자리하고 있다. 꿈과 청춘을, 열정과 결의를, 믿음과 사랑을 이땅에 베풀고 잠든 그들의 침묵 앞에서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그런데 뜻밖에도 참배객이 많다, 설날 아침임에도. 묘역 사이를 천천히 누비며 비석의 이름을 하나하나 확인하는 그들의 모습이 경건하고 엄숙하다. 비석에 새겨진 낯익은 이름 앞에서 한참동안 발길을 멈춘다.

미국인 선교사 헐버트 묘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했던, 고종의 외교 밀사로 헤이그에 파견됐던 외국인 독립운동가 헐버트 박사며 영국 "데일리 크로니클"의 특파원으로 조선 땅을 밟았다가 억울한 민중의 눈과 귀 역할을 하기 위해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영국 언론인 어니스트 베델(한국명 배설), 배재학당을 설립한 아펜젤러, 한국 선교의 개척자로 꼽히는 언더우드와 그 가족들 등 모두 우리 근현대사에 이름을 올린 주요 인물들이다.

배재학당과 YMCA에 공헌한 벙커 묘


양화진에 외국인 묘지가 만들어진 것은 1890년이다. 조선 최초 의료원 광혜원의 2대 원장이었던 J.W. 헤론은 환자를 돌보다 이질에 걸려 34세로 이 땅에서 삶을 마감했다. 당시 헤론의 시신을 매장할 장소를 정하는 것이 화급한 문제로 제기됐다. 미국 공사와 유족들은 삼복더위에 시신을 제물포 외인 묘지로 옮기기보다 사대문 가까이에 모시기를 원했다. 이에 이곳에 외국인 전용 묘원 부지를 마련하고 헤론의 시신을 안장하면서 외국인묘지가 만들어졌다.

배화학당을 설립한 캠벨 묘


그런데 역사를 돌이켜보면 양화진에 외국인 묘지가 만들어진 것은 우연이 아닌 듯하다. 구한말 대원군의 천주교 탄압을 응징하고자 프랑스 군함 세 척이 1866년 8월 양화진까지 침범했다가, 같은 해 10월 강화도에서 패퇴하는 병인양요가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대원군의 척화 의지는 더욱 강화됐고 천주교도들을 극심하게 박해했다. 대원군은 양이(洋夷)에게 더럽혀진 한강을 사교(邪敎)들의 피로 씻는다고 하면서 양화진 앞 강물을 천주교도들의 피로 물들였다. 양화진은 갑신정변(1884)에 실패하고 일본으로 망명했던 개화파의 거두 김옥균이 1894년 조선왕실로부터 능지처참돼 효시 당한 곳이기도 하다.

세브란스병원을 세운 에비슨가 묘역


이처럼 양화진은 우리 근대사의 격랑이 소용돌이쳤던 곳으로, 암흑기였던 무렵 이땅에 자신의 삶을 헌신해 불을 밝혔던 푸른 눈의 선각자들이 이곳 양화진에 잠든 것은 너무도 의미심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언론인 베델 묘


"나는 웨스트민스터성당보다도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고 한 헐버트 박사의 묘비명을 보며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그리운 고향을 두고 낯선 타국땅 양화진에 잠든 그들의 숭고한 삶 앞에 새삼 머리를 조아리게 된다.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에 묻히기를 소원한 헐버트 비문


*찾아가는 요령

한결같이 한국을 사랑했던 마음을 담은 비문
지하철 2, 6호선 합정역에서 내려 7번 출구로 나온다. 이정표를 따라 300m쯤 걸어가면 오른쪽에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이 나온다.



묘역을 찾은 참배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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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 100주년 기념교회


이준애 (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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