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세계 자동차업계는 친환경이라는 슬로건 아래 새로운 구동기술로 전기차와 하이브리드를 시장에 내놓기 시작했다. 물론 기존 피스톤기관의 효율을 높여 자동차 구동기술의 혁신을 꾀하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벤츠, BMW, 토요타 등 선진 메이커들이 선도하는 기술적 흐름은 현재 추세에 비춰볼 때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장강의 흐름 같은 트렌드 속에서 크고 작은 변화가 끊이지 않겠지만 궁극적으로 바퀴를 전기모터로 구동하려는 큰 틀은 오랫동안 유지될 것임에 틀림없다. 제81회 제네바모터쇼의 자동차, 특히 승용차 기술 트렌드 역시 지난해와 비슷하게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대체구동 시스템이 주류로 등장했다. 전기자동차와 하이브리드라는 전술 아래 대량 생산업체는 물론 군소 업체들도 다양한 상품과 그에 맞는 전략들을 들고 나왔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눈에 띄는 작은 변화는 양산체제를 완비한 디젤 하이브리드다. 선두는 푸조가 3008 하이브리드 모델4로 치고 나왔다. 날개를 펼치기 시작한 하이브리드 시장에서 기득권을 선점해 기선을 제압하겠다는 의도인 듯하다. 163마력의 디젤엔진과 37마력의 전기모터에서 강력한 토크가 뒷바퀴에 전달된다. 이 기술은 푸조 508은 물론 같은 PSA 그룹의 인기 차종인 시트로앵 C5/DS5에도 전이돼 생산될 예정이다. 모듈 방식의 린 프로덕션, 그리고 부품과 생산 플랫폼 공유는 하이브리드자동차 생산에서 더욱 보편화되는 추세다. 벤츠 E클래스 블루 하이브리드와 BMW X5에 적용된 액티브 디젤 하이브리드, 그리고 볼보의 V60 등도 다가올 디젤 하이브리드 시장을 선도할 차종으로 꼽히고 있다.
하이브리드의 두 번째 변화 조짐은 경량화다. 럭셔리 고급 세단과 SUV 등 가격이 비싸고 중량이 무거운 차에서 적용되던 경량화 추세가 소형차로 옮겨왔다는 점이다. 이를 주도하고 있는 업체들은 일본이다. 일찍이 지난 프랑크푸르트 모터쇼 당시 몇몇 전문가들은 토요타 야리스(Yaris) 하이브리드에 적용돼 선보였던 전기 모듈에 가격 경쟁력이 있다는 것을 조심스럽게 점친 적이 있다. 실제 제네바에서 토요타는 물론 혼다 CR-Z 와 재즈가 "프서이도(Pseudo. 사이비, 가짜, 그럴듯한)" 스포츠 하이브리드라는 재미있는 장르로 언론에 소개되기도 했다. 소형 하이브리드가 일반인에게 가격경쟁력을 가진다는 얘기는 곧 하이브리드의 대중화 가능성을 예고하기 때문이다.
올 제네바모터쇼에 나타난 하이브리드의 세 번째 변화는 에너지변환기 조합의 다양화다. 내연기관의 종류와 선택 그리고 전기모터의 조합에 다양한 시도가 엿보였다는 점이다. 효율을 극대화해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친환경자동차로 가는 게 하이브리드 구동 조합 다변화의 목표다. 럭셔리 혹은 스포츠자동차 연비의 놀라운 진보는 포르쉐가 먼저 보여줬다. 탄생 후 지금까지 스포츠카의 대명사 자리를 굳건히 지켜온 포르쉐. 그러나 연비 문제만 나오면 항상 한 발 뒤로 물러서야 했다. 달리기나 순발력을 앞세운 대신 효율은 늘 내줘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네바에 소개된 포르쉐 파나메라 S 하이브리드가 2도어로만 인식돼 있던 스포츠자동차의 고정관념을 깬 것은 물론, 380마력이라는 고출력임에도 6.8ℓ로 100㎞를 주행한 것은 하이브리드로서 가히 혁신적이다. 포르쉐 카이엔 하이브리드와 폭스바겐 투아렉 하이브리드와 같은 뿌리를 갖고 배터리, 전기모터, 발전기, 엔진 등 각 부품의 최적 조합과 소프트웨어의 진일보한 개발이 내놓은 결과다.
하이브리드의 조합 방식 비율의 다양화도 작지만 변화 중 하나다. 하이브리드는 에너지 변환기를 서로 조합하는 방식에 따라 전기 에너지를 전기자동차처럼 일반 전력망에서 바로 끌어올 수 있는 플러그 인 하이브리드와 내연기관과 발전기를 이용, 석유의 화학적 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변환시키는 일반적인 하이브리드 시스템으로 나뉜다. 평행형이냐 직렬형이냐 하는 하이브리드 구동방식의 차이에 따라 전기 모듈과 내연기관 모듈의 비율도· 달라진다. 대부분 평행형 하이브리드에선 전기 모듈이 내연기관에 보조적이지만 바퀴는 오직 전기 모터로만 구동되는 직렬형 하이브리드는 반대로 내연기관 모듈이 보조적이기 십상이다. 지역이나시장조건에 따른 운행전략에 따라 배터리의 용량과 종류가 정해지게 된다. 하이브리드 동력 조합 중 플러그인은 발전기가 없는 것도 있고, 피스톤 왕복 운동기관 대신 재규어 C-X75처럼 발전용 소형 가스 터빈이 적용된 차종도 있다. 그래서 직렬형 하이브리드는 평행형 하이브리드보다 순수 전기자동차 쪽으로 한 발 더 다가가게 된다. 가끔 직렬형 하이브리드가 배터리나 내연기관의 용량에 따라 "랜지 엑스텐더"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유다.
벤츠, BMW, 폴크스바겐 등이 디젤 하이브리드시장을 선도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가운데 미국 GM이 소유한 독일의 오펠과 토요타는 승용차 디젤 하이브리드를 노골적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제네바모터쇼에서 잠깐 만난 오펠 개발담당자 리타 포르스트는 "원칙적으로 모든 구동 시스템을 연구개발 중인데, 디젤엔진이 매우 효율적인 내연기관이고 장점이 많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하이브리드에 적용하는 문제는 간단치 않다"고 전했다. 배기가스 후처리 비용이 많이 들고 투자비가 커서 오펠로서는 매력적이지 않다고 밝히기도 했다.
토요타도 승용차 디젤하이브리드에 회의적이다. 토요타 파워 트레인 담당자인 바르트 비뷔익 씨도 "렉서스나 토요타 수요자들이 디젤의 소음과 진동에 익숙치 않고, 디젤은 화물차와 상용차 하이브리드에나 맞는 시스템일 것"이라고 일축했다. 토요타는 3~4년 뒤 연료전지 전기자동차를 실현하겠다며 복합 동력 기관의 선두주자임을 거듭 강조했다. 바야흐로 하이브리드 시장에서 선진 업체들의 치열한 각축전이 제네바모터쇼에서 전개된 것이다.
하이브리드구동과 관련해 한국의 현대와 기아를 비롯한 몇몇 업체들은 이러한 각축전을 보면서 나름으로 살 길을 모색하고 있다. 정치에서나 기술에서나 늘 그래왔듯 대세를 가늠하고 재빨리 대세 편에 서서 빨대를 꽂아야 하기 때문이다. 제네바 팔렉스에 내놓은 기아와 현대의 하이브리드 차종을 보면 삽 들고 손수 앞장서 길을 낼 만한 실력은 모자라 보인다. 심지어 그럴 의도조차 없어 보이기까지 했다. 길은 누가 먼저 내든 상관없이 누군가 포장해 놓으면 같이 지나가겠다는 게 21세기 후발업체의 가장 효과적인 전술일지도 모른다. 기술의 방향과 대세를 가늠하느라 군소업체와 후발업체들의 몸과 눈동자가 바쁘고 피곤해 보이지만 약삭빠름이 아니라 신속한 대응을 위한 몸부림이라고 해도 나쁘지 않다. 이익을 쫓는 기업과 상인들에게 기술을 암중모색하는 것은 명분과 체면이 앞서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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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독일)=이경섭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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