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초 제네바모터쇼가 열렸다. 스위스 본토 사람들은 주네브(불어), 독어권 사람들은 겐프(Genf)라고 부르는 도시 제네바. 알프스 산자락에서 내려오는 바람이 꽤 차가웠지만 주네브 국제공항 인근 팔렉스포 전시장 안은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전 세계에서 몰려든 언론인과 자동차 전문가들의 취재 전쟁, 그리고 자동차 신상품에 대한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됐던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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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보레 볼트를 꼼꼼히 살피는 스위스에 본사를 둔 제품개발회사의 직원들 |
일반적으로 모터쇼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제일 많은 카메라 플래시를 받는 것은 월드 프리미어 즉, 세상에 첫 선을 보이는 차종이다. 첫 차 주변에는 언제나 많은 사람들이 북적대고, 살펴보는 사람도 다양하다. 이 가운데는 언론인 외에 자동차 메이커 홍보팀 혹은 상품개발팀 사람도 적지 않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가 정보활동을 하는 휴민트(HUMINT: HUMan+INTelligence)라는 점이다. 모두 자동차의 정보를 얻기 위해 분주하지만 이들이 채집하는 정보활동은 언론과 목적이 좀 달라보였다.
뒷짐 지고 한가롭게 이리저리 전시장 안을 돌다 보니 배낭을 짊어진 젊은 청년 두 명이 눈에 들어왔다. 슬쩍 따라 붙어봤다. 누군가를 미행하거나 따라다닌다는 것은 야릇한 흥분감을 준다. 언론들은 노트북, 아이폰이나 스마트 탭 등 첨단 기기로 무장한 휴민트이자 시긴트(SIgnal+ INTelligence)이다. 반면 이들은 아직도 카메라와 필기도구로 손수 꼼꼼히 살피는 휴민트에 가깝다. 쉐보레 전기차 볼트 안을 샅샅이 훑고, 기록하고, 사진 찍고 그리고 둘이 뭔가 이야기를 나누다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놀란 표정을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몇 개의 부스를 지나 현대차로 들어선다. 현대가 야심차게 내놓은 i40 앞에서 역시 다른 부스에서처럼 사진 찍고, 기록하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이들은 스위스에 본사를 둔 조그만 회사의 상품개발팀 직원 M과 P다. 제네바 모터쇼에서 이들의 업무는 신차에 적용된 실내 및 엔진룸 내열재와 마감재, 그리고 도어 패킹 재료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이다. 전반적인 i40의 상품성을 보는 게 아니라 한 가지만 집중적으로 조사, 분석하는 이른바 분야별 전문가다. 그들의 재주는 바로 도어 패킹의 재료나 상태, 마무리 처리 등을 보는 시각이다.
현대차 부스의 회전 전시대에는 하얀색과 파란색 i40 두 대가 나란히 돌아가고 있었다. 그 중 흰색은 왼쪽 뒷좌석 도어의 고무패킹 마감이 헐렁하다. 도어와 압착시킨 고무패킹 부분도 완성도가 낮다. 회전무대에서 돌아가는 월드프리미어 i40, 얼핏 보면 모르지만 전문가들이 자세히 살펴보고 야릇한 미소를 머금으며 또 사진을 찍고 기록한다. 헐렁한 뒷도어의 고무패킹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두 친구 모두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부드럽게 그리고 너그럽게 대답한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고, 뭐 다시 붙이고 양산할때 제대로 하면 될 일이라며 크게 문제될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입 꼬리를 위로 높이고 눈웃음치며 말하는 노란 머리의 노란 눈동자가 갑자기 미워진다. 짧은 순간, 머릿속에는 베르테르, 노랑조끼 그리고 권총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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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의 고무패킹, 접착제가 떨어져 밖으로 삐어져 나와 있다 |
현대 i40는 국내에서 중형 왜건으로 소개될 것이라는 정보가 있었다. 경쟁상대로는 아우디 A6라고 했다. 아우디 입장에서야 터무니없겠지만 그렇게 비교하는 건 마케팅의 판매 전략일 수도 있으니 상관없다. 그렇다면 아우디 A6의 뒷문 고무패킹은 어떻게 마감됐을까 궁금해서 지체 없이 살펴봤다. 아우디 왼편 뒷문 창틀에선 도장을 한 철판, 소위 말하는 맨살을 볼 수가 없다. 온통 고무패킹으로 뒤덮였기 때문이다. 일부러 고무패킹을 잡아 뜯다시피 꼬집어 봤지만 단단하게 붙어 있다. 물론 나는 맨손의 감촉만으로 고무재질의 분석을 가늠할 만큼 전문가는 아니다. 그저 현대의 도어패킹 고무재질이 더 부드러운 것 같다는 느낌이 전부다. 하지만 이렇게 고무로 꽁꽁 덮어 단단히 밀봉했으니 당연히 조용하고, 따라서 비쌀 수밖에 없다. 아우디와 현대의 가격 차이도 아마 이런 데서부터 시작되는 모양이다. 고무패킹에 대해선 철저히 교육을 받은 M과 P의 시각에서 밀봉이 제대로 되지 않은 우리 현대의 도어 고무패킹은 고품질 자동차로 평가 받을 수 있었을까?
좀 오래된 일이다. 9살이 채 안된 아이가 백화점에서 몰래 장난감에 손을 대다 들켜 경찰서에 출두한 적이 있다. 경찰은 어린 아이여서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라며 어린애를 경찰에 고발까지 한 백화점 종업원을 탓했다. 경찰도 다소 민망했던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훈방 조치해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조용히 아이에게 왜 그랬냐고 물어봤다. 아이는 자기도 모르게 물건에 그냥 손이 갔을 뿐 그게 도둑질인지 몰랐고, 또 알았더라도 도둑질 할 의도는 전혀 없었노라고 했다.
그렇지만 나는 실수와 의도를 떠나 행위는 도둑질이니 그에 합당한 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 뒤 종아리 열 대를 맞아야 한다며 벌을 가했다. 직경 1cm 정도의 매가 부러져 나갔다. 종아리 한 대를 맞자 자지러지듯 울며 주저앉는 아이에게 핏발 선 눈으로 똑바로 서라며 호령했고, 약속한 열 대를 이 악물고 시행했다. 아이의 종아리는 시퍼렇게 피멍이 들었고, 핏발 선 내 눈에는 눈물이 흘러내려 앞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소리치며 말리는 아내도, 아이의 울음소리도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그로부터 일주일 내내 나는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고, 절뚝거리며 걷는 아이를 볼 때마다 눈물이 흘러 눈을 똑바로 뜰 수 없었다.
아이는 이제 반듯하게 자라 의젓한 대학생이 되었다. 그 뒤로 지금껏 아들과 당시 매질에 대한 이야기는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하지만 난 아직도 매질하던 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 잠이 오지 않는다. 읍참마속하며 울었다는 공명의 마음을 헤아릴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 평생 가슴의 멍은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당시 그 매는 지금 내가 매를 들지 않으면 아이의 도벽을 확실하게 차단할 수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나온 것이도 하지만 무엇보다 아이의 바람직한 장래를 위해 한번쯤 들 수 있다고 생각한 매였다. 결과적으로 아이가 그것 때문에 잘 됐다고 확신할 수 없지만 적어도 다시는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위안을 삼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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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디 A6의 고무패킹. 꼼꼼하게 마무리되어 있는 것이 현대차와 비교된다 |
더불어 지나고 보니 매가 아이보다는 내 자신에게 더 좋은 결과로 작용한 것은 확실하다. 자식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지 항상 느껴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지금도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그 매는 절대 감정적으로 들었던 게 아니라 아이와 나를 위한 이성에 따른 매였다. 지금도 같은 상황이 온다면 아마 나는 또 회초리를 들 것이다. 그러나 거듭 밝히지만 나는 그런 상황이 오는 것을 정말 죽을 만큼 싫어한다. 피멍은 길어야 열흘 정도면 없어지지만 가슴 속의 멍은 평생 간다는 것을 몸소 경험했다. 이렇게 가슴에 맺히는 멍은 사랑하지 않으면 절대 생길 리 없는 멍이니 말이다. 얼마나 아픈지도 가늠하기 어렵다. 오직 사랑해본 사람들만 느낄 수 있는 아픔이다.
매를 꼭 들어야 한다면 몇 가지 전제 조건이 있다. 어떤 사안에 대한 공적인 비판도 마찬가지의 비슷한 조건을 갖춰야 한다. 매를 들어야 할 때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상황은 반드시 반복돼 나타난다. 그래서 같은 내용의 비판이 반복된다면 희망이 별로 없다. 2009년도 프랑크푸르트모터쇼에 전시된 현대 하이브리드의 엔진부품이 녹슬고, 도어 클립 도장이 벗겨지고 패킹이 뒤틀어진 상태를 지적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지적과 비판은 감춰졌었다. 보다 나은 발전을 위해 한번쯤 감췄다면 이번 제네바에선 좀 나아지거나 호전됐어야 마땅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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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독일) 이경섭 특파원
kyungsuplee@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