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기아차 K7 직분사의 '발칙'한 반란

입력 2011년03월27일 0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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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저의 굴욕"이라는 말이 있다. 지난해 기아차 K7에 뒤진 현대차 그랜저를 두고 하는 말이다. 실제 2009년 12월 기아차 K7이 출시되기 전까지 그랜저는 연간 6만 6,000대가 팔렸다. 그러나 이듬해인 2010년 상황은 역전됐다. K7이 연간 4만 2,000대로 올라서자 그랜저는 3만2,000대로 추락했다.



발끈한 현대차는 K7이 신차라는 점에서 유리했다고 판단, 5세대 그랜저에 직분사 엔진까지 탑재한 뒤 출시했다. 결과는 예상대로 다시 역전됐다. 2월까지 5세대 그랜저는 1만 7,000대가 넘게 판매된 반면 K7은 3,700여 대에 그쳤다.



기아차도 이런 상황을 지켜보기만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K7에 그랜저와 같은 직분사 엔진을 탑재해 내놨다. 엔진만 바꿀 수 없어 몇 가지 상품성도 보강했다. 같은 직분사 엔진으로 형제간 승부를 보겠다는 심산이다.



그러나 동생이 형을 건드리는 것은 그룹 내에서 금기시 돼 있다. 그래서 지난 23일 열린 K7 직분사 시승회에는 렉서스 ES350이 비교 시승 차종으로 전격 등장했다. K7으로 렉서스와 견주려는 의도보다 그랜저를 직접 비교 대상으로 삼을 수 없는 심정을 렉서스로 표현한 셈이다. 지난해 3월에도 기아차가 렉서스 ES를 비교대상으로 삼았으니 렉서스가 마치 기아차의 경쟁 브랜드가 된 듯하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기아차의 발칙한(?) 생각일 뿐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번에는 K7으로 영암 국제 자동차 경주장을 돌아보는 코스도 마련됐다. K7으로 자동차 경주장을 주행하는 게 그다지 큰 의미는 없어 보이지만 어떻게든 K7의 역동성을 강조하려는 노력은 충분히 엿보였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 시승차는 최고급형이다. 프리미엄 내비게이션이 포함됐다는 점에서 K7 3.0ℓ 노블레스 트림이며, 가격은 3,870만원에 달한다. 최고 270마력이며, 토크는 31.6㎏.m, 변속기는 자동 6단이다. 정부공인 연료효율은 ℓ당 11.6㎞,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당 201g이다. 5세대 그랜저로 보면 3.0ℓ 로열 트림이 경쟁이다.



그러나 이번 시승에는 렉서스 ES350이 비교대상으로 등장했다. 참고로 렉서스 ES350은 직분사 엔진이 아니지만 최고출력은 277마력이며, 최대토크는 35.3㎏.m에 달한다. K7 대비 성능은 앞선다. 하지만 연료효율은 ℓ당 9.8㎞로 약간 뒤진다. 이화탄소 배출량도 240g으로 많다.



시승은 두 가지로 나눠 이뤄졌다. 먼저 K7 3.0ℓ 직분사 차종으로 일반 도로를 주행했다. 가속 페달을 밟으면 경쾌한 몸놀림을 보여준다. 1,580㎏의 중량을 감당하기에는 오히려 힘이 남는다는 느낌을 가졌다. 그래서 이전 2.7ℓ MPI 차종의 제원을 보니 마력 당 중량비에서 차이가 났다. K7 2.7ℓ의 경우 1마력이 감당해야 할 무게는 7.75㎏에 달했지만 3.0ℓ 직분사(GDi)에선 중량부담이 5.85㎏으로 줄었다. 배기량 인상 대비 성능 향상폭이 훨씬 컸다는 얘기다. 기존 3.5ℓ의 5.58㎏에 비해선 부담이 늘었지만 차이는 거의 없다. 한 마디로 3.0ℓ 직분사로 3.5ℓ의 성능을 끌어낸 셈이다. 대신 중량은 줄였으니 연료효율이 올라갈 수 있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여기에 이전 차종에서 지나치게 블랙 하이그로시가 많이 적용됐다는 지적을 받아서인지 센터페시어의 패널 색상이 은은하게 바뀌었다. 지극히 사견이지만 현명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시승 당일은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시속 100㎞만 돼도 횡풍에 차가 흔들릴 정도의 강풍이 뒤따랐다. 그럼에도 풍절음 등은 잘 억제됐다는 느낌이다. 직분사 엔진은 폭발력이 세서 진동과 소음의 불리함이 있지만 엔진 마운트 보강과 흡차음재 대폭 적용으로 해결한 듯하다. 승차감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유럽 시장을 지향했다. 약간 단단함을 추구했다는 얘기다. 이외 특별한 것은 별로 없다. 이전 K7과 같다고 보면 된다.



일반 도로 시승을 마치고 이번에는 영암 국제 자동차 경주장으로 들어왔다. 시승은 K7과 렉서스 ES350을 각각 별도로 운전하는 방법이 적용됐다. 시승코스에는 슬라럼도 포함됐다. 참고로 차체자세제어장치는 끈 상태로 주행에 나섰다. 기아차로선 제어장치를 껐을 때 오히려 K7의 코너링이 좋다는 자신감이겠지만 오히려 켜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한다. 일반 도로에서 제어장치를 끄는 사람보다 켜는 사람이 월등히 많다는 점, 그리고 K7과 렉서스 ES 모두 페달을 끝까지 밟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점에서 떠올린 생각이었다.



먼저 렉서스 ES350의 스티어링 휠을 잡았다. 역시 렉서스다운 부드러움이 압권이다. 가속페달을 밟았을 때 미끄러지듯 속도를 올린다. 이때 느껴지는 진동소음도 상당한 수준이다. 시속 60㎞로 슬라럼을 했다. 제어장치를 작동하지 않고 있음에도 서스펜션의 지지력만으로 손쉽게 파일런 사이를 잘 빠져 나갔다. 이어진 16번의 곡선에선 코스를 처음 돌아보는 탓에 뒤가 미끄러지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어지간한 코너에서도 잘 견뎌내 주었다. 솔직히 K7이나 렉서스 ES350 등의 중대형차로 자동차 경주장에서 강력한 스포츠 드라이빙을 한다는 것에 특별한 의미를 찾기 어려웠지만 일반 도로에서 경험할 수 없는 극한의 코너링을 고속으로 돌아본다는 것으로 만족했다.



뒤 이어 K7에 올랐다. 동일한 코스로 한 바퀴를 또 돌았다. 시속 60㎞로 차를 흔들며 운동성능을 체험했다. 렉서스 ES350보다 약간 흔들림이 적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어진 16번의 코너에서는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오히려 운전하는 재미가 증가했는데, 이미 렉서스 ES350으로 한 바퀴를 주행한 후여서 코스에 대한 적응력이 생겼다는 의미다. 따라서 코너링 성능이 어떤 차가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저 승차감에서 K7이 보다 단단한 편이고, 이를 미루어 코너링이 조금 좋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이 같은 차이는 제어장치를 켜면 얼마든지 달라질 수도 있다.



사실 K7과 렉서스 ES는 성격이 다르다. 렉서스는 최대한의 정숙성과 편안함이 강조된 북미 주력 차종인 반면 기아차 K7은 국내와 유럽이 주 무대다. 따라서 두 차종의 코너링 성능은 미세하게나마 다를 수밖에 없는데, 이는 제조사 판단의 문제일 뿐 우월을 논할 게재는 아니다. 기아차가 부드럽게 세팅을 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토요타가 단단하게 설계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그저 추구하는 소비층이 다를 뿐이다.



이런 이유로 비교시승에서 기아차는 브랜드(계급장) 배제를 강조했다. 하지만 자동차만큼 "브랜드"를 빼놓기 어려운 물건도 없다. 게다가 렉서스의 경우 이미 내구성에서 잔 고장 없기로 유명한 차다. 최근 리콜 등의 여파가 논란이 됐지만 조치를 끝내고 신뢰회복을 하는 중이다. 반면 기아차 K7은 아직 검증 기간이며, 일부는 개선 과정에 있기도 하다. 따라서 두 차종을 직접 비교해 어느 것이 낫다고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아차로선 K7을 잘 만들었다는 점을 내보이기 위해 렉서스 ES를 비교로 선택했다.



기아차는 지난해 3월에도 렉서스 ES와 당시 K7 3.5ℓ를 놓고 남양연구소에서 비교 시승을 펼친 적이 있다. 당시에도 결론은 "브랜드"였다. ES에는 "렉서스"라는 브랜드가 든든함이 되는 반면 K7은 "기아"가 지원군이다. 그런데 두 브랜드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는 상당히 크다. 그래서 두 차종을 직접 비교하기란 더더욱 쉽지 않다. 렉서스로선 현대차와 기아차가 번갈아가며 경쟁하자고 덤벼드니 귀찮을 만도 하지만 이제는 만성이 된 듯 하다. 이 같은 비교시승에 아예 묵묵부답이다. 사실 대응해봐야 렉서스만 손해기 때문이다.



중대형차의 상품력과 제품력은 갖가지 옵션에 있는 게 아니라 브랜드에 대한 비중이 더 크다는 게 일반적이다. 쉽게 보면 K7이 현대차 그랜저의 브랜드를 넘느냐 마느냐의 문제일 뿐 렉서스와는 별로 상관이 없어 보인다는 얘기다. 이런 점에서 기아차가 K7의 판매를 늘리려면 그랜저 브랜드를 넘어서는 것 외에 뾰족한 수는 없다는 게 대부분 전문가들의 얘기다. 하지만 브랜드는 하루 아침에 완성되는 게 아니다. 기아차도 이 점을 인정해 그랜저 대비 가격을 약간 낮게 책정했다. 브랜드로 그랜저를 넘지는 못해도 가격으로 판매량만큼은 근접하겠다는 의지가 역력하다. 그래서 앞으로 비교시승에 렉서스 ES가 아니라 현대차가 등장해야 소비자도 수긍할 것 같다. 언제까지 형님 무서워 뒷전으로 밀려날 수는 없는 노릇일테니 말이다.



영암(전남)=권용주 기자 soo4195@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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