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40만원, 306마력(5,800rpm), 40.8㎏.m(1,300-5,000rpm), 배기량 2,979㏄, 병렬형 트윈파워터보, 6기통 DOHC." 숫자를 보면 성능이 짐작되겠지만 가격은 만만치 않다. 고성능 하드톱 컨버터블 BMW 335Ci의 9,140만원 안에는 고성능과 하드톱 외에 "BMW"라는 글자가 주는 신뢰비용도 포함돼 있다.
시승차는 진한 갈색이다. 햇빛을 받으면 오히려 정열적인 붉은색에 가깝게 변한다. 빅뱅의 "붉은 노을"을 떠올리려고 했지만 순간 이문세의 "붉은 노을"이 먼저 떠오른다. 그렇다. 이미 40대를 훌쩍 넘어섰다. 20, 30대가 바라보는 컨버터블에 대한 시각과 40대가 바라보는 그것은 분명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나아가 50, 60대의 관점에서 컨버터블은 또 다른 존재로 다가온다. 그래서 모든 자동차는 "컨셉트(Concept)"라는 것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335Ci의 컨셉트는 무엇일까. 같은 3시리즈인 328Ci와는 어떻게 다른 것일까? 먼저 엔진이다. 328Ci가 2,760㏄ 6기통 자연흡기엔진으로 231마력인데 반해 335Ci는 2,979㏄ 6기통 엔진에 트윈터보가 탑재돼 306마력이다.
똑같은 크기에 다른 점은 또 있다. 타이어 규격이다. 328Ci는 앞 225/45 R17, 뒤는 255/40 R17이지만 335Ci는 앞 225/40 R18, 뒤는 255/35 R18이다. 328Ci 대비 335Ci 휠의 직경이 더 크다. 게다가 노면과 밀착되는 타이어 면적도 335Ci가 더 넓다. 그만큼 노면을 움켜쥐는 성격이 강하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335Ci의 성격은 극명해진다. 지붕을 열어 개방감을 느끼되 달릴 때도 답답함이 없는 차다. 물론 328Ci가 느리다는 게 아니다. 스포츠카에 버금가는 즐거운 달리기를 위해 고성능을 추구한 만큼 특별한 소수가 되려면 9,000만원이 넘는 값을 지불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만한 돈을 들여 살 만한 제품인지 아닌지는 전적으로 개인 판단의 몫일 뿐 누가 강요해도 안 되고, 또 강요받아서도 안 된다.
자동차를 바라보는 시각은 참으로 제각각이다. 절대적인 기준이 아닌, 모든 걸 개인의 잣대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BMW 335Ci의 성능은 탐나지만 가격이 지나치다는 사람도 있고, 트윈터보에 6단 변속기라면 9,000만원은 별것 아니라는 사람도 있다. 좋은 차와 나쁜 차가 있는 게 아니라 마음에 드는 차와 그렇지 않은 차의 기준만 존재할 뿐이다.
컨버터블에 대한 관심이 높은 사람은 일단 컨버터블을 모두 뽑아 구입 목록을 작성한다. 소형부터 중형까지, 저렴한 가격에서 비싼 것까지 총 망라한다. 그리고 조건에 따라 하나씩 차를 제거(?)해 간다. 실용성과 경제성을 찾는 사람이라면 335Ci는 단칼에 삭제해 버리고 만다. 물론 언젠가 꼭 사고 싶은 차라는 기억은 곱게 간직한다. 하지만 경제적 여력이 있고, 고성능 컨버터블을 원한다면 유력한 구입 후보 가운데 하나가 된다. 사람에 따라 입장은 모두 천차만별이다.
디자인은 개인 판단의 몫이다. 디자인이 과학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만드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이고, 보는 사람은 호불호만 판단하면 된다. 공기저항을 줄이기 위한 디자인이 과학이라고 하지만 이 점을 소비자가 굳이 알아야 할 이유는 별로 없다.
335Ci가 BMW임은 키드니 그릴이 알려준다. 이제는 콩팥 그릴이 BMW의 상징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을 찾는 게 더 어렵다. 개인적으로 컨버터블은 역시 측면이 아름답다. 특히 지붕을 열었을 때 뒤로 약간 올라가는 형상은 언제나 유려하다. 지붕을 닫았을 때와 전혀 색다른 느낌이다. 하지만 후방 트윈 머플러 형상은 아쉽다. 보다 타원형으로 다듬어졌다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9,000만원을 떠올리니 더욱 밋밋하다.
시트에 앉았다. 군더더기 없다. BMW 인테리어의 철학이다. 센터페시아 상단 8.8인치 와이드 스크린에 펼쳐지는 내비게이션은 좋아졌다. 이전 것은 평가조차 민망했던 지도였다. 차 값은 비싸면서 내비게이션은 너무하다는 얘기가 수없이 나돌았다. BMW는 그나마 개선했지만 벤츠의 지도는 여전히 아쉽다. 그것도 철학이라고 고집하면 참으로 곤란하다. 계기반도 BMW다. 그 어떤 차종을 타도 큰 차이가 없다. 스티어링 휠도 예외는 아니다. 인테리어의 정체성, 그리고 일체성은 이제 경지에 오른 것 같다. 다만 컨버터블이어서 앞 좌우 윈도가 넓다.
키를 홀더에 넣고, 시동 버튼을 눌렀다. 트윈 머플러에서 웅장한 배기음이 들려온다. 잔잔한 저음이되 톤이 높지는 않다. 자동차의 모든 소리는 운전자가 듣게 된다. 이 때 운전자의 느낌을 "토널 퀄리티(Tonal Quality)"라고 한다. 전체적인 자동차 소리에 대한 조율인 셈이다. 토널 퀄리티는 감성에 속한다. 때로는 소음이 될 수도, 그렇지 않을 수 있지만 BMW가 "소음"으로 다가온다면 심각한 문제다. 하지만 다행스럽게 고성능에 걸맞는 사운드를 준다. 이 때 지붕을 오픈하면 자연의 소리가 귀로 들어와 시원함을 준다. 컨버터블을 타는 재미 가운데 하나다.
가속페달을 밟았다. 병렬형 트윈파워터보가 작동하며 속도를 빠르게 올린다. 엔진 회전수가 1,300rpm을 넘으면서 40.8kg.m의 최대 토크가 5,000rpm이 될 때까지 꾸준히 뿜어져 나온다. 하지만 300마력 이상의 차임을 감안하면 다소 의외의 가속력이라는 느낌도 있다. 스마트폰으로 0→100㎞를 몇 초에 주파하는지 측정하면 가속력이야 입증이 되겠지만 굳이 그렇게 할 이유는 없다. 몇 초가 중요한 게 아니라 빨리 가속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게 훨씬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335Ci는 병렬형 트윈파워터보가 탑재됐음에도 고성능 측면에선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여기서 전제 하나가 있다. 335Ci를 타기 전 480마력의 고성능 스포츠카를 경험했다. 그렇기 때문에 335Ci의 가속성이 조금 더디게 느껴질 수 있다는 생각도 했다. 분명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 없다. 그럼에도 치고 나갈 때 무겁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300마력 이상이라는 점을 감안하기에 더더욱 그렇다. 물론 변속기를 "스포츠모드"에 놓으면 얘기는 달라진다. 주행성능 차이는 확연하다. 엔진 회전수를 높인 채 변속되는 만큼 연료효율은 잠시 포기해야 하지만 335Ci로 고성능을 체감하려면 스포츠모드를 적극 권장하고 싶다.
운동성능으로 표현되는 하체 지지력은 훌륭하다. 시속 100㎞에서 급차선 변경을 시도했다. 순간적인 스티어링 휠 조작이었지만 곧 자세를 잡았다. 제원을 살펴보니 역시 M 스포츠 서스펜션이다. 다이내믹 스테빌리티 컨트롤(DSC)도 한 몫 했을 것이다. 반응 속도가 수천분의 몇 초 이내인 순간이기 때문이다. 운동성능은 역시 BMW답다. BMW답다는 것, 아마도 핸들링이 아닌가 한다.
120년 전 자동차 초창기는 모두 지붕이 없었다. 이후 전복 등의 사고가 끊이지 않자 지붕이 의무화 됐지만 개방감을 찾는 욕구를 외면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재등장 때는 A필러의 강성이 보강되고, 전복 때 머리 부상을 방지하는 헤드 에어백도 들어갔다. 그렇게 자동차는 진화했다. 때로는 세단처럼, 때로는 지붕을 열고 달리는 컨버터블로, 그리고 때로는 트윈터보 성능에 의지하는 고성능 스포츠카처럼 탈 수 있는 차가 바로 335Ci다. 하지만 "BMW" 글자 값은 비싸다. "B"가 1,000만원, "M"이 1,000만원, "W"가 1,000만원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시승/권용주 기자 soo4195@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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