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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대 위에 자리한 고산사 |
전국의 크고 작은 절집들은 웬만큼 순례하고 다녔지만 "고산사"라는 이름은 생소했다. 홍성읍내 어느 밥집서 지도를 펼쳐놓고 늦은 점심을 해결하고 있을 때 행색이 외지인처럼 보였던지 밥집아낙은 고산사에 가봤냐며 물었다. 이곳 사람들은 죽어서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이 고산사 닫집을 보고 왔느냐고 물을 만큼 유명한 곳이라면서. 하하, 그 얘긴 어디서 많이 듣던 레퍼토린데…. 논산시에 가면 강경사람들도 미내다리를 자랑할 때 염라대왕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어쨌든 그런 까닭으로 금시초문의 낯선 절 고산사를 찾아 충남 홍성군 결성면 무량리로 향했다. 이런 것이 불가에서 말하는 인연인가 보다, 좀 전까지만 해도 이름도 몰랐던 절을 향해 이렇게 달려가고 있는 사실을 보면…. 초록 들판 사이로 뚫린 도로가 평화롭고 아름답게 이어진다. 한가하리 만치 오가는 차들이 드물다. 큰 지석에 새겨진 고산사를 알리는 이정표를 따라 좁은 논길로 들어설 때까지만 해도 길이 끝나는 곳에 그윽한 절집이 자리하고 있으리라 기대했다. 동리 이름도 불연 깊은 무량(無量)리에, 염라대왕에게까지 소문난 절집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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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른 산길을 올라 고산사에 이른다. |
가파른 산길을 올라 절집 마당에 이르렀을 때 그러나 몇 번이나 주위를 살펴야했다. 아무리 둘러봐도 높다란 축대 위에 자리한 세 채의 당우만 달랑 있을 뿐, 그 흔한 일주문도, 범종루도 보이지 않는다. 속았다는 표정으로 절집을 기웃대는 중생을 점잖은 견공 한 마리가 딱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마음속까지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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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절집을 지키는 견공 |
깨갱 꼬리를 내리고(아니 이런 주객전도의 상황이!) 안내판이 붙은 축대 위의 건물로 다가간다. 세 채 중 양쪽의 건물은 요사채이고, 가운데 자리한 건물이 보물로 지정된 대광보전이다. 작고 아담한 이 건물은 독특한 건축미를 보여준다. 앞면 3칸 옆면 3칸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지붕 위부분에 장식하여 짜넣은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을 하고 있다.
건물 안쪽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의 우물천장과 천장과 서까래가 훤히 보이는 연등천장을 혼합하여 꾸몄다. 불단 위에는 불상이 앉은 자리를 장식하기 위해 지붕 모형의 닫집을 정교하게 만들어 놓아 법당 안의 엄숙함을 더하고 있다. 눈 밝은 이라면 대광보전 불단의 석조좌대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불단 뒤로 돌아가 아래를 들여다보면, 조금 어둡기는 하지만 두 겹의 연꽃 지대석 위에 핀 석조좌대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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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로 지정된 대광보전 |
고산사가 자리한 청룡산은 나지막하고 경사가 완만한 산이다. 한때 이 산은 고산(高山)이라고도 불렸는데 그 때문에 절 이름도 고산사라고. 해발 230m밖에 되지 않은 낮은 산을 "높은 산"이라 부른 것은 낮기 때문에 오히려 높다고 이름 붙임으로써 산의 기세를 높이려 한 옛 사람의 지혜가 깃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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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마당의 석불 |
겉치레에 익숙한 이라면 고산사에 와서 쉬 실망할지 모른다. 하지만 숨어있는 아름다움을 발견할 줄 아는 이들은 작은 규모에 비해 빼곡하게 갖춰진 고산사의 욕심 없는 아름다움에 오래오래 취할 것이다.
▲찾아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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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주련을 단 절집 기둥 |
서해안고속도로 홍성 IC에서 빠진다. 홍성에서 21번 국도를 따라 보령 쪽으로 12km 정도 가면 광천역사거리가 나오고, 여기서 오른쪽 96번 지방도로를 따라 9km 정도 가면 결성면에 이른다. 결성농협 앞에서 오른쪽으로 난 8번 군도를 따라 1km 정도 가면 결성농요전수관이 있는 두 갈래 길이 나타난다. 여기서 좌회전하여 2번 군도를 따라 1.2km 정도 가면 왼쪽에 고산사 입구를 알리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고, 마을 안쪽으로 이어진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1km 정도 가면 고산사가 자리잡고 있다.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