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백리 흠모하는 담장 너머 배롱나무

입력 2011년07월08일 0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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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한 멋을 자랑하는 묵계서원
안동에서 영천으로 이어지는 국도 35번은 안동에서 예천·문경으로 연결되는 국도34번이나 의성·대구로 향하는 5번 국도에 비해 한적하고 도로 형편도 소박한(?) 편이다. 왕복 4차선의 길이 고속도로처럼 잘 뚫린 요즘의 국도들과 달리 길안천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는 이 길은 아직도 국도다운 서정과 운치가 남아있다. 산과 개천을 낀 풍경들이 다가왔다 물러서기를 거듭하는 한갓진 풍경 속으로 빠져들다 보면 묵계서원과 묵계종택을 알리는 이정표가 눈을 잡는다.



담장 기웃대는 배롱나무, 청백리를 흠모라도 하는 모양새다.
유명한 도산서원 말고도 안동에는 전통 있는 서원과 종택이 고을마다 자리하고 있다. 안동시 길안면 묵계리에 자리한 묵계서원도 선비의 고장 안동을 대표하는 서원 중 한 곳이다. 붉은 꽃을 피운 배롱나무 한 그루가 파수꾼처럼 서 있는 길목에서 나지막한 언덕을 따라 길은 두 갈래로 나눠진다. 오른쪽은 서원으로 가는 길이고, 왼쪽은 마을로 이어진다. 서원 가는 길은 빽빽한 숲이 하늘을 가렸다. 그래서 짧은 거리임에도 마치 깊은 산속으로 빠져드는 듯한 분위기를 준다. 숲이 끝나는 곳에 묵계서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소나무 숲을 등지고 자리한 오랜 목조건물이 특유의 고아한 멋과 소슬한 분위기를 풍기며 서 있다.



묵계서원 강당인 입교당
묵계서원은 응계 옥고(1382∼1436) 선생과 보백당 김계행(1431∼1517) 선생의 위패를 모시는 곳이다. 보백당 김계행은 조선조 성종, 연산군 조에 걸쳐 대사성, 대사간, 대사헌 등 3사의 요직을 두루 거치고 홍문관 부제학을 지낸 명신으로, 당대의 거유 문충공 점필재 김종직과 함께 영남 유림을 이끌며 도덕과 학문으로 덕망을 받아온 청백리의 표상이다. 그는 연산군 즉위 이후 대사간으로 재직하면서 임금의 잘못을 여러 차례 간언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내려온다. 고향 집 옆에 "보백당"이라는 조그만 집을 짓고 은거하며 후진 양성과 자손 교육에 전념하면서 여생을 마쳤다. 선생의 유훈인 "吾家無寶物 寶物惟淸白(내 집엔 보물이 없고, 보물이란 오직 청백뿐이다)"에서 선생의 인품을 잘 알 수 있고, “보백당(寶白堂)”이라는 호도 여기에서 딴 것이다.



묵계서원 내 사당. 응계 옥고 선생과 보백당 김계행 선생의 위패를 모시는 곳이다.
묵계서원은 숙종 13년(1687)에 지었으나, 고종 6년(1869) 서원철폐령 때 사당은 없어지고 강당만 남아 있다가 최근에 복원하였다. 정문인 진덕문을 지나면 누각인 읍청루가 시원한 모습을 보이고, 강당인 입교당과 사당인 청덕사는 그 안쪽으로 자리하고 있다. 강당은 앞면 5칸·옆면 2칸 규모로 가운데는 마루를 깔고 양 옆에 온돌을 설치한 일반적인 형태를 보인다. 서원 왼쪽으로는 이 서원을 관리하는 ㅁ자형의 주사가 위치한다.



묵계종택
묵계종택은 서원에서 멀지 않은 마을 한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종택 안에는 조상의 제사를 모시는 제청으로 사용되고 있는 보백당이 있다. 담장을 넘는 배롱나무와 잘 가꿔진 정원의 여러 화초들이 눈길을 끈다. 발아래 짙은 이끼를 깔고 선 오랜 은행나무가 종택의 연륜을 말해주기도 한다. 보백당은 이곳에서 독서와 사색으로 말년을 보냈으나 한적한 맛이 적자 더욱 조용한 장소를 찾는데, 앞산 계곡에 지은 정자 만휴정(晩休亭)이 바로 그곳이다. 이름 그대로 만년의 휴식처로 삼아 보백당은 나이 87세까지 여기서 지냈다.



묵계종택 내 보백당. 조상의 제사를 모시는 제청으로 사용된다.
▲찾아가는 요령

영동고속도로 → 만종JC → 중앙고속도로(남원주IC) → 영주 → 서안동IC 에 이르거나 중부내륙고속도로 → 충주 → 점촌함창IC → 문경(3번국도) → 예천(34번국도) → 안동에 이른다. 안동시내에서 영천 방면 국도 35번을 타고 가면 임하, 길안 묵계리에 이른다. 묵계서원을 알리는 이정표를 따라 왼쪽으로 꺾어들어간다. 도로변이라 차 세울 곳이 마땅찮은데 서원쪽으로 올라가면 주차장이 나온다. 묵계리에서 ′묵계새마을교′ 를 건너 하리 골짜기길을 따라 500m쯤 가면 만휴정이 나온다.

묵계서원의 문루인 읍청루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

서원 뒤 노송숲. 오랜 연륜을 이야기하듯 고고한 자태를 자랑한다.
서원을 둘러싼 주변 숲과 나무들
온갖 화초로 어우러진 종택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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