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형 그랜드 보이저를 시승했다. 미니밴의 원조격으로 불리는 차다. 크라이슬러의 새로운 프로그레시브 윙 엠블럼과 패밀리룩 적용됐다. 여기에 그랜드보이저 특유의 공간성을 자랑한다.
크라이슬러 전통의 도로를 압도하는 크기와 디자인은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신형 300C를 연상케 하는 라디에이터 그릴에서는 브랜드 전체를 관통하는 디자인 통일성이 엿보인다. 아래로 굽은 헤드램프의 실루엣도 높낮이의 차이가 있을 뿐 300C를 빼다박았다. 신형으로 넘어오면서 고급스러움이 더욱 강조된 듯하다. 측면은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넉넉함이 느껴진다. 보수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단순한 디자인에서는 답답함이 느껴질 법도 하지만 오히려 웅장함이 드러난다. 뒷좌석 도어에는 스토앤고라는 시스템이 적용됐다. 쉽게 말해 자동문이다. 간단한 조작만으로도 문이 열리고 닫히기 때문에 편의성이 최대로 강조됐다고는 하지만 본인 부주의에 따라서는 상해를 입을 수 있다는 사실은 충분히 인지할 필요가 있다. 각진 모양이 인상적인 후면에서는 심심함을 없애기 위해 뒷면 유리와 트렁크 도어 사이에 크롬 바 장식이 들어갔다. 자칫 심심해보일 수도 있었던 뒤태에 세련됨을 불어넣었다. 평행선을 그리며 함께 적용된 프로그레시브 윙 엠블럼도 분위기 전환에 한몫 거드는 모양새다.
실내에서도 오리지널 아메리카의 정취가 느껴진다. 실내 곳곳을 이루는 요소들은 답답하지 않고 시원시원하다. 미니밴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개방성이라 해도 그랜드 보이저는 조금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동승자도 여유로운 그랜드 보이저의 실내에 내내 감탄사를 연발했다. 시트 감각은 부드럽다. 엉덩이를 감싼 감촉도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하다. 역시 거주성을 강조하는 차의 특성답다는 생각이다. 곳곳에 숨겨져 있는 수납공간을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2열 시트는 간단한 조작만으로도 접고 펴는 것이 가능하고 3열 시트는 차체 바닥으로 완전히 깔린다. 활용도가 더욱 높아진 느낌이다. 크라이슬러의 최첨단 멀티미디어 시스템 유커넥트는 DVD, MP3 플레이어 등을 터치스크린을 통해 손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실내가 넓어 디스플레이 모니터까지 손이 뻗기가 힘든 운전자를 위한 음성인식 시스템도 적용됐다.
신형에는 V6 3.6ℓ 펜타스타 엔진이 장착됐다. 최고출력 238마력, 최대출력 36kg·m을 발생한다. 기존보다 출력이 40% 늘어났다. 변속기는 자동 6단 변속기가 장착돼 7.9km/ℓ의 공인 연비를 보였다.
시승은 서울에서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강릉으로, 다시 강릉에서 양양, 속초를 거쳐 인제를 지나 서울로 오는 코스로 진행했다. 거리는 3일간 약 600km를 주행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한 도심 구간의 평균 연비는 7.3km/ℓ 정도로 트립 컴퓨터에 나타났다. 공인연비보다 다소 떨어지는 수치다. 고속도로에 들어서는 평균 연비가 10km/ℓ를 넘었다.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기 쉬운 고속도로의 효율이 높은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크루즈 컨트롤의 조작은 이미 많이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조작에 큰 어려움은 없다. 스티어링 휠 오른쪽의 스위치를 이용해서 크루즈 컨트롤 시스템을 작동시키고 속도를 설정시키면 이내 가속 페달에 발을 떼더라도 차의 속도가 유지된다. 장거리 운행에 있어선 매우 유용한 장치다. 연료효율 면에서도 매우 도움이 된다.
역시 미국차의 특징인 부드러운 승차감이 안락함을 선사한다. 세단에서는 너무 물렁한 하체에 호불호가 갈리기도 하지만 미니밴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적당한 하체 감성이 운전뿐 아니라 여행의 즐거움을 배가 시킨다.
가속에 있어서도 급함이 없이 안정된 가속력을 보인다. 제동력에서도 마찬가지다. 다만 차가 크고 무거운 관계로 약간의 지체 현상은 어쩔 수 없다. 그것은 차의 성능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지구 중력 법칙에 더 영향을 받는 탓이다. 직진 안정성도 매우 뛰어나다. 그러나 역시 차의 높이가 높은 관계로 곡선 주로에서는 롤링이 느껴지는 편이다. 차의 특성 자체가 성능 위주보다는 편안한 주행성에 맞춰져있는 만큼 본인 스스로 무리한 주행을 하지 않는 이상 큰 위험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랜드 보이저는 미니밴의 대명사답게 매우 안정된 주행 성능과 편안함, 넉넉한 실내공간을 제공한다. 최근의 경향과 ℓ당 7.8km의 연료효율은 다소 동떨어져있는 듯하지만 엔진의 배기량과 차의 크기, 무게 등을 고려한다면 그리 나쁜 편도 아니다. 크루즈 컨트롤을 작동시키고 정속 주행을 철저하게 실천한다면 오히려 연비가 대폭 상승하는 효과도 누릴 수 있다. 어차피 퍼포먼스를 내는 차가 아닌 만큼 여유로운 마음으로 운전을 한다면 즐거운 여행길에 그랜드 보이저는 최적의 선택이 될 수 있을 것이란 개인적인 생각이다. 가격은 5,790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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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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