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남권 기자 = 정유사들의 기름값 할인 방침(4월6일~7월6일)이 끝나고 지난 한 달간 주유소 휘발유 가격은 무서운 상승세를 보였다. 정유사의 "기름값 단계적 환원" 조치로 전국 주유소에서 판매하는 휘발유 평균가격은 할인 종료 이후 단 하루도 빠짐없이 올랐고, 서울지역 주유소 가격은 초고유가 시대인 2008년의 역대 최고치 기록을 갈아치웠다. 기름값 상승을 놓고 정유사와 주유소 간 책임 공방이 오갔으며, 급기야 정부는 값이 싼 "대안 주유소"를 설립해 주유소 시장에 새로운 경쟁 요인을 만들겠다는 안을 내놨다. 국내 석유제품 가격은 국제 유가의 강세와 정유사의 공급가 환원에 따라 상승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전국 기름값 29일째 상승…서울 역대 최고치 = 5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사이트인 오피넷에 따르면 4일 전국 주유소 휘발유 평균가격은 전날보다 ℓ당 0.58원 오른 1천953.76원으로 집계됐다. 이날 오후 2시 현재에는 1천953.82원으로 전날보다 0.06원 상승했다. 이는 주유소 휘발유 가격이 사상 최고치였던 지난 4월5일의 1천971.37원에 불과 17원가량 낮은 수치다.
휘발유 가격은 정유사의 기름값 인하 조치가 끝난 지난달 7일(1천919.33원) 이후 이날까지 29일 연속으로 상승해 34원 이상 올랐다. 공급가 인하가 아닌 사후 카드 인하 조치를 한 SK에너지의 방식을 고려하면 할인 종료 직전 휘발유 가격은 1천887원으로 66원가량 오른 셈이 된다. 서울지역 주유소 휘발유 평균가격은 2일 ℓ당 2천28.59원을 기록해 역대 최고치였던 2008년 7월13일의 2천27.79원을 뛰어넘고서는 이후에도 계속 올라 사상 최고치를 매일 경신하고 있다.
◇정유사-주유소 기름값 책임 공방…대안주유소 검토 = 정유사가 ℓ당 100원의 기름값 할인을 끝냄과 동시에 일선 주유소의 기름값이 뛰자 정유사와 주유 소간 책임 공방이 시작됐다. 정유사들은 할인 종료 전 한 달간 공급가격이 ℓ당 평균 20원가량 내렸지만 주유소들이 가격을 내리기는커녕 오히려 올렸다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고, 주유소들은 이에 정유사가 오피넷에서 공개하는 공급가가 엉터리라며 맞섰다. 정유사들이 오피넷에서 공개한 주간 보통 휘발유 공급가격은 6월 셋 째주(1천784.18원) 이후 7월 첫 째주(1천761.75원)까지 꾸준히 인하됐다. 대개 정유사의 공급가격은 일주일 후 주유소의 소매가에 반영되는데 주유소의 보통 휘발유 판매가는 할인 종료 이후 내리기는커녕 오히려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주유소의 마진 확대 때문에 기름값이 오른다는 주장이 일자 주유소업계는 통계자료의 불일치에 따른 오해라고 강조했다.
한국주유소협회는 "오피넷에 공개되는 정유사 공급가격은 주유소만이 아니라 대리점과 판매소에도 공급하는 가격이 포함된 것"이라며 "오피넷 공급가를 실제 주유소가 공급받는 가격으로 산정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정유사와 주유소가 기름값 상승 책임을 떠넘기는 동안 정부는 기존 주유소보다 석유제품을 싸게 파는 사회적 기업형 "대안 주유소" 육성을 검토한다는 방침을 내놨다. 지식경제부는 기름값을 낮추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주요 정유사들의 압도적 영향력 아래 놓인 주유소 체제를 깨뜨리고자 대안 주유소 카드를 제시했지만, 정유 및 주유업계는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반발했다.
◇공급가 추가 환원·국제유가 강세…상승세 유지 전망 = 주유소 기름값은 국제유가가 계속 강세를 보이고 정유사가 공급가를 아직 덜 환원한 데 따른 영향으로 상승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기름값의 상승세가 이어진 것은 ℓ당 100원 할인 조치가 끝나고 정유사들이 "단계적 환원" 방침에 따라 공급가를 올렸기 때문이다. 할인이 끝난 7월 둘째 주 정유 4사의 휘발유 공급가는 전주 대비 ℓ당 44.8원 올라 3월 셋째 주 이후 최대의 주간 상승폭을 기록했고, 다음 주인 7월 셋째 주 역시 전주 대비 20.2원 올랐다.
정유사의 단계적 환원에 더해 국제 유가가 꾸준히 강세를 보이는 것도 국내 석유제품 가격 상승세를 부채질하고 있다. 국내 석유제품 가격에 영향을 주는 두바이유 현물가격은 현재 거래일 기준으로 121일째 "심리적 마지노선"인 100달러 이상을 기록해 초고유가 시대였던 2008년의 최장 기록(106일 연속 100달러 이상)을 뛰어넘었다. 다만 최근 유럽의 재정위기와 미국 더블딥 우려에 휩싸이면서 석유 수요가 감소할 가능성도 있어 국제 유가가 안정세에 들어서면 휘발유 가격이 하락세를 보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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