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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사 홍련암 |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절집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동해안의 낙산사 홍련암, 서해 앞바다에 있는 강화도 보문사, 남해 금산의 보리암은 3대 관음기도도량으로 꼽힌다. 관음기도도량이란 관세음보살을 모신 절 중에서도 소원을 비는 기도처를 말한다. 이들은 한결같이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다. 영험한 성지인 데다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빼어난 경관을 거느리고 있어 이 곳에는 늘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강원도 양양의 낙산사 경내에 있는 홍련암은 지난 2005년 4월 일어난 산불로 낙산사가 순식간에 잿더미가 된 화마 속에서도 온전히 제모습을 지켜낸 절이다. 지대가 낮아 다행히 불길이 닿지 않았다고 하나 많은 불자들은 그 보다 그 곳이 의상대사가 관음보살을 친견한 성지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믿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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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모도 보문사 |
거친 파도가 들이칠 때면 금방이라도 휩쓸려갈 듯한 해안가 벼랑 위에 자리한 홍련암(紅蓮庵)은 그 이름처럼 붉은 연꽃이 벼랑 위에 피어난 형상을 하고 있다. 법당 안으로 들어서면 더 생생히 그 사실을 느낄 수 있다. 마룻바닥에 길이 10cm의 정사각형 구멍이 나 있는데, 이 구멍을 통해 보면 법당 아래로 거친 파도가 들이쳐 절벽에 부딪치는 모습이 한눈에 보인다. 절로 다리가 후들거려진다면 불심이 모자라서일까. 끊이지 않는 파도소리가 법문처럼 홍련암을 감싸고 있다. (낙산사는 화재 후 4년6개월이 걸린 복원공사를 거쳐 지난 10월12일 회향식을 가졌다.)
서해안의 관음도량 보문사는 강화도 서쪽 바다 위에 길게 붙어 있는 섬 석모도에 자리하고 있다. 그러니 보문사로 가는 길은 여느 산사를 찾아가는 길과는 다르다.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야 한다. 강화도 외포리 선착장에서 페리호에 자동차를 싣고 석모도로 건너는 시간은 불과 5분 남짓. 뱃전으로 몰려드는 갈매기와 희롱하다 보면 벌써 배는 석모도 석포선착장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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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모도 보문사 나한전 석실 |
마치 펄쩍 뛰어오르는 강아지 모양을 한 석모도에서 보문사가 자리한 곳은 상봉산과 해명산 사이. 신라 선덕여왕 4년(635)에 회정대사가 창건했다는 보문사는 석실로 된 나한전과 눈썹바위 아래에 모셔진 마애관음좌상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나한전에 모셔진 석상은 그 옛날 이 곳에 살던 한 어부가 바다 속에서 그물로 건져 올린 불상들이다. 고기는 안잡히고 돌덩이만 자꾸 건져져 올라와 화가 난 어부가 그 돌멩이를 다시 바다에 던져버리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 날 밤 꿈 속에 노승이 나타나 다시 돌덩이를 건지거든 명산에 잘 봉안할 것을 명했다. 다음 날 또 다시 23개의 돌덩이를 건진 어부는 낙가산으로 옮기다가 지금의 석굴 부근에 이르러 갑자기 돌이 무거워 옮길 수가 없어 그 자리에 단을 모아 모시게 됐다. 그 것이 바로 석실 법당에 모셔진 나한 불상들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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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문사 마애불 |
나한전을 나와 극락보전 오른쪽으로 나 있는 가파른 계단을 밟아 가면 산정 가까이 둥글게 휘어진 암벽에 양각된 거대한 마애관음 보살상과 마주한다. 이 곳에서 바라보는 서해 앞바다와 서역 3만 리를 붉게 물들이는 저녁 노을은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 장관이다.
남해 금산 보리암을 가는 길은 숱한 이들의 감탄처럼 남해의 절경을 두루 품고 있다. 기암절벽을 거느린 금산의 비경 아래로 초승달처럼 펼쳐지는 상주해수욕장과, 크고 작은 섬들이 흩어진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정상에 보리암이 자리하고 있다. 금산에서 가장 아름답고 신비롭다는 쌍홍문을 지나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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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 보리암 |
금산의 원래 이름은 보광산이었다고 한다. 683년 원효대사가 이 곳에서 초당을 짓고 수도하면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한 뒤로 절 이름을 보광사라 하자, 산 이름도 함께 불리게 됐다. 그런데 이성계가 이 산에서 백일기도를 올린 후 조선 왕조를 열게 되자 크게 기뻐하며 감사의 뜻으로 산에 비단을 내리기로 했다. 이에 한 신하가 앞으로 나서며 그 보다는 산 이름에 비단 금자를 붙여주는 게 세세손손 기억될 일이라고 해 이성계는 금산이라는 이름을 하사했고, 이 후 이 곳은 금산으로 불리게 됐다.
산과 바다와 기암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 보리암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은 언제부턴가 끊임이 없다. 그 곳에서 절집의 적묵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그 산과 바다와 바위들을 눈에 담고 산길을 내려오다 보면 한결 깊어진 마음의 고요와 향기를 문득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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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 보리암 해수관음상 |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