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볕과 맑은 바람이 더없이 좋다. 높고 구름없는 공활한 하늘도 가을임을 실감케 하는 날들이다. 이런 때면 고향처럼 정겹고 그리운 곳으로 떠나고 싶다. 나지막한 돌담길이 미로처럼 꼬불꼬불 이어지고, 바지랑대를 찾는 고추잠자리가 윙윙 머리 위를 낮게 돌며 따라오는 곳. 경북 예천군 용문면 상금곡리에 위치한 금당실마을은 투명한 가을날의 여로에 잘 어울리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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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으로 연결되는 돌담길 |
금당실마을은 600여년 전 형성된 옛모습을 간직한 전통마을이다. 15세기초 감천 문씨(문헌)가 정착해 살면서 그의 손자 문부경의 사위 박종린과 변응녕 대에 이르러 지금의 마을모습을 형성했다. 이 마을은 우리나라 십승지 중 한 곳으로 꼽힌다. 조선 태조가 도읍을 정하려 했을 만큼 길한 곳으로, 임진왜란 때도 병화를 피해 온전했다고 한다. 마을 지형이 마치 "물에 떠있는 연꽃"을 닮았다 해 "금당실(金塘室)"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하는데, 또 다른 전해오는 말로는 마을앞 금곡천에 사금이 생산됐다 해 "금당실", "금당곡"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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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졸한 멋을 보이는 경담재 |
금과 관련된 이야기를 뒷받침해주는 증거는 마을 서쪽에 자리한 송림이다. 수령 100~200년 정도에 나무둘레가 20~80m에 이르는 울창한 소나무숲은 천연기념물(제469호)로 지정될만큼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데, 원래는 지금보다 훨씬 넓은 숲을 이루고 있었다고 한다. 1892년 마을 뒷산인 오미봉에서 몰래 금을 채취하던 러시아 광부 두 사람을 마을주민이 살해하자 러시아측에서 엄중한 책임을 물었다. 이에 마을사람들은 오랜 논의 끝에 금당실의 공동재산이었던 소나무를 베어 러시아측에서 요구하는 배상금을 충당하기로 했다. 그 결과 길이 2㎞가 넘는 넓은 송림이 지금의 모습인 800m 숲으로 줄었다고 한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시작되는 돌담길로 들어서면 아득한 옛시간 속으로 빠져드는 듯한 착각이 인다. 나지막한 담장 너머로 옛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초가와 기와집들이 머리를 맞대고 이어진다, 사립짝을 들어서면 마당 한쪽에 자리한 우물과 장독대, 부지런한 주인이 일궈 놓은 작은 텃밭은 정겹고 흐뭇하다. 솟을대문이 세워진 양반댁 풍경도 평화롭다. 빈 자전거가 세워진 마당은 푸른 잔디가 넓게 깔렸다. 잘 손질된 마당의 나무들, 정갈한 창호지 문살들을 보면 주인의 단정한 인품이 절로 상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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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당실 송림 |
금당실마을의 매력은 뭐니뭐니해도 돌담길이다. 여러 단체에서 "걷기 좋은 길"로 꼽았을 만큼 전통 돌담길은 운치가 있고 정취가 느껴진다. 마을을 거미줄처럼 수놓고 있는 돌담길은 무려 7km나 구불구불 이어진다. 볏짚과 황토를 이용해 차곡차곡 만든 담장이 있는가 하면, 그냥 돌멩이만 척척 쌓아올려 멋도 기교도 부리지 않은 담장도 있다. 언뜻 보면 비슷비슷한 담장이지만 유심히 보면 초가를 얹은 돌담과 기와를 얹은 돌담이 어우러진 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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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담장 너머로 고택이 한눈에 보인다 |
일반 담들과 달리 그리 높지 않은 담장의 높이도 이 곳만의 특징이다. 어른 허리춤을 조금 웃도는 돌담길을 걷다보면 담너머로 고택이 한눈에 들어온다. 폐쇄된 담장이 아니라 열린 담장이다. 담을 따라 줄기를 뻗어나간 호박이며 담쟁이들도 멋스런 풍경을 더해준다.
돌담길을 따라가면 고가옥뿐 아니라 70년대식 슬레이트 지붕 가옥들도 몇몇 보인다. 새마을운동 당시 지붕개량으로 초가지붕을 헐어내고 슬레이트를 올렸던 집들이다. 지난 2006년부터 금당실마을은 "생활문화체험마을"로 선정돼 고택의 보강공사가 진행됐고 현재도 복원공사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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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초가집 |
함양 박씨 3인을 모신 금곡서원과 함양 박씨 입향조 박종린을 숭모해 재향을 올리는 추원재, 원주 변씨 변응녕을 기리는 사괴당 고택, 양주대감 이유인의 99칸 고택터, 조선 숙종 때 도승지 김빈을 추모하는 반송재 고택 등을 눈여겨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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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을 낀 텃밭 |
*맛집
금당실마을 초입 장터거리에 음식점들이 몇 있다. 안동식당(054-655-8752)은 두부요리를, 궁중(054-655-0696)은 오리고기를 선보인다. 예천읍 남본리의 송포정통복어집탕(054-655-5959), 백수식당(054-652-7777)의 육회 등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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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레이트 지붕의 가옥 |
*찾아가는 요령
중앙고속도로 예천 나들목에서 나와 928번 지방도로를 따라 용문면으로 향한다. 28번 국도를 만나는 3거리에서 우회전해 잠시 28번 국도를 따라 달리다가 용문 방향 928번 지방도로를 따라가면 오른쪽으로 금당실마을을 알리는 이정표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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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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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70년대로 이끄는 이발소 |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