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집 뜰에 서니 그 세월, 그 손길 오롯해

입력 2011년10월14일 0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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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에 문외한이라 해도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보고 읽었을 작품으로 박경리 선생의 《토지》를 손꼽는 데 아무도 주저함이 없으리라. 1969년 9월 <현대문학>에 연재를 시작한 대하소설 《토지》는 경남 하동 평사리에서 만주, 연해주, 서울, 부산, 진주, 동경 등으로 그 무대를 넓혀 가며 최참판댁 가문의 5대에 걸친 흥망성쇠를 통해 우리 민족의 한많고 파란만장한 근·현대사를 녹여내고 있는, 우리 문단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박경리문학공원입구

 2008년 82세를 일기로 세상을 뜬 박경리 선생은 고향인 경남 통영땅에 뼈를 묻었으나 만년을 보낸 강원도 원주땅에도 선생의 남다른 문학적 체취가 오롯이 남아 있다. 80년 서울을 떠나 터를 잡았던 원주시 단구동 옛집과, 단구동을 떠나 만년을 보내며 집필활동을 한 원주시 흥업면 매지리의 토지문화관은 선생의 흔적과 생애를 기리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 곳이다.
 
 두 곳에서는 작년에 출범해 올해로 2회째를 맞는 박경리문학제(10월 17~29일까지)가 열린다. 올해는 지난 6일 발표된, 국내 문학상 가운데 최고액인 1억5,000만원의 상금이 주어지는 제1회 박경리문학상 시상식도 함께 이뤄질 예정이다. 깊어가는 가을과 함께 선생의 발자취를 좇아, 문학향기 그윽한 원주 땅으로 떠나보자.

 중앙고속도로 남원주 IC에서 나와 원주시내로 들어가면 단구동 1620-5번지에 위치한 박경리문학공원과 마주하게 된다. 문학공원이 자리한 곳은 선생이 처음 원주에 정착할 때와 달리 주변이 개발돼 그 옛날의 밭이나 산, 논, 구릉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이 곳에는 선생의 문학혼과 더불어 소설《토지》를 완성하며 수없이 다듬고 어루만지며 노동했던 손길이 그대로 남아 있다. 특히 선생이 손수 농사를 지으며 사는 동안 작은 풀잎 하나, 조약돌 하나조차도 귀하게 여기며 정겨워 했던 공간이다.

단구동 옛집

 1만1,438.4㎡ 부지에 꾸며져 있는 박경리문학공원은 선생의 옛집과 정원 등을 보존하면서 주변을 소설 《토지》의 배경을 옮겨 놓은 3개의 테마공원(평사리마당, 홍이동산, 용두레벌)으로 꾸며 놓았다. 특히 옛집은 서울을 떠나 원주 단구동으로 이사와 18년동안 살면서 26년간 전 생애를 걸고 쓴 대하소설《토지》를 완성(4부와 5부)한 곳이다. 손주들을 위해 손수 만든 연못이며, 마당 한 켠에는 선생이 생전 가꿨던 텃밭도 그대로 남아 있다.

 옛집 내부는 복원공간과 전시실 활용공간을 구분해 작가로서 또는 자연인으로서의 박경리 선생의 삶과 문학을 오롯이 느낄 수 있게 했다. 1층은 검박한 집필실과 서재, 주방 등 선생의 생활공간이, 2층은 선생의 평소 소망대로 세미나나 워크숍을 할 수 있는 문인들의 토지문화사랑방으로 꾸며졌다.

옛집 뜰에 텃밭 등이 그대로 있다

 치악산 줄기가 바라보이는 뜰 한쪽에는 호미자루를 옆에 놓고 바윗돌 위에 앉아 잠시 쉬고 있는 선생의 모습이 자리하고 있다. 생전의 검박함을 고스란히 표현해낸 그 모습은 뜰로 들어서는 낯선 손님을 향해 금방이라도 따뜻한 눈길을 줄 것만 같다. 아니 어쩌면, 선생이 남긴 시 <옛날의 그 집> 한 구절을 가만히 되뇌고 있는 듯한 모습이기도 하다. 

작업하던 호미, 장갑, 모자

" " " " "

다행히 뜰은 넓어서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살았다
 
정붙이고 살았다

텃밭은 그대로건만...

달빛이 스며드는 차가운 밤에는

이 세상의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아

옛집뜰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육필 원고와 애장품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늘

선생의 자필 서명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소설 토지의 여러 판본들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전시실 입구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옛날의 그 집> 중에서

문학의 집

 그런데 《토지》의 산실인 이 곳이 1989년 택지개발지구로 편입돼 자칫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뻔 했다. 문화계에서는 이를 막기 위해 사방으로 뛰었고, 그 건의에 따라 한국토지공사가 공원부지로 전환, 1997년 9월 착공해 1999년 5월 문학공원을 완공했다.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박경리문학공원 내 북카페

 공원 안에는 2010년 개관한 "박경리 문학의 집"과 북카페도 함께 자리하고 있다. 문학의 집에는 선생의 일상과 삶의 자취를 모두 느낄 수 있는 전시물이 있고, 북카페에는 선생과 관련된 책자는 물론 다양한 서적을 볼 수 있다. 카페 2층에는 일제강점기 교과서와 자료들을 기증받아 토지의 주요 시대적 배경을 볼 수 있는 특별전시장을 마련했다.

 *찾아가는 길
 중부고속도로(하남분기점) - 영동고속도로(호법분기점) - 중앙고속도로(만종분기점) - 남원주IC

생몰 연대가 새겨진 바위에 앉은 선생이 금방이라도 뒤를 돌아볼 것만 같다
시 "옛날의 그집"과 고양이 조형물
손주를 위해 직접 만든 연못

이준애 (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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