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허함 배우는 가을 속으로 떠난다

입력 2011년10월21일 0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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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문화재 원주 용소막성당

 청명한 하늘빛과 마주하는 가을이면 절로 겸허한 마음이 된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노래한 시인들의 속삭임이 어느 때보다 절실히 마음에 와 닿고, 고요한 절집과 작은 예배당의 종소리는 문득 걸음을 멈추게 한다.


 제천-원주간 국도 5번을 따라 달리다 충북과 강원도계를 이루는 신림면에 이르면 중앙고속도로와 중앙선 철로도 함께 나란히 달리게 된다. 주변의 산과 계곡, 들판과 마을이 어우러져 전형적인 농촌의 가을풍경을 연출하다.


 그 풍경 한쪽으로 자리한 고딕양식의 붉은 벽돌건물과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높이 솟은 뾰족한 첨탑은 가을날의 풍경을 더욱 서정적으로 만든다. 마치 그림엽서 같은 이 풍경 속의 건물은 바로 강원도 유형문화재로도 지정된 원주 용소막성당이다.


 강원도 원주는 천주교와 관련이 깊은 곳이다.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전파되던 초창기, 모진 박해가 뒤따랐는데 1866년 병인박해를 피해서 많은 신자들이 강원도 산골로 숨어들었다. 특히 치악산과 원주 주변 깊은 산골로 들어온 신자들은 옹기나 숯을 구워 생계를 이으며 숨어 지냈다. 그런 까닭에 여느 지역보다 일찍부터 천주교가 뿌리를 내렸고 오래된 성당들이 줄 잇는다. 1890년 횡성군 서원면 유현리에 세워진 풍수원성당은 강원도에서 제일 먼저 세워진 성당이다. 뒤를 이어 1895년에는 원주 인동성당이 서기에 이르렀고, 용소막성당도 강원도에서 3번째로 지어진 100년이 넘은 성당이다.


 이와 함께 1970년대 유신독재에 맞서 한국의 사회정의 및 인권운동에 앞장섰던 천주교의 큰 지도자, 원주교구청 지학순 주교의 자취도 거기에 한몫 한다. 


 원주시 신림면 용암리 남향 언덕에 자리한 용소막성당은 평일에도 천주교 신자를 비롯한 순례자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 곳이다. 1878년(고종35) 풍수원성당의 전교회장으로 있던 최석환에 의해 원주 본당소속 공소로 시작하여, 1904년(고종41) 프와요 신부가 초대 본당신부로 부임 하면서 독립성당이 되었다. 처음 성당건물은 초가집이었는데 1915년 시잘레 신부에 의해 현재의 벽돌 건물로 지어지게 되었다. 한국전쟁 때 일부 파손된 것을 후에 수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앞면 중앙에 종탑이 튀어나와 있는 건물은 당시 우리나라 소규모 벽돌 성당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붉은 벽돌로 쌓고, 건물을 받쳐주는 버팀벽은 회색벽돌을 사용했다. 창의 모양은 모두 아치형에, 테두리를 회색벽돌로 장식했다. 색색의 스테인드글라스 창을 통해 성당 안은 경건하면서도 그윽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용소막성당은 이곳 원주출신 성서학자 선종완 사제가 평생을 보낸 곳으로도 유명하다. 선신부는 1960년 성모영보수녀회를 설립하고 한국교회에서는 처음으로 구약성서를 번역하는데 혼신의 힘을 쏟는 등 한국교회사에 큰 족적을 남긴 거목이다. 번역 원고본이 "사제 선종완 라우렌시오 유물관"에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다. 현재 이 유물관에는 고인이 사용하던 낡은 책상을 비롯한 유품 380여점과 각종 서적류 300여권도 남아있다.


 성당 본당을 비롯해 사제관, 수녀관, 교육관 등 부속시설물도 이곳 분위기와 잘 어울리게 자리잡고 있다. 성당 뒤쪽으로 올라가면 십자가의 길을 따라 고난 받는 예수상이 순례객을 맞이한다. 성당 주변으로 수령 150여년으로 추정되는 느티나무가 오랜 성당 건물과 어우러져 고풍스럽고 아늑한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가는 요령

 중앙고속도로 신림 IC에서 나와 88번 길을 따라 제천 방향으로 가면 신림면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좌회전해 국도 5번을 타고 제천 방향으로 조금 더 가면 신림역을 지나 용암2리 삼거리. 이곳에서 우회전해 작은 다리를 건너가면 오른쪽에 성당 입구가 보인다.


 이준애 여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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