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보레가 중형 세단 말리부를 내놨다. 이를 통해 GM대우 시절 토스카 이후로 명맥이 끊겼던 국내 중형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다는 복안이다. 특히 쉐보레는 그간 국내 중형세단에서 강점이 되지 못했던 핸들링과 고속에서의 안정된 주행감각을 내세워 중형도 얼마든지 품격을 내비치되 역동이 돋보일 수 있다는 점을 부각시킬 방침이다.
기본적으로 말리부는 쉐보레의 글로벌 중형세단이다. 한 마디로 국내 뿐 아니라 지구 곳곳에서 판매되는 글로벌 스탠다드 중형인 셈이다. 이런 이유로 말리부 디자인은 전반적으로 쉐보레의 정체성 확보에 치중한 모습이 역력하다. 쉐보레 로고가 선명하게 부착된 2단 그릴과 역동적이되 결코 튀지 않는 프로젝션 타입의 헤드램프가 개성을 표현한다.
사견(私見)을 전제로 말리부 디자인의 핵심은 측면이다. 돌출 범퍼를 최대한 억제한 덕에 타이어와 범퍼 사이의 오버행이 짧아져 다부진 인상을 풍긴다. 마치 독일 프리미엄 세단의 측면을 보는 듯하다. 벨트라인도 다소 높게 설정해 고급스러움을 풍기도록 했고, 뒷 유리에서 리어 데크로 이어지는 흐름이 시각적으로 안정감을 준다.
시인성이 뛰어난 리어 콤비네이션 램프 외에 스포일러처럼 치켜 솟은 트렁크리드와 일체형 범퍼는 역동과 품격 두 마리를 모두 잡으려는 노력으로 높이 평가될 수 있을 것 같다.
인테리어는 운전석과 조수석을 감싼 랩어라운드 스타일이 확연하다. 마치 알페온을 보는 것 같다. 사각 테두리를 두른 계기반 주변은 푸른 조명이 은은함을 더한다. 엔진회전계와 속도계 사이는 산뜻한 느낌의 컬러 트립창이 자리해 정보 표시를 해준다. 개인적으로 트립창에 표시되는 서체가 명확해서 마음에 든다. 글자체 하나도 감성 품질 항목에 포함되는 최근 트렌드를 감안하면 감성품질에 신경 쓴 흔적이다. 3스포크 타입의 스티어링 휠은 금속 소재처럼 보이는 색상이 일부 적용돼 시각적으로 주목을 끌어 당긴다. 개인적으로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나아 보인다.
센터페시어의 전반적인 디자인 컨셉트는 로직과 로터리 타입의 공존이다. 로터리 타입 레버는 최대한 좌우로 밀착시켜 대칭구도를 형성했다. 이외 로직 버튼도 군더더기 없이 수평 배열을 통해 일체감을 표현했다. 누를 때 에포트(Effort)가 크지 않아 기능적으로 조작이 편하다.
재미있는 것은 내비게이션 뒤에 숨어 있는 수납공간이다. 올란도에도 마련된 것처럼 말리부에도 예외 없이 포함됐다. 소비자들의 휴대물품이 점차 많아지는 점에 착안, 눈에 잘 보이지 않게 보관하도록 만든 것은 칭찬할 대목이다. 운전할 때 매우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또 하나 이채로운 점은 변속레버를 감싼 가죽에 스티치를 넣은 점이다. 간과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말리부의 품격을 내세우기 위한 감성의 극대화로 이해될 수 있다.
말리부에는 GM의 4기통 2.0ℓ 엔진과 6단 자동변속기가 탑재됐다. 기존 6기통에서 글로벌 엔진으로 사용되는 4기통으로 변신한 셈이다. 141마력과 18.8㎏.m의 토크로 1,530㎏의 무게를 견인한다.
먼저 버튼을 눌러 시동을 걸었다. 경쾌하게 엔진이 작동한다. 손에 잘 잡히는 변속레버를 "드라이브(D)"모드에 옮겨 놓을 때 절도감이 느껴진다. 변속레버 조작 때의 절도감은 흔히 말하는 감성품질이다. 일정한 힘을 가하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옮겨지는 느낌이 중요하다.
가속페달을 밟고 도로에 올라섰다. 미끄러지듯 차가 움직인다. 확실히 중형 세단임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속도를 더 올렸다. 시속 120㎞까지 무난하게 치고 나간다. 시속 140㎞까지도 어렵지 않다. 최대출력과 토크만 보고 성능이 다소 부족한 것 아니냐고 생각했지만 오판을 깨닫는 것은 어렵지 않다. 시속 150km를 넘어서면 가속이 더뎌지지만 노면과의 밀착된 느낌은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재미나는 것은 스티어링 응답성이다. 스티어링의 미세한 움직임에도 차가 순간적으로 반응한다. 그간 국내 중형세단에선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핸들링이다.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스티어링을 좌우로 돌릴 때마다 차체가 마치 운전자의 의도를 인지했다는 듯 따라주니 묘한 "감동의 역동성"이 다가온다. 흔히 자동차 역동성을 빨리 달리는 것으로만 오해(?)하는 소비자가 적지 않다. 그러나 역동 속에는 스티어링 움직임에 따른 차체 반응, 운동성능까지 포함돼 있다. 적어도 말리부의 운동성능만 놓고 보면 국산 중형차로는 경쟁력이 높다고 표현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품격 속에 감추어진 역동"이란 바로 이 점을 두고 하는 말이다.
자동차전용도로를 달리면서 말리부의 강점이 또 하나 드러났다. 바로 고속 주행에서 느껴지는 안정감이다. 속도가 오를수록 중량이 아래로 집중되는 느낌, 일반적으로 얘기하는 "낮게 깔린다"는 얘기다. 운전할 때 상당히 중요한 주행 감성 중 하나인 고속주행 안정성은 알페온에서도 충분히 체감한 적이 있다. 알페온의 주행감성과 결코 다르지 않다. 말리부와 알페온의 아키텍처가 같다는 점을 유추해 보면 주행감각은 알페온애서 말리부로 옮겨온 것 같다는 생각이다.
국내 소비자들이 가장 민감해 하는 진동소음은 말리부에서 논란거리가 되지 못한다. 소음 차단이 비교적 잘 됐고, 시속 100㎞ 이상 고속에서도 풍절음 차단의 완성도가 높은 편이다. 노면에서 올라오는 소음, 이른바 로드 노이즈(Road noise)도 별로 나타나지 않는다. 착좌감이 뛰어난 시트에 엉덩이를 놓고, 크루즈 컨트롤 기능으로 속도를 설정한 뒤 편안하게 운전만 하면 된다.
말리부 시승을 끝내면서 떠 오른 생각은 앞서 꺼낸 "품격 속에 감추어진 역동"이 제대로 구현됐다는 점이다. 디자인의 손길이 세밀한 부분까지 미쳤고, 무엇보다 주행 감성만족도가 높았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말리부 곳곳에 배어 있는 감성(感性) 항목을 찾아내는 일도 꽤 즐거운 일이다. 숫자로 가늠되는 자동차 시대를 과거로 여긴다면 말리부는 "감성중형"이라는 새로운 트렌드를 개척해 낼 것 같다. 말리부의 감성, 경쟁력은 충분했다.
권용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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