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사내들이 모두 걸음을 멈추고 홀린 듯이 바라본다. 더러는 허리까지 꺾은 채 활짝 드러낸 그 가슴(!)을 노골적으로 들여다본다. 청년 하나가 재빨리 휴대폰 카메라를 꺼내 셔터를 눌러댄다.
노소를 불문한 사내들의 가슴을 온통 흔들어놓은 그 장면은? 아마도 관능적이고 육감적인 미모의 여인을 기대했다면 유감스럽게도 아니다. 홍콩의 이국적인 스탠리(Stanley, 赤柱) 거리에서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던 그것은 전기 스포츠카 테슬라 로드스터. 2008년 타임지가 선정한 10대 발명품 중 하나로 뽑혔던 이 차는 100% 전기 차임에도 최고시속 200km , 시속 60마일(96km)까지 불과 3.9초에 도달하는 놀라운 성능을 자랑한다. 또한 연비도 한 번 충전으로 320km를 갈 만큼 뛰어나다. 입이 떠억 벌어지는 건 성능만이 아니다. 차 값도 무려 10만 달러가 넘는다니 보통 사람들에겐 이렇게 눈앞에서 보는 것만도 횡재인 셈이다. 그것도 한 대가 아닌 두 대씩이나 만났으니 완전 심봤다!
홍콩 섬 남부 해안가에 위치한 스탠리에는 깨알 같은 재미와 멋이 넘친다. 지중해풍 해안가의 이국적인 풍경은 낯선 여행자의 마음을 휘어잡기도 하고, 좁은 골목을 따라 펼쳐지는 아기자기한 시장풍경은 홍콩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스탠리는 홍콩에서 외국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원래는 작은 어촌이었으나 영국 지배하에 있던 19세기 중반 임시수도로 자리 잡으며 번창했다. 당시 외국인이 많이 들어와 주거지를 짓게 되었고, 또 군사시설과 여러 건물들도 자리를 잡았다.
머레이하우스는 스탠리 해안가에 있는 160년 역사의 건물이다. 처음부터 이곳에 지어진 건물은 아니다. 1844년 영국 식민지 시절에 센트럴에 지어졌던 건물로 일본 식민지 시절에는 중앙사령부로 쓰이기도 했던 건물이다. 1982년 그 자리에 중국은행 건물이 들어서면서 헐리게 된 것을 1999년 지금의 위치인 이곳에 재건축되었다. 이 건물은 현재 1층엔 해양박물관이 자리 잡고 2, 3층은 레스토랑으로 이용되고 있다. 스탠리만의 푸른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이곳 테라스에서 즐기는 식사는 로맨틱한 홍콩 여행의 진수로 손꼽는다. 도리아식 기둥이 늘어선 건물 주변과 눈부신 바다 풍경은 마치 지중해의 어느 레스토랑에 온 듯한 기분이다.
이국적인 분위기의 멋과 낭만은 머레이하우스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해안을 따라 바다를 안고 선 메인 스트리트 전체가 유럽풍 카페와 레스토랑으로 이어진다. 모든 가게들이 길과 마주하고 있는 노천카페다. 펑키 바의 좁은 의자에 몸을 맡기고, 맥주 한잔을 앞에 놓고 여독을 풀고 있는 다양한 여행자들의 모습이 이곳 풍경을 더 자유롭게 만든다.
메인 스트리트 초입에 위치한 푸른 파스텔톤 건물의 "보트 하우스"는 이곳 스탠리의 낭만을 상징하는 레스토랑이다. 스탠리만의 파란 바다색을 옮겨놓은 듯한 보트하우스의 건물 색깔과 유럽풍 분위기는 여행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준다.
낭만적이고 활기찬 메인 스트리트 풍경과 달리 스탠리마켓은 홍콩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곳이다. 화려한 야경과 마천루로 대표되는 홍콩의 휘황찬란한 얼굴과 달리 이곳은 소박하고 아기자기한 재미와 멋을 느끼게 하는 곳이다.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머리를 맞댄 상점들이 길게 이어지는 스탠리마켓은 흡사 작은 남대문시장을 보는 듯하다.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홍콩 전통의상에서부터 보세신발, 그림, 도장, 기념품, 장신구, 공예품 등등이 관광객의 눈길과 발길을 잡는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시장은 흥정과 실랑이가 일기도 하는 사람 냄새 나는 또 다른 홍콩의 얼굴이다.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