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빌 헬름 마이바흐의 씁쓸함

입력 2011년11월27일 0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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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임러벤츠가 결국 "마이바흐(Maybach)"라는 최고급 브랜드를 포기하기로 했다. 벤츠를 능가하는 최고급 브랜드로서 제 역할을 못해왔기 때문이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Out of sight, out of mind)"는 말처럼 제 아무리 1930년대 명차라 해도 60년 동안 사라졌던 세월의 공백을 메우기란 쉽지 않았던 셈이다. 

 다임러가 마이바흐 브랜드를 만들게 된 배경은 S클래스 이후의 선택차종 때문이다. S클래스 구입자의 상당수가 롤스로이스나 벤틀리 등으로 옮겨가자 마이바흐를 대안으로 제시, 수요를 묶어두려 한 의도가 다분했다. 하지만 S클래스와 마이바흐 사이의 격차가 워낙 커서 섣불리 이동하는 수요가 없었던 반면 정작 마이바흐 선택이 가능한 시점에선 오랜 동안 최고급 브랜드로 생존해 온 롤스로이스로 옮겨가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이런 현상은 국내에서도 나타났다. 28일 한국수입차협회에 따르면 올해 10월까지 마이바흐 판매는 8대에 그친 반면 롤스로이스는 21대가 팔렸다. 이보다 한 단계 낮은 벤틀리는 82대가 판매돼 최고급 자동차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S클래스 선택 이후 차종으로 벤틀리가 부각됐고, 다시 롤스로이스로 넘어간다는 말이 정설처럼 들리는 이유다. 

 이런 점을 깨달은 다임러는 마이바흐를 포기하는 대신 메르세데스 벤츠 S클래스를 기반으로 한 상위 버전 개발에 치중키로 했다. 차라리 S클래스 내에 최고급부터 보급형까지 다양한 선택을 마련하는 게 더 낫다는 판단에서다. 마이바흐는 내리막, S클래스는 오르막 그래프로 표현된 점을 간과할 수 없었던 셈이다.


 그러나 지금의 메르세데스 벤츠가 명차로 유지될 수 있었던 기초를 쌓은 사람은 바로 "빌헬름 마이바흐(Wilhelm Maybach, 1846-1929)"였다. 다임러벤츠의 창업자 중 한 사람이었던 "고틀리프 다임러(Gottlieb Daimler, 1834-1900)"가 빌헬름 마이바흐를 만나지 못했다면 아마도 "다임러"는 역사 속의 작은 회사에 불과했을 수도 있다. 그만큼 빌헬름 마이바흐가 다임러벤츠의 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의미다.
  
 마이바흐 자동차의 기초가 된 마이바흐 DS8, 일명 "제플린(Zepplin)"을 완성한 사람도 빌헬름 마이바흐와 아들인 칼 마이바흐였다. 빌헬름 마이바흐가 세상을 떠난 후 칼 마이바흐가 완성한 제플린은 5.5m의 길이로, 당시 독일 내 최고급차의 명성을 얻기에 충분했다. 메르세데스 벤츠를 가다듬었던 마이바흐의 손길이 제플린에 녹아들면서 단숨에 최고 명차 회사로 합류하게 됐던 셈이다.


 그렇지만 마이바흐도 시대를 마감한 뒤 60년의 공백은 넘지 못했다. 한 마디로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셈이다. 그렇게 보면 세월 앞에 장사 없고, 흐르는 시간을 막을 사람도 없다. 1930년대 자동차의 왕으로 추앙받았던 마이바흐지만 2000년에는 지극히 일부 사람만 기억하는 역사 속의 작은 인물일 뿐이다. 무덤 속의 마이바흐가 이런 사실을 안다면 씁쓸해 하겠지만 언제나 주인공이 될 수는 없다. 잊혀짐은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권용주 기자 soo4195@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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