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드로버의 컴팩트 쿠페형 SUV 레인지로버 이보크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기존 브랜드의 고정관념을 벗어버린 차다. 우선 유선형의 "쿠페" 디자인을 적용해 레인지로버나 디스커버리로 보여줬던 "사각"의 미학을 깨버렸다. 또한 리어 도어를 과감히 없애 진짜 쿠페를 표방했다는 점도 놀랍다. 이미 BMW X6 등으로 쿠페형 SUV를 경험해보긴 했지만 도어 숫자까지 "2도어 쿠페"의 형태를 가진 SUV는 없었기 때문이다.
도심형을 표방한 덕분에 재규어에 공통적으로 채용돼 있는 드라이브 셀렉트가 장착된 점도 특징이다. 때문에 랜드로버는 이보크에 대해서 "브랜드의 미래"라고 설명한다. 아는 사람만 진가를 알아주던 브랜드에서 디자인적으로 완벽히 대중성을 갖춘 브랜드로 가는 길에 가장 먼저 출시된 차라는 것. 랜드로버의 새로운 아이콘 이보크를 부산에서 시승했다.
▲스타일
"이 차가 랜드로버의 차가 맞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외관 디자인에서의 변화의 폭은 상당하다. 유려한 루프 곡선, 솟아오른 숄더 라인은 누가 보더라도 랜드로버의 전통에서 완전히 벗어난 차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이보크에도 랜드로버의 특성은 담겨져 있다. 전체적으로 과감하고 획기적인 탓에 그런 요소요소들이 감춰졌을 뿐이다.
전면부를 살펴보면 기존의 랜드로버 차들이 라디에이터 그릴이나 헤드램프 등이 시원시원할 정도로 컸던 것과 다르게 이보크는 마치 세단이나 스포츠카를 연상시키듯 슬림하다. 그릴 바도 기존 레인지로버의 경우는 3개가 들어가지만 이보크는 2단 구성으로 변화를 줬다. 쿠페형 SUV라는 특성을 담아내기 위한 해석으로 보인다. 헤드램프는 바깥쪽으로 갈수록 얇고 날카롭게 빠져 역시 역동적인 성격을 표현하고 있다. 링LED 주간 주행등이 들어갔으며 안개등 역시 LED가 사용됐다.
조개의 다문 입을 형상화한 클램쉘 보닛 디자인과 그릴 바의 천공 패턴은 브랜드 전통이다. 쿠페형을 표방하지만 SUV의 특성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어 범퍼 하단에 메탈 소재로 강조했다.
측면부로 돌아가면 이보크 디자인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쿠페형답게 루프는 뒤로 갈수록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밑으로 떨어진다. 다만 3도어 모델은 뒷좌석 거주성을 약간 포기하면서 루프의 하강 각도를 더욱 높였다. 이에 따라 좀 더 쿠페에 가까운 디자인이 될 수 있었다. 다이내믹 모델(3도어·5도어 공통)의 경우 여기에 추가로 공기역학에 기여하는 리어 스포일러를 장착했다.
전통의 낮은 숄더라인은 이보크에 들어 배제된 모습이다. 루프와 숄더라인 사이의 간격은 크게 줄어들었고 리어로 향할수록 차츰 높아져 날렵한 분위기를 내고 있다. 5도어에 장착된 19인치 휠은 웅장한 느낌이다. 휠은 최근의 유행을 반영, 스포크가 촘촘하게 표현됐다. 3도어의 20인치 휠은 더욱 강렬한 느낌을 선사한다.
후면은 이보크의 미래적인 디자인이 더욱 돋보인다. 최대한 장식을 빼서 단순명료한 라인을 형성하고 있다. 리어 램프는 전면부의 헤드램프와 비슷하게 슬림한 디자인으로 들어갔으며 램프 사이에는 크롬바를 넣어 세련된 분위기를 연출했다. 앞면과 동일하게 범퍼 하단은 메탈 처리했다.
실내도 상당히 아름답게 꾸며졌다. 엔트리급 모델이지만 프리미엄의 정체성을 잃지 않은 덕분이다. 원가를 절감하기 위해 싸구려 소재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실내 곳곳에는 고급 가죽이 아낌없이 쓰였다. 가죽의 이음매는 매우 정교하게 이어졌다. 실제로 손을 대봐도 매우 부드러움을 알 수 있다.
편의 품목도 랜드로버의 다른 어떤 차들에 비해 부족하지 않다. 8인치 멀티미디어 모니터의 경우 오히려 다른 차들보다 화질이 월등하다. 국내에서 별도로 장착한 내비게이션의 해상도도 매우 만족스럽다.
유명 가수이자 세계적인 축구선수 베컴의 아내, 빅토리아 베컴이 제안했다는 가변 실내조명 시스템은 5가지 색상을 운전자나 탑승자의 기분에 맞게 바꿀 수 있다. 푸른색부터 붉은색까지 기호에 맞게 조절되는 것이 특이하다. 그러나 실제 사용빈도는 그리 높지 않을 것 같다.
기어 시스템은 재규어의 드라이브 셀렉트가 들어갔다. 전반적으로 도심형을 추구하기 때문에 세단인 재규어의 시스템이 채용된 것으로 판단된다. 혹자는 SUV의 맛이 떨어진다고 불만을 가졌지만 개인적으로는 참신하면서 편리하다. 어차피 자동 변속기로 운전하기 때문에 기어 레버를 만질 일이 없다. 그렇다면 차라리 시각적으로 멋져 보이는 것이 외관 디자인과도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다.
3도어 쿠페의 경우 리어 도어가 없기 때문에 앞좌석 탑승구를 통해 뒷자리에 올라야 한다. 일반적인 2도어 쿠페들이 차고가 낮은 탓에 뒷자리에 타기 위해 힘이 드는 것과는 다르게 이보크는 차고가 높아 쉽게 오르고 내릴 수 있다. 공간도 키 175cm의 성인남자가 타도 좁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다만 루프가 낮은 탓에 머리는 다소 닿는다.
지붕은 폴리카보네이트라는 신소재를 사용한 파노라믹 루프를 채용했다. 기존 강화 유리보다 가벼우면서도 강도는 2배 이상 강하다는 게 특징이다. 실제로 두들겨보고 만져보니 유리와는 다른 느낌이 이채로웠다. 열전도율도 높지 않은지 햇빛이 내려쬐어도 표면이 뜨겁지 않았다. 파노라믹 루프 글래스를 장착한 대부분의 차가 여름철 높은 복사열로 고생하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이보크의 루프는 분명한 장점이다.
▲성능
시승은 온로드에서 약 160km가량 진행됐다. 2인1조로 구성돼 총 2번의 운전자 교대와 1번의 시승차 교체를 했지만 아쉽게도 2.2ℓ 디젤 모델만을 시승할 수밖에 없었다. 운전도 약 50km의 구간을 짧게 경험했다.
첫 구간에서는 조수석에 탑승해 전반적인 승차감을 체감하는데 주력했다. 운전자가 시동을 걸고 가속 페달을 밟자마자 즉각적인 가속이 이뤄졌다. 레인지로버 최경량차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42.8kg·m이라는 높은 토크 성능도 한몫했다. 가속력이 꽤 좋기 때문에 익숙지 않은 운전자들은 초반에 적응하는데 약간 어려움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승차감은 부드러웠다. 앉은 느낌도 편안했다. 노면 충격에 따른 스트레스는 엉덩이에 거의 전해지지 않았다. 기존 레인지로버나 디스커버리 같은 오프로드 지향의 차들과는 지향점이 다른 것도 이유가 될 것 같다. 그러나 하체까지 무르진 않다. 단단하게 차체를 잡아주면서 탑승자의 승차감도 고려한 것이 인상적이다.
실내 소음은 사용 연료를 알아채기 힘들 정도로 차단했다. 프리미엄급에서는 대중차에서는 가격 문제로 사용하지 못하는 흡음재를 아낌없이 쓸 수 있어서다. 이보크도 진동과 소음을 잡기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게 회사 설명이다 시속 160km이상이 되니 풍절음이 귀를 괴롭혔다.
이후 중간 기착점에서 운전자 교대를 했다. 실제 운전석에 앉아 가속 페달을 밟아 차를 출발시켰다. 역시 급격한 가속력에 머리가 뒤로 쏠렸다. 이미 조수석에서 경험을 했지만 익숙 않았기 때문에 조심스레 속력을 높였다.
가속은 꾸준했다. 190마력의 출력이 차를 안정적으로 떠받쳤다. 금방 시속 100km를 넘어 타코미터가 150km/h를 가리키고 있었다. 차를 컨트롤하는 데 있어 어려움은 없었다. 조수석에서 느꼈던 것 그대로 부드럽지만 단단한 하체는 차를 더욱 안정감 있게 했다. 직선이나 곡선이나 큰 문제점은 발견할 수 없었다. 안전상 최고 속도는 225km/h. 그러나 속도는 200km/h 이상 낼 수 없었다. 주변 차와의 안전 문제 때문이다. 200km/h도 상당히 빠른 속도지만 불안함은 역시 찾을 수 없었다.
이보크는 도심형 SUV의 좀 더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온로드 주행에 상당한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랜드로버 하면 떠오르는 건 오프로드 성능. 이보크도 랜드로버답게 최소한의 오프로드 성능을 갖췄다는 게 회사 설명이다. 이에 따라 랜드로버코리아는 별도로 오프로드 구조물을 마련해 성능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직접 체험에 앞서 오프로드 인스트럭터의 브리핑과 시범 교육이 실시됐다. 설명을 맡은 인스트럭터는 오프로드 주행을 하기 위해서는 전자식 디퍼런셜보다는 기계식이 좋다고 한다. 아무래도 전자식은 오류가 날 위험이 있고 차를 잡아주는데 기계식이 효과적이라는 것.
그러나 이보크는 온로드 지향이기 때문에 전자식 디퍼런셜이 사용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스커버리나 레인지로버용 구조물에서도 무리 없는 오프로더 성능을 보여주고 있는 점은 오히려 놀랍다고 전했다. 동급의 어떤 SUV보다도 효과적인 험로 돌파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오프로드 주행은 머리를 창밖으로 빼 앞바퀴에 걸리는 장애물을 확인하면서 가는 것이 기본이다. 그러나 이보크의 경우 주차용으로 개발된 서라운드뷰 시스템을 이용해 앞바퀴와 차 주변의 상황을 실내에서 확인할 수 있어 매우 유용했다. 실제로 보는 듯 주변의 상황이 생생하게 모니터링이 됐다. 도강 능력도 기본 랜드로버 제품 못지않게 갖추고 있었다. 5수심 50cm를 문제없이 건널 수 있다.
급격한 내리막 경사로에서는 저속주행장치와 밀림방지장치(HDC)가 작동한다. 다른 브랜드 SUV들도 모두 필수적으로 확보하고 있는 장치들이다. 그러나 이보크의 다른 점은 중력센서에 의해 내리막에 돌입함과 동시에 작동한다는 점이다. 운전자의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어 효과적이다. 저속주행장치는 속도를 정하게끔 해놔서 원하는 속도에 맞춰 내려올 수 있었다.
▲총평
앞선 스타일링, 빼어난 온로드 주행 성능은 이보크가 랜드로버의 새로운 아이콘이자 미래가 될 수밖에 없음을 잘 설명해준다. 여기에 랜드로버 특유의 오프로드 주행 능력까지 이보크를 직접 체험해보니 마치 공부도 잘하고 놀기도 잘 노는데 직장도 좋은 "엄친아"가 떠오른다. 갖출 건 다 갖췄기 때문이다. 오늘날 모든 자동차 업체들은 "독창성"을 내세우고 그 일환으로 두가지 이상의 특성을 섞은 크로스오버 장르를 탄생시켰다. 자극을 원하는 소비자 기호를 맞추기 위해서다. 이보크도 굳이 분류하자면 크로스오버다. 쿠페와 SUV를 합쳐놓은 디자인에 온·오프로드 주행성능을 겸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크로스오버는 항상 정체성이 문제라는 생각이다. 모호한 정체성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전적으로 소비자에게 선택권이 달려있음에도 말이다.
박진우 기자 kuhiro@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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