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스는 창립자 콜린 채프먼이 레이스에 대한 열정을 바탕으로 1952년 설립한 회사다. 공장에서 차를 찍어내는 양산 브랜드와 달리 소규모 작업장에서 수제작 방식을 고집했고, 경량화를 통한 성능향상을 모토로 한다. 세계 최초로 유리섬유(GFRP)소재를 사용해 가벼우면서도 강한 차체를 적용했으며, 1957년 엘리트(ELITE)를 비롯해 엘란(62년), 유로파(67년), 에스피릿(75년) 등의 명작을 내놨다. 또한 축적된 기술력을 토대로 로터스 엔지니어링을 설립,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들이 새 차를 개발할 때 기술 자문을 받는 엔지니어링 회사로도 유명하다.
1982년 GM, 1993년 부가티 아우토모빌리에 이어 1996년 말레이시아의 대표 자동차 회사인 프로톤(Proton)에 인수됐다. 이후 F1에도 적극 참여하고, "에보라" 신차를 내놓으며 다시 공격적인 움직임을 보인다. 내년엔 자동변속기를 탑재한 차종도 출시된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로터스를 대표하며, 가장 로터스다운 차종은 엘리스(ELISE, 엘리제로도 불린다)가 아닐까 싶다. 출력은 다소 떨어지지만 가장 가벼운 무게를 토대로 뛰어난 핸들링 감성을 표현하고 있어서다.
이번에 엘리스 중에서도 무게가 876kg에 불과한 기본형을 시승했다. 자연흡기방식 1.6ℓ 엔진을 탑재해 140마력을 내지만 주행 감성은 영락없는 고성능 스포츠카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 도달은 6.5초면 된다. 최고시속은 204km에 달한다.
▲스타일
구형과 비교하면 많이 산뜻해졌다. 앞모양이 단순하면서 유려하게 바뀐 탓이다. 특히 자동차의 눈매라 할 수 있는 헤드램프 디자인이 여타 슈퍼카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LED 장식이 차의 너비 표시를 하는 차폭등과 방향지시등 역할을 하면서도 보다 세련된 인상을 풍긴다.
옆과 뒤는 크게 달라진 게 없다. 공기역학을 위한 굴곡은 그대로 유지됐다. 고르게 발달한 근육이 인상적인 수영 선수의 몸매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냥 바라만 봐도 잘 달릴 것 같은 모양이다. 이런 경쾌한 느낌은 휠에서도 전해진다. 바퀴살이 12개인 경량 16인치 휠 덕분이다.
그리고 구형에선 엔진룸을 열려면 열쇠가 필요했지만 신형은 운전석 뒤편에 있는 레버를 잡아 당기면 된다. 로터스 마니아라면 놀랄 만한 부분이다.
이런 멋진 스포츠카 외모에 끌려 화려한 인테리어를 기대했다면 실망이 될 수도 있다. 내부는 그야말로 "경주차" 본연의 모습에 가깝기 때문. 에어컨과 카오디오가 있는 것조차 신기할 정도다. 경량화를 위해 불필요한 것을 모두 제거하고, 운전에만 집중할 수 있는 구조다. 수납공간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았다. 보통은 차에 올라 탄다는 표현을 쓰지만 엘리스는 약간 과장된 표현으로 "차에 몸을 구겨 넣는다"는 게 어울린다. 시트를 뒤로 최대한 이동시킨 뒤 타고 내려야 조금이나마 수월하다. 시트는 레이싱 버킷 시트다. 앉으면 바구니처럼 생긴 딱딱한 시트에 몸이 밀착된다. 편안히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일반 승용차와 다른 점이다. 그러나 이런 다양한 불편함은 주행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사라진다.
▲주행 & 승차감
키를 꽂아 전원을 켜고 운전석 왼편에 있는 버튼을 눌러 시동을 걸었다. 엘리스는 1,598cc의 자연흡기방식 엔진을 탑재해 최고출력 140마력, 최대토크 16.0kg.m을 낸다. 여기에 6단 수동변속기가 접목돼 연료효율은 ℓ당 15.9km나 된다. 스포츠카로선 굉장한 연비가 아닐 수 없다. 876kg에 불과한 차체 경량화와 엔진 다운사이징으로 이뤄낸 성과다.
엘리스 기본형은 배기량이 적은 데다 슈퍼차저나 터보차저 등 과급기를 탑재하지 않아 순간적인 펀치력은 부족하다. 하지만 탄력 받으면 거침없이 달려나간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시간이 6.5초에 불과한 점이 이를 입증한다.
최고시속은 205km. 실제 가속 때는 시속 180km까지 무난하다. 꾸준히 가속된다. 그리고 주행시 RPM(분당 엔진 회전수)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다는 건 매우 큰 장점이다. 기어비도 차의 특성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게 세팅돼 있다. 7000rpm에 가까워지면 경고등이 들어오며 변속 타이밍을 알려준다.
특히 핸들링은 코너링 머신이라는 별명에 어울리는 날렵함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엔진만 보면 국산 준중형급 차종과 차이가 없지만 실제 주행감각은 천지차이다. 본연의 레이싱DNA를 지녔기 때문이다. 차가 가벼워 고속주행이나 거친 와인딩에서 튕겨져 나가리라 생각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공기 흐름을 고려한 역학적 설계(에어로다이내믹)"를 통해 주행성능을 극대화 했기에 차가 노면에 달라붙는다. 비대칭 더블위시본 방식의 서스펜션 적용도 안정적 코너링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다.
바닥에 착 달라붙기에 코너링시 발생하는 횡-가속도는 몸으로 견뎌내야 한다. 또한 손가락으로 돌릴 수 있는 파워스티어링 휠은 로터스에게 사치여서 엘리스도 예외는 아니다. 운동하듯 스티어링 휠을 돌려야 한다. 여기에 수동변속기도 함께 조작해야 한다. 운전하는 수준을 넘어 운전 자체가 하나의 운동(sport)에 가깝다.
스포츠카는 "소리"도 중요하다. 일반적인 주행 상황에선 노면 소음, 풍절음 등이 휘몰아쳐 결코 조용하지 않다. 그러나 엔진 회전수를 높이며 스포츠 드라이빙을 즐기는 순간 불만은 사라진다. 4000rpm 이상에서 엔진 사운드가 확 바뀐다. 속도감이 더욱 배가되며 흥분이 극에 달한다.
브레이크는 고성능 스포츠카에서 종종 사용하는 세라믹은 아니다. 차체가 워낙 가벼운 데다 최고시속 한계점이 높은 편이 아니어서 일반 스포츠 브레이크로도 충분했다는 게 로터스의 설명이다. 하지만 제동 시 문제될 것은 없다. 브렘보 브레이크는 고속에서도 순식간에 차를 멈춰준다. 앞바퀴 2피스톤 AP레이싱 캘리퍼와 타공 디스크, 뒤는 1피스톤이다. 서스펜션은 빌슈타인 댐퍼와 아이바흐 스프링을 조합했다. 이상적인 결합으로 판단된다.
▲총평
아무에게나 운전을 허락치 않겠다는 고집이 무척 강한 차다. 복장도 운동하러 가는 것처럼 편하게 입는 게 좋다. 물론 레이싱 슈즈와 장갑까지 갖춘다면 더욱 세밀한 컨트롤이 가능해진다. 얼마나 준비를 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성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동안 로터스가 부담스러운 마니아들에게 엘리스는 엔트리급 로터스로 매력이 충분하다. 다루기 쉬워졌고,클러치 페달 답력도 구형 대비 가벼워졌다. 과급기가 없어 몸에 가해지는 부담도 조금 줄었다. 여기에 ℓ당 15km 이상의 연료효율은 또 하나의 장점이다. 한 걸음씩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서려는 노력의 결과가 바로 로터스 엘리스다.
박찬규 기자 star@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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