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밑 추위 훈훈히 녹이는 명가의 가르침

입력 2011년12월23일 0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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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최씨가(家) 


 해마다 이 맘 때 들려오는 훈훈한 미담은 매서운 겨울추위도 잊게 한다. 올해도 이름을 알리지 않은 90대 노부부가 구세군 자선남비에 2억 원의 기부금을 넣고 사라졌는가하면, 전주의 "얼굴없는 천사"는 동전과 지폐를 포함한 거액의 성금박스를 12년째 주민센터로 보내고 있다. 가진 자들이 더 갖지 못해 이전투구 놀음을 벌이는 동안 이렇듯 우리의 보통사람들은 소리없는 선행을 베풀고 있다. 


 방학을 맞은 아이들에게 나눔과 기부에 대한 얘기를 해주고 싶다면 "한국판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경주 최부잣집을 찾아가보면 어떨까. 12대 400년간 만석꾼을 배출한 경주 최씨 가문이 보여준 진정한 기부의 실천은 우리 아이들에게 큰 가르침을 줄 것이다. 


 최부잣집은 경주시 교동 69번지에 자리하고 있다. 뒤쪽으로는 내물왕 무덤을 비롯한 신라 김씨의 전설이 깃들어 있는 계림이 있고, 집 바로 오른쪽엔 경주향교가 있다. 1700년경에 건립된 최부잣집은 원래는 99칸에 이르는 대저택이었으나 현재는 사랑채와 안채, 문간채와 큰 광채만 남아 있다. 


 만석꾼의 집이라 하면 저택의 규모가 크거나 화려함을 기대하겠지만 최부잣집은 일반적인 영남의 양반가 모습을 하고 있다. 손님이 거처했던 사랑채나, 안주인이 살았던 살림집도 소박한 모습이다. 그 보다 눈길을 끄는 건 마당 한쪽에 위치한 뒤주의 모습이다. 곡식을 보관한 곳간창고인 뒤주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돼 있는데 쌀 800석을 보관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집이 최부잣집이라 불리는 이유를 짐작케 하는 창고지만 최부잣집의 명성은 단순히 부의 규모 때문만은 아니다. 


 최부잣집은 "재물은 똥거름과 같아서 한 곳에 모아두면 악취가 나서 견딜 수가 없고 골고루 흩뿌리면 거름이 되는 법이다"라는 가르침을 바탕으로 "육훈"과 "육연"을 가슴에 새겨 베푸는 삶을 실천했다. 


 최부잣집 가훈은 첫째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 벼슬을 하지 말라. 이는 높은 벼슬에 올랐다가 정쟁에 휘말리면 집안이 화를 당할 수 있음을 우려해서다. 둘째 재산은 1년에 1만석(5,000가마니) 이상을 모으지 말라. 지나친 욕심은 화를 부르기 마련이고, 1만석 이상의 재산은 이웃에 돌려 사회에 환원했다. 셋째 나그네를 후하게 대접하라. 누가 와도 푸근한 마음을 갖게 한 후 보냈다. 넷째 흉년에 남의 논, 밭을 매입하지 말라. 흉년에 먹을 게 없어 남들이 싼 값에 내놓은 논밭을 사서 그들을 원통케 해서는 안된다. 다섯째 가문의 며느리들이 시집오면 3년동안 무명옷을 입혀라. 내가 어려움을 알아야 다른 사람의 고통을 헤아릴 수 있다. 여섯째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특히 흉년에는 양식을 풀어라. 


 400년을 이은 만석꾼 최부잣집의 명성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나눔과 베품, 상생의 삶을 실천한 진정한 부자였다. 그런데 작금의 우리 현실은 어떠한가. 말로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운운하는 배부른 자들의 여러 행태는 역겹기 그지없다. 경주 최부잣집의 얘기가 우리에겐 이제 전설로 남게 되는 걸까. 우리 시대는 언제쯤 진정한 부자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한파가 몰아치는 세밑 경주 최부잣집으로의 나들이는 여러 생각에 잠기게 한다.


 *맛집
 최부잣집 앞에는 경주의 최고 한정식 식당으로 손꼽히는 "요석궁"(054-772-3347)이 있다. 요석궁은 신라시대 요석공주가 살던 궁터로, 최부자가 터를 잡아 집을 지은 곳이다. 당시 최부잣집을 찾았던 손님들에 의해 최부잣집의 전통 가정음식이 알려지게 됐고, 지금은 각국 대사와 전직 대통령, 각계 유명인사들이 찾을 만큼 이름난 음식점으로 자리잡았다. 반드시 예약해야만 이용할 수 있다.
 
 안압지 인근 교동쌈밥(054-773-3322)은 쌈 한정식으로 유명하다. 곤달비비빔밥, 육구촌육개장 등도 선보인다.


이준애 (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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