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은 절대 안되지만 술을 마셔야 움직이는 자동차들이 있다. "알콜연료를 유연하게(Flexible)하게 사용할 수 있는 자동차(Flexible Fuel Vehicle)", 이른바 술 취한 차들이다. 그것도 인간의 건강을 위해 화학주가 아닌 식물에서 추출되는 바이오에탄올만 먹는데, 두말 할 것 없이 친환경적이다.
이런 차종이 속속 등장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자동차 연료시장 내 한정된 자원인 화석연료 의존도를 탈피하고, 탄소배출량을 줄여 오존현상을 늦추기 위해서다. 게다가 식물에서 추출되는 바이오에탄올은 탄소동화작용으로 전체 탄소배출량이 중립적이고, 농업경작을 통해 생산할 수 있어 지속가능성이 높다는 장점이 있다.
플렉시자동차(FFV: Fexible Fuel Vehicle)는 우리가 즐겨 마시는 술의 기본 원료인 에탄올이나 알코올 램프 연료로 사용되는 메탄올을 자동차 연료로 사용하자는 프로젝트로 시작됐다. 이렇게 알콜을 연료로 사용하자는 움직임은 70년대 두 차례 유류파동을 겪고 난 뒤인 8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폭스바겐과 같은 메이커들이 멀티퓨얼 비히클(MFV, Multi Fuel Vehicle)"이란 이름으로 시작해 앞장서 개발을 주도했지만 당시 양산에까지 이르진 못했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고, 초기 멀티(MFV)는 "플렉시(FFV)"로 진화하면서 상용화되기에 이르렀다. 이미 80년대 중반부터 브라질은 사탕수수에서 추출한 바이오에탄올을 자동차 연료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90년대 중반 이후 미국과 유럽 내 스웨덴, 체코 등도 바이오에탄올이 85% 섞인 E85를 자동차의 대체연료로 사용해 오고 있다.
특히 미국은 90년대 중반부터 휘발유와 알콜을 섞은 E10을 "가소올(Gasohol)"이라는 신조어로 부르며 널리 보급해 왔다. 현재는 약 600만대 이상의 플렉시자동차들이 운행중이며, 미국 메이커들은 올해부터 미국에서 생산되는 자동차 중 적어도 50%는 플렉시(FFV)로 제공하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미국 환경청(EPA)이 2012년을 기준으로 셀룰로오스 재생가능 바이오연료 보급률을 정한 것도 대체에너지로서 바이오매스로부터 얻는 에너지인 "BTL(Biomass to Liquid)"과 더불어 알콜 시장이 무섭게 성장할 것으로 전망됐기 때문이다.
BTL은 메르세데스 벤츠의 장기 에너지 전략 중 바이오매스로부터 에너지를 얻는 제 3단계에 속하는 바이오매스 클린에너지 전술 중 2단계에 속하는 명칭이다. 거시적으로 이산화탄소 배출과 생성이 완벽하게 제로가 된다. 말하자면 플렉시 차종은 이산화탄소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전략이자 전술적인 무기가 되는 셈이다.
독일에서 플렉시 차종은 지금까지의 틈새시장에서 벗어나 도약을 준비 중이다. 르노와 볼보, 포드, 사브, 오펠, 벤틀리, 푸조, 다시아 등이 플렉스 차종을 이미 양산, 판매하는 중이고, 곧 등장할 메르세데스 벤츠의 디즈오토 엔진 제품과 아담 오펠사가 준비중인 직렬형 하이브리드, 그리고 랜지 엑스텐더형 전기차 "암페라"도 휘발유대신 바이오알콜을 연료로 선택했다.
당연히 바이오연료 공급망도 늘어나고 있다. 2011년 초부터 독일 내 모든 주유소에서 일제히 휘발유에 바이오에탄올 10%를 섞은 E10을 판매하고 있다. 한때 바이오에탄올 사용에 따른 엔진 문제로 소동이 있었지만 현재는 시장에 잘 적응하는 중이다.
하지만 바이오에탄올을 85% 섞은 E85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연료로 사용하려면 기존 휘발유엔진을 약간 개조해야 하기 때문이다. 연료탱크, 연료펌프, 분사노즐, 밸브 등 연료순환계통 기기들을 알콜에 견디는 재질로 바꾸어야 하고, 엔진오일과 필터도 전용으로 사용해야 한다. 특수 알콜센서를 장착해 연료 내 알콜 비율을 탐지, 연료분사량과 점화시기 등을 알아서 정해주는 프로그램의 ECU도 필요하다.
알콜센서는 지멘스와 벤츠, 폭스바겐이 협력해 개발한 센서로, 연료탱크 내 연료의 알코올 비율과 온도, 점도 및 전도성 등을 감지해서 ECU로 보내면 ECU에서는 가장 적합한 연료의 분사량과 점화시기 등을 결정한다. 이 센서의 개발로 멀티플 자동차(MFV)가 플렉시블 자동차(FFV)로 진화하면서 비로소 상용화 될 수 있었다. 초창기 멀티플(MFV)과 플렉시플(FFV)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이 센서의 개발로 연료속 알콜비율에 관계없이 엔진이 항상 최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독일 내에는 약 350여개 주유소에서 바이오에탄올 E85를 공급하고 있다. 물론 그 수는 계속 증가하는 중이며, 에탄올 함량비율은 계절에 따라 가변적으로 공급되고 있다. 즉, 계절에 따라 시동이 어려운 겨울철에는 70%의 에탄올을 공급하고 여름에는 86% 에탄올을 공급한다. 연료속 알콜성분 함량을 정확히 감지하는 센서의 개발로 지역마다 혹은 국가별로 다양한 에탄올 비율도 플렉시 엔진에선 문제가 없다.
무엇보다 탄소배출량이 적다는 점은 알콜연료의 가장 큰 장점이다. 바이오에탄올 E85를 연료로 사용하는 플렉시(FFV) 제품 아우디 A4 2.0 TFSI 플렉시 퓨얼로 연간 1만㎞ 주행시 약 875㎏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절약할 수 있다. 따라서 이산화탄소 배출량에 따라 세금이 부과되는 탄소배출권거래 전쟁에서 승패를 결정지을 미래의 자동차 대체 연료로 각광받는 것이다. 현 시대에 사는 우리가 에탄올을 먹고 만취해 흥청댈 지, 메탄올을 들고 알라딘의 마술램프에 미래 시장의 불을 환하게 켤 것인지 자못 심각하게 가늠해 보아야 할지도 모른다.
베를린=이경섭 자동차 칼럼니스트 kyungsuplee@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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