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 유적지를 찾는 다양한 모습들

입력 2012년02월03일 0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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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❷ 앙코르유적지 

 대부분의 관광객이 씨엠립을 베이스캠프 삼아 앙코르유적지를 돌아보게 되는데, 일정에 따라 다양한 코스를 잡을 수 있다. 일찍이 아놀드 토인비같은 사학자는 "일생동안 이 곳에 머물며 앙코르유적의 아름다움에 빠지고 싶다"고 했지만, 짬을 내서 찾아온 여행객 입장에서는 주어진 시간 안에 더 많은 것을 보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관광객들은 앙코르유적지를 대표하는 앙코르와트를 비롯해 타 프롬, 앙코르 톰과 바이욘 등 하이라이트 코스를 찾는다. 좀더 여유있는 일정이라면 앙코르 왕조의 원조격인 롤루오스 유적군을 비롯해 교외 유적군까지 돌아보는 코스를 잡는다.


 그런데 가만 보면 사람들의 여행모습에서 대충 "아하 이 사람은 어떤 코스를 다니고 있는 중이구나" 하는 걸 쉬 알 수 있다. 하이라이트코스에는 우리나라 여행객을 포함해 주로 동양계 단체관광객이 많다. 이들은 대부분 셔틀버스나 관광버스로 이동하며, 가이드를 중심으로 무리지어 움직인다. 사진을 찍는 장소도 정해져 있고, 심지어는 순서를 기다렸다 앞사람이 찍은 장소에서 똑같은 "치~즈"에, 똑같은 "브이자"를 그리며 인증샷 찍기에 바쁘다.


 반면, 서양사람들의 여행모습은 어디 묶인 데 없이 자유롭고 분방하다. 무리지어 다니기보다 혼자 배낭을 메고 크고 작은 유적지를 찾아다닌다. 셔터를 누르기보다 찬찬히 주위를 둘러보며 심취하거나 그 속에 자신을 내려 놓고 명상하는 모습이 또다른 풍경을 만들어낸다. 에어컨이 가동되는 시원한 차를 마다하고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으며 캄보디아의 태고적 태양을 온몸으로 받는 그들의 모습은 더할 수 없는 자유로움을 느끼게 한다. 


 앙코르유적지가 가까워지면 우거진 열대밀림이 눈 앞 가득 펼쳐진다. 하늘을 가린 그 밀림 속으로 들어서면 앙코르 문명을 꽃피운 저 아득한 시간 속으로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게 된다. 

 메콩강 중류지역에 자리잡았던 진랍국의 자야바르만 2세는 802년 강력한 군사력과 지배력으로 프놈쿨렌산에서 즉위하면서 앙코르 왕조시대의 막을 올린다. 그는 자신을 힌두교의 신 시바와 합체된 존재(王卽神)라고 내세웠는데, 이러한 종교적 배경이 앙코르 왕권의 기반이 됐다. 앙코르 톰에서 남동쪽으로 14km 떨어진 하리하라라야(롤루오스 유적군)에 처음 정했던 수도는 900년경 서쪽으로 20km 떨어진 앙코르로 옮긴다.


 이후 왕위계승을 둘러싼 내분으로 흔들렸던 왕조는 12세기초 수리야바르만 2세가 왕국을 통일하면서 앙코르왕조의 전성기를 구축한다. 그는 크메르 문명의 상징인 앙코르와트를 건설하고 눈부신 번영을 이루지만 오랜 전쟁과 대사원의 무리한 건립으로 참파(베트남)군의 공격을 받게 된다.


 그 후 자야바르만 7세가 참파군을 물리치고 대승불교를 국교로 삼아 바욘사원과 앙코르 톰을 건설한다. 그는 우리나라 광개토대왕에 비유되기도 하는데, 인도차이나반도 전역을 지배하는 대제국을 구축한다. 이 때 크메르제국의 영광은 최고조에 달했고, 이 무렵 수도 앙코르는 인구 100만명이 넘게 사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였다고 한다.


 그러나 13세기 이후 크메르제국은 왕실의 내분과 반복되는 씨암(지금의 태국)과의 전쟁, 300년간 계속된 대규모 건축공사로 인해 결국 멸망하고 만다. 이후 크메르제국은 역사 속에서 사라지고, 앙코르의 화려했던 그 문명도 존재조차 망각되다시피 했다.


 400여년간 밀림 속에서 파묻혀 있던 앙코르 문명은 19세기 후반 프랑스인 지리학자 앙리 무오에 의해 세상에 그 존재를 알리게 된다. 세상사람들, 특히 동양보다 서양문화가 우월하다 자부하고 있던 서양사람들은 앙코르 유적지를 마주하고 경이로움과 감탄을 감추지 못했다. 서구의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과 비교해도 빠지지 않는 장엄하고도 아름다운 동양의 고대문명에 머리를 숙였다.
 
 그 불가사의함을 보기 위한 발길이 지금 이 순간도 끊이질 않고 앙코르유적지로 향하고 있다.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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