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본 순간 입이 떡 벌어졌다. 크기에 압도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인피니티 QX의 첫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진짜 이 차를 운전할 수 있을까"라는 막연한 불안감도 들었다. 그만큼 존재감은 확실했다. 한편으로는 미국 영화에 나오는 몬스터급 자동차들이 생각났다. 그렇다고 그들처럼 무식하게 크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인피니티의 상징과도 같은 유선형의 몸매 때문이다. 공기가 흘러가는 듯한 유려한 곡선에선 오히려 고급스러움이 묻어난다. 인피니티의 대형 SUV QX56을 시승했다.
▲스타일
라디에이터 그릴은 인피니티 패밀리 룩인 모래시계 형태의 그릴이 들어갔다. 더블 아치형 프런트 그릴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다른 차종과 비교를 거부하는 크기지만 누구라도 인피니티의 일원임을 알 수 있게 하는 증거다. 양옆으로 독수리 부리 모양의 헤드램프가 자리한다. 모든 것이 큼직큼직한 QX에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느껴진다. 그러나 기능상의 문제점은 없다. 범퍼의 에어 인테이크도 고성능 브랜드임을 잊지 않게 하는 요소다. 다만 범퍼 양쪽의 작은 안개등은 큰 차에 어울리지 않은 귀여움이 엿보인다.
옆면을 돌아보니 22인치에 이르는 대형 휠이 눈에 들어온다. 번쩍 크롬 도금 휠은 미국 힙합 스타의 아우라가 뿜어져 나온다. 인피니티답게 롱노우즈, 숏데크의 비율이 돋보이는데, 물론 스포츠카에서 볼 수 있는 극단적인 형태는 아니지만 초대형 SUV로는 이례적이라는 판단이다. 전면 윈드실드에서 C필러까지 최대한 검은색을 사용해 일체화 한 것이 눈에 띈다. 위압적인 크기를 가지고 있지만 최대한 스포티해 보이는 효과를 내기 위해서다. 리어 스포일러도 그런 인상에 일조하고 있다.
후면도 압도적이다. 뒤 따라오는 차들이 위협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아래로 내려가면서 폭이 넓어지는 구조다. 후면 윈드 실드 부분은 최하단에 비해 좁아 조금 답답하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비율의 문제일 뿐 실제로 작은 것은 아니다. 헤드램프와 비슷한 디자인의 LED 리어램프와 더블 아치형 크롬 장식이 들어갔다.
키를 주머니에 넣어 두기만 해도 차에 근접하면 웰컴 라이트가 켜진다. 따로 조작을 하지 않고 손잡이를 당기는 것만으로도 문이 쉽게 열린다. 다만 크기가 크기인 만큼 문을 여는 일은 쉽지 않다. 무거운 편이다. 운전석도 조금 높다. 한 번에 올라서기 힘들어 사이드 발판이 준비됐다. 같은 초대형 SUV인 에스컬레이드처럼 자동으로 나오고 들어가는 것은 아니지만 평소 잘 안보이게 디자인돼 전체 흐름을 망치진 않는다.
운전석에 앉아보니 신세계가 열린다. 순간 주변의 차들이 모두 난쟁이가 된 것처럼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QX의 높이는 1,925mm에 이른다. 모든 차의 위에 군림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셈이다. 인피니티 전통에 따라 보닛은 좌우 둥그런 곡선을 그리며 솟아 올라 있다. 실내에서 보고 있자니 구름이 연상된다. 개인 제트기 실내를 염두에 둔 디자인이라고 하니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다. 외장색이 흰색이라 더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실내는 매우 고급스럽다. 장인이 한 땀 한 땀 뜬 최고급 가죽으로 센터페시어와 대쉬보드, 도어 트림 등을 감쌌다. 오늘날 프리미엄을 표방하는 메이커라면 기본으로 갖추는 요소 중 하나다. 센터페시어에 들어간 우드 트림은 과하지 않다. 독특한 문양이 들어가 원목의 느낌이 나지 않아 오히려 고급스럽다.
공간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큰 차체 덕분이다. 거주성 면에서 불편이 생기지 않는다. 시트를 3열 구성이다. 탑승인원이 많다면 맨 뒤의 시트까지 젖혀 좌석으로 사용하면 되고 평소에는 접어 트렁크로 사용한다. 2열 시트는 센터페시어의 스위치를 이용해 자동으로 접을 수 있다. 모두 접으면 적재공간을 크게 차지하는 화물을 싣기에도 편리하다.
▲성능
QX에는 최대 405마력, 최고 57.1㎏·m의 토크를 내는 5.6ℓ VK56VD 엔진이 장착됐다. 여기에 가변식 흡기 밸브와 직분사 시스템이 조합돼 효율을 높였다. 큰 차, 고 배기량의 차라도 효율을 중시하는 최근의 추세를 적극 반영한 것이다. 구동방식은 인피니티 독자 기술의 인텔리전트 4WD 시스템이 장착됐다. 전자식으로 제어돼 기계식보다 신속 정확하게 구동력을 배분한다. 구동 모드는 센터 콘솔의 다이얼을 통해 조작할 수 있다.
시동을 걸어보니 엔진음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차·흡음에 아낌없는 투자가 가능한 프리미엄 브랜드인 덕분인 것도 있고, 크기가 커서 소음이 잘 전달되지 않는 구조이기도 하다. 가속 페달을 밟아 차를 움직였다.
아무리 커도 고성능을 추구하는 인피니티는 인피니티다. 브랜드의 정체성과도 같은 동력 성능을 QX에서도 맛 볼 수 있다. 중량 부담을 감안했지만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 가속 페달을 밟자마자 즉각적인 가속이 이뤄지는 것은 물론이고 차고가 높아도 꽤 안정적이다.
무게가 3톤에 이르지만 가속 내내 힘이 더딘 느낌은 받을 수 없다. 속도는 순식간에 80㎞/h를 넘어 120㎞/h에 이르렀다. 반면 크기 때문에 속도감은 덜 느껴지는 편이다. 내비게이션의 과속 경고가 없었다면 속도를 더 내기 십상이다. 하지만 140㎞/h 이상에서는 슬슬 불안감이 느껴오기 시작한다. 스스로 차를 제어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불안감이다. 익숙한 운전자들은 다를 지도 모르겠지만 고작 3일간의 시승으로 이 차를 완전히 제어하기란 쉽지 않다.
승차감은 세단과 조금 다르다. 크기에 관계없이 스포츠 주행을 추구하는 인피니티의 세단형 차들은 단단한 승차감인 반면, QX는 탑승자를 부드럽게 받치는 것이 특징이다. 아무래도 초대형 SUV의 경우 퍼포먼스보다 실내 거주성이 우선시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QX의 주력 판매 지역인 미국과 중국의 도로 사정은 유럽이나 한국, 일본 등에 비해 좋지 않기 때문에 부드러운 승차감이 우선적이다.
차가 커 주차할 때는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QX에는 어라운드 뷰카메라가 달려 있다. 좌우앞뒤를 모두 모니터링 할 수 있어 주차할 때 매우 편리하다. 실제로 이를 이용해 일렬 주차를 시도해 봤는데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들어갈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공간에 주차가 가능할 정도로 유용했다.
▲총평
현재 QX의 경쟁 상대는 캐딜락 에스컬레이드지만 두 차의 판매량은 30여대 차이로 에스컬레이드가 앞선다. QX가 후발주자여서 충분할 정도로 높은 인지도를 가진 에스컬레이드와의 정면승부는 쉽지 않다. 그렇다면 에스컬레이드와의 경쟁이 아니라 소위 "연예인 차"라고 불리는 비즈니스 밴 시장을 공략해 보는 것은 어떨까? QX의 경우 거주성은 물론이고 엔진의 힘이나 승차감, 연비 등에서 밴에 비해 부족한 부분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조금 더 고급스러워 보인다는 측면에서 남에게 보이는 게 중요한 연예인들에게 충분히 어필할 만한 상품성을 지니고 있다. 판매 가격도 비즈니스 밴들이 약 1억원을 호가하고 있어 1억2,600만원의 QX와 큰 차이가 없다. 판매 증진을 위해서는 틈새시장이라도 적극 노려야 한다는 뜻이다.
박진우 기자 kuhiro@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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