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나무뿌리에 휘감긴 고대문명

입력 2012년02월24일 0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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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타프롬


 옛 노래 <황성옛터>가 그렇게 애조 띤 가사와 가락인 줄 예전에 미처 몰랐다. 그것을 안 것도 낯선 땅 캄보디아에서였다. 앙코르 유적지의 하이라이트라 일컫는 앙코르와트를 돌아본 직후라 이동 중인 버스 안은 파장을 앞둔 장터 분위기처럼 어수선했다. 더러는 부지런히 발품을 팔며 돌아다닌 뒤끝이라 지그시 눈을 감고 피곤을 푸는 이도 있었다. 이런 분위기를 슬쩍 살펴보던 가이드가 마이크를 잡고 운을 뗐다.    


 "여러분, 졸리나요? 안 졸리나요?"

 여기저기서 "졸려요" "안 졸려요" 하는 대답들이 나오자 씨익 웃으며 말을 잇는 가이드.  

 "네, 지금 가는 곳이 바로 그 안젤리나 졸리의 영화 <툼레이더>의 촬영지로 유명한 곳입니다."


 그랬다. 타프롬(Ta Prohm)에 대한 설명은 흔히들 이렇게 할리우드 여배우가 주연한 흥행영화를 앞세워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곳에 가면 그 여배우의 관능적인 입술 따윈 눈곱만큼도  떠오르지 않는다. 거대한 나무뿌리들이 사원을 휘감은 충격적인 장면 앞에선 말문을 잃게 되고, 무너지고 허물어진 폐허 앞에선 다만 침묵할 뿐이다. 긴 침묵의 끝자락에 저도 몰래  흥얼거려지는 가락 하나가 있으니, 그 노래가 <황성옛터>였다. 


 "황성 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폐허에 서린 회포를 말하여 주노라..."는 가사 하나하나가 어쩌면 그리도 절묘하게 풍경과 어우러지는지. 2절로 접어들면 "성은 허물어져 빈터인데 방초만 푸르러 세상이 허무한 것을 말하여 주노라"며 마치 이곳을 둘러보며 쓴 노랫말인양 심금을 울린다. 이런 정서는 앙코르톰까지 쭉 이어진다. 


 타프롬은 자야바르만 7세가 어머니의 명복을 빌기 위해 12세기 말 세운 불교사원이다. 앙코르와트보다 뒤늦게 만들어진 사원임에도 불구하고 앙코르유적지 중 훼손이 가장 심하다. 크메르왕조가 멸망하고 완전히 방치되었던 사원은 발견당시 열대밀림에 의해 철저히 침식된 모습이었다고 한다. 거대한 나무뿌리들이 마치 낙지발처럼 사원을 휘감은 채 자라고 있었다. 그 모습이 실로 기묘하여 프랑스 극동학교의 고고학자들이 복구를 하지 않은 채 일부러 숲에 침범된 모습을 그대로 남겨놓았다고 한다. 


 사원을 휘감고 있는 나무는 "스펑나무"라 불리는 벵골보리수로, 새들이 그 씨앗을 물어와 떨어뜨린 것이 수백 년 세월동안 거목으로 성장해 유적의 바깥쪽은 물론 내부까지 침식해 들어가게 된 것이다. 이는 유적을 파괴하는 원인이 되지만 역설적으로 그 나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유적을 지탱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래서 보기에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아슬아슬한 상황이지만 나무뿌리를 자를 수도 없는 상황이라 현재는 약물을 나무에 주입해 성장을 억제시키고 있다고 한다. 이런 모습으로 인해 관광객들이 타프롬으로 몰려들고 있으니 이 또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허물어진 지금 모습에서는 타프롬의 규모가 짐작되지 않지만, 당시 이 사원은 동서 1km, 남북 600m의 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 안에 3개의 회랑을 배치하여 건축된 거대한 사원이었다고 한다. 당시 사원 안에 있던 승원에는 5천여 명의 승려와 6백여 명의 무희가 살았으며, 이 사원을 관리하기 위해 수만 명의 성직자와 관리자가 상주할 정도로 거대한 위용을 자랑했다.
하지만 옛 영화는 이제 찾아볼 수 없고 황폐한 흔적들만이 사원 안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 이끼 낀 벽면에 새겨진 춤추는 압사라들, 허물어진 석재에 정교하게 조각된 데바타가 오래도록 눈에 밟힌다. 거듭된 증축으로 인해 미로처럼 복잡하게 얽힌 사원 안으로 걸음을 옮겨놓으며 다시 흥얼거린다. "아 가엾다 이내 몸은 그 무엇 찾으려고 끝없는 꿈의 거리를 헤매어 왔노라"


이준애 (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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