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피니티가 약속대로 FX에 3.0ℓ 디젤엔진을 탑재한 FX30d를 한국에 출시했다. FX 특유의 공격적인 디자인에 디젤의 효율을 입혀 독일차를 겨냥한 셈이다. 실제 FX30d는 BMW x드라이브 30d 및 벤츠 ML300 CDI와 경쟁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파워트레인에서 결코 밀리지 않는 반면 상대적으로 약간 저렴한 가격이 경쟁력이다.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의 3.0ℓ 디젤엔진을 탑재한 인피니티 FX30d를 시승했다.
▲디자인
역시 공격적이다. 사실 FX 디자인은 호불호가 명확히 나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단숨에 시선을 끌어들일 만큼 공격적이기 때문이다. 대형 4선 그릴의 좌우 헤드램프는 앞과 옆을 동시에 노려보는 것 같고, 보닛 좌우의 우뚝 솟은 볼륨은 근육질을 연상시킨다. 얼핏 보면 상어를 보는 느낌이다. BMW를 철저하게 타깃으로 하는 인피니티의 특징이 디자인에 표현돼 있다. 뒷모습은 리어램프에 LED를 더해 개성을 추구했다. 특히 완만하게 아래로 흐르는 지붕라인은 SUV보다 쿠페 이미지를 떠올린다. 공격적인 도심형 쿠페 SUV의 모습을 강조한 흔적이 역력하다.
인테리어는 화려함과 기능성, 두 단어로 요약된다. 계기판과 센터페시어 등은 전반적인 인피니티 패밀리룩을 따르지만 센터페시어는 하이그로시블랙 패널이 일부 사용됐고, 덩치와 달리 날렵하게 설계돼 간결한 이미지를 풍긴다. 상단의 모니터에는 한국형 내비게이션이 적용됐고, 이외 차의 모든 정보를 알 수 있는 엔포테인먼트 시스템이 표시된다.
▲성능 & 승차감
사실 FX30d에서 가장 궁금한 부분 가운데 하나는 성능이다. 르노-닛산 얼라이언스가 개발한 3.0ℓ 디젤 엔진의 조합능력이 FX30d의 경쟁력을 결정짓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3.0ℓ 디젤엔진의 최대출력은 238마력이고, 토크는 56.1㎏.m(1,750-2,500rpm), ℓ당 주행거리는 10.2㎞다. 7단 자동변속기가 조합됐고, 구동방식은 4WD다.
오로지 제조사의 제원표 기준으로 경쟁차종인 BMW x드라이브 30d와 벤츠 ML300 CDI와 비교하면 벤츠보다 낫고, BMW와 어깨를 견주는 수준이다. 특히 최대 토크는 세 차종 가운데 가장 높다. 하지만 최대 토크가 발휘되는 엔진회전영역은 FX30d가 750rpm으로 1,250rpm의 BMW X5 30d보다 폭이 좁은 편이다. 반면 가격은 FX30d가 8,130만원으로 8,990만원의 X5 30d, 9,200만원의 ML300 CDI 대비 가장 낮다. 인피니티로선 비슷한 성능의 차종을 저렴한 가격에 내놓고 승부를 거는 셈이다.
공회전에서 진동소음은 가솔린과 별반 다를 바 없이 조용하다. 차에서 내려 엔진소리를 들으면 디젤임을 알아차릴 수 있지만 실내에선 부담이 없다. 진동과 소음은 속도를 올렸을 때도 그리 크지 않다. 디젤이어서 오히려 소리를 추가 억제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 움직일 때만 가속페달에 진동이 조금 전달될 뿐 시속 30㎞가 넘어서면 디젤임을 거의 느끼지 못하는 수준이다.
가속페달을 밟았을 때 움직이는 반응 속도는 가솔린 대비 조금 떨어진다. 그러나 비슷한 디젤차에 비하면 상당히 빠른 편이다. 역동성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 인피니티의 브랜드 철학을 디젤이라고 제외시킬 수 없었던 셈이다. 순간 지난해 동경모터쇼에 만난 인피니티 총괄 앤디 팔머 부사장의 얘기가 떠올랐다. 그는 인피니티 FX30d를 유럽 디젤로 설명하면서 "고성능 소비자 만족"을 언급한 바 있다. 이를 통해 한국 소비자들이 고효율과 고성능을 동시에 경험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일단 성능 면에서 앤디 팔머 부사장의 말은 신뢰할 수 있다. 움직이면 가솔린에 버금갈 만큼 치고 나가는 편치력이 뛰어나다. 흔히 디젤의 순발력이 떨어진다는 생각은 편견으로 여겨도 좋을 만큼 가속하는 맛이 있다. 디젤이어서 인피니티 특유의 고성능이 손해볼 것이라는 생각은 예단일 뿐이다. 순간적인 가속을 시도할 때 오르간 타입 페달 답력도 적당하다. 달리 시간을 측정하지 않았지만 시속 80㎞에서 120㎞까지 추월 가속력도 빠른 편이다.
묵직한 스티어링 휠에 차체는 쉽게 반응한다. 엔진만 디젤로 바뀌었을 뿐 FX 특유의 역동성은 그대로다. 변속레버 또한 감성적으로 접근한 노력이 묻어난다. 개인적으로 인피니티 차종에서 높이 평가하는 부분 가운데 하나다. 일반적으로 레버의 경우 손에 잘 잡히느냐의 그립만 중요하게 여기지만 인피니티는 이외 움직임까지 노련하게 절도감을 담아냈기 때문이다.
브레이크 페달을 밟았을 때 인상적으로 다가온 부분은 제동 자세다. 쏠림이 없다고 단언할 수 없지만 제동거리가 길지 않을 만큼 순간적인 감속이 가능해서다. 역동의 기본 가운데 하나인 제동력이 잘 묻어나오는 대목이다.
90ℓ의 연료가 가득한 상황에서 주행 가능거리는 760㎞로 표시돼 있다. 자동차 전용도로에서 시속 80㎞ 정속주행을 하면 주행가능거리가 800㎞가 넘게 계산된다. 앤디 팔머 부사장이 제시한 이른바 "고효율"이다. FX 가솔린 효율에 부담을 가졌던 사람이라면 환영할 만한 일이다.
승차감은 인피니티가 고집하는 단단함에 맞추어져 있다. 게다가 고성능을 표방한 덕에 지상고도 상당히 낮게 설정돼 있다. 그 결과 SUV지만 무게의 중심이 하체로 집중돼 회전성능이 스포츠세단 못지 않다. 다소 과격한 코너링을 시도하면 타이어 비명소리(?)만 들릴 뿐 SUV라면 쉽게 발생하는 좌우 롤링이 거의 없다. 이런 이유로 고속에서 불규칙한 노면을 만나면 스티어링 휠을 제대로 잡아야 한다. 역동성이 명확히 묻어나오는 대목이다.
▲ 총평
인피니티 FX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디자인을 선호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극도의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다. 또 "인피니티" 브랜드를 높이 평가하는 이가 있다면 반대도 있다. 이처럼 자동차를 바라보고, 평가하는 시각은 모두 제각각이다. 그래서 늘 경쟁 차종과의 비교를 통해 우월, 동등, 또는 열세로 구분하지만 과거와 달리 숫자 비교 가치도 시장에서 더 이상 효용되지 않는 추세다. 숫자 차이를 실감하기 어려워서다. 실제 FX30d의 238마력과 BMW x드라이브 30d의 245마력 차이를 체감할 수 있는 사람은 단언컨대 없다. 둘 모두 밟으면 가속이 잘 되고, 힘에선 부족함이 없다.
스티어링 휠을 끝까지 돌렸을 때 회전수도 중요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스티어링 휠 조작에 따른 응답성이 운동성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차의 성격을 살펴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숫자보다 성격이고, 성격은 감성으로 체험할 뿐 객관화는 불가능하다는 설명도 한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인피니티 FX30d는 "역동적인 도심형 고효율 SUV"라는 성격이 중요해진다. 이 가운데 적어도 "역동적인 SUV"의 성격은 "달리고, 서고, 돌기"에서 유감없이 살려냈다. 그리고 하나 남은 "고효율"은 디젤로 달성했다. 차에 담아낼 수 있는 모든 편의품목과 안전기능도 상품성 강화 측면에서 적용됐다.
앤디 팔머 부사장은 가솔린에서 디젤로 빠르게 변하는 한국 시장에서 FX30d가 주목받을 수 있다고 확신했다. FX에 호감을 갖고 있었지만 ℓ당 7.9㎞와 7.2㎞의 가솔린 3.5ℓ와 5.0ℓ 효율에 부담을 느꼈던 사람에게는 맞는 말이다.
결론적으로 역동적인 고효율 도심형 SUV FX30d의 인상적인 가속력에 기준해 독일 디젤 SUV와의 경쟁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일본 디젤이 아니라 닛산과 연합을 형성한 르노의 심장이 탑재됐다는 점은 FX30d를 유럽형으로 부르는 이유가 될 수 있다. 유럽 디젤 감성에 일본의 섬세함이 더해진 차가 바로 FX30d가 아닐까 한다.
권용주 기자
soo4195@autotimes.co.kr▶ 인피니티, FX 디젤로 BMW X5 겨냥▶ [시승]또 하나의 디젤 SUV, 쉐보레 캡티바 2.0ℓ▶ [시승]프리미엄의 경제성, 재규어 XF 2.2ℓ 디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