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의 자연에 존재하는 생명체의 생노병사에는 비밀이 없다. 그 모든 게 자연에서 발생해 자연으로 돌아가는 거대한 나선형 원환구조를 갖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하지만 유위의 자동차 생노병사는 직선적 시간구조 속에서 스스로 자연에 회귀하지 못하는 재를 남겨 환경을 날로 악화시킨다.
직선적인 자동차 생노병사에 나선형 원환구조적 방식을 도입해 자원과 에너지를 절약해 환경 변화를 최소화하고, 자원경제를 강화하자는 게 바로 폐차되는 자동차의 재활용이다. 여기서 말하는 재활용이란 단순히 폐차된 자동차에서 쓸만한 부품을 떼어내 다시 사용하는 것뿐 아니라 자동차를 체계적으로 해체, 분리해서 얻은 재료를 선순환적 구조에서 반복 사용해 자원과 에너지를 절약하자는 말이다. 재활용은 물론 친환경 녹색산업이다.
자동차 폐차와 재활용에 대한 유럽연합의 새로운 법에 대해 유럽 자동차 산업의 지각변동이 시작됐다. 지각변동으로 인해 떠오를 새로운 산업은 무엇이며 변동은 어떠한 파급효과를 낳을까?
오는 2015년부터 발효되는 유럽 연합의 자동차 재활용법 2005/64/EG에 따르면 유럽연합에서 판매되는 모든 승용차는 자동차 무게 대비 95%의 재활용이 가능해야만 판매할 수 있다. 2015년부터 발효될 예정인 자동차재활용 법은 현재 2002년부터 시행되는 자동차 무게 대비 재활용비율 85%에 비해 무려 10%가 높은 비율이다.
자동차에서 비교적 재활용이 쉬운 금속 부분이 75% 이상인 것을 비춰볼 때 앞으로 줄여야 하는 10%는 대부분 재활용이 어려운 납이나 크롬5 등 중금속류와 섬유, 각종 전자제품, 오일, 냉각수, 에어컨 냉매, 전선, 합성수지 같은 부분이다. 따라서 독성 및 오염물질에 대한 안전한 수거와 처리 그리고 비금속 물질들에 대한 재활용기술과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데 폐차처리와 재활용에 대한 문제는 정부나 재활용 업체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바로 폐차수거 및 재활용에 대한 제조사의 책임 규정이다. 수명이 다한 자동차 즉, 폐차와 더불어 재활용도 자동차 제조업체가 책임지도록 하고 있다. 정부와 자동차산업 그리고 재활용업체들이 협력해야 하는 통합적인 시스템 사업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시스템이란 주변과의 경계가 뚜렷해 일정한 범위에서 시작과 끝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또한 시작과 끝이 어떠한 형태로든 반드시 연결돼 있어야만 한다.
그러자면 자동차를 만드는 초기 단계부터 끝자락까지 전 과정을 염두에 두고 시작해야 제대로 재활용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리싸이클링 컨셉을 자동차 개발초기 디자인부터 시작해야 가능하다는 얘기다. 자동차 내에서 유체가 작동하는 기기들의 해체와 분해를 재활용에 맞추는 설계가 필요하고, 에어백이나 스마트 안전띠 같은 파이로 기술이 접목된 기기들 역시 재활용을 고려한 설계가 필요하다. 끝을 고려한 시작이 필요한 셈이다.
자동차 리사이클링이라는 큰 시스템 안에는 그보다 작은 시스템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기술의 작은 변화가 조그만 시스템을 낳게 되고, 이런 작은 시스템이 모여 전체적으로 큰 덩어리를 형성하게 된다. 이를 통해 자동차 생노병사 전 과정에서 새로운 재활용산업이 탄생한다. 그동안 등한시 돼 왔던 재활용 산업이 이제 새로운 녹색성장 동력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독일의 각 메이커들은 자동차 라이프싸이클 평가(LCA)와 재료 재활용을 통해 반복사용에 관한 막강한 경제적 효과 및 지속가능성에 대해 매우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실제 연구개발과 실현에도 골몰해 2011년 기준으로 폐차 재활용 비율은 93%에 이른다. 유럽국 가운데 가장 높다. 이런 추세라면 2015년부터 발효될 EU 법안 95% 재활용 비율 달성은 문제가 없다. 하지만 고민은 수입차들이다. 유럽산 자동차는 이미 유럽연합 자동차 폐차와 재활용이라는 법안에서 생산된 만큼 어려움이 없지만 유럽 이외 지역에서 생산되는 자동차의 폐차 재활용 대비책은 절실한 상황이다. 폐차 재활용에 대한 적절한 방안이 강구돼 있지 않으면 앞으로 폐차 후처리에 많은 비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자동차 라이프싸이클과 재활용에 대한 대비책이 없는 업체는 생존이 어려울 수 있다. 단순히 인증과 판매, 그리고 폐차 재활용에서만 끝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재활용은 자동차 라이프사이클의 끝자락에서만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라 컨셉과 개발 단계부터 재활용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된다. 또한 부품과 모듈의 설계과정에서 생산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자동차 생노병사 전 과정이 재활용을 고려해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당연히 새로운 업종과 산업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즉, 자동차 라이프싸이클에 걸친 친환경적 생노병사에 적용되는 새로운 산업이 태동되는 셈이다. 결국 우리도 자동차의 친환경적 폐차과정 및 재활용과 관련한 산업이 육성돼야 함은 물론이다. 폐차 과정에서 자동차를 친환경적으로 해체하고 분리할 수 있는 새로운 업종이 필요하다. 그리고 미래의 동력인 전기차나 수소에서 제일 중요한 에너지저장장치, 축전지를 재활용하는 문제도 간과해선 안된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재활용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절실하다. 재활용이 강력한 미래의 녹색산업이 될 수 있다는 생각 말이다.
베를린 이경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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