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의 목적은 다양하다. 독일 프리미엄 메이커 BMW의 광고카피는 독일어로 "프로이데 암 파렌(Freude am Fahren)" 즉, "타는 즐거움"이다. BMW는 화물차나 버스 등 소위 상용차를 만들지 않는다. 타는 데서 즐거움을 추구한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수송만을 목적으로 하는 실용자동차(Nutzfahrzeug)와는 거리가 멀다는 뜻이다. 그래서 BMW는 주행역동성이 뛰어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바퀴로 움직이는 것 가운데 역동성이 가장 뛰어난 건 모터사이클이다. 평면 위 두 점 사이의 최단거리가 바로 직선이듯 모터사이클은 단선적이면서 차와 사람이 속도와 도로의 회전반경에 따라 좌우로 기울어지는 틸팅적인 역동성을 갖는다. 자동차는 두 눈과 손발의 움직임만으로 조종이 가능한 반면 모터사이클은 온몸으로 조종해야 한다.
그렇다면 세 바퀴 자동차의 역동성은 어떨까. 바퀴가 세 개인 차는 운전석 유무에 따라 자동차에도 속하고, 모터사이클에도 속했다. 우리에게 최초 세 바퀴 자동차는 60년대초 당시 기아산업에서 일본 제품을 국내에서 조립한 화물차였고, 개인적인 편견인지 모르지만 이상하게 70년대 세 바퀴 화물차는 재래식 화장실 분뇨수거용으로 많이 활용됐다. 커브길에서 매우 불안정했던 탓에 바이오메탄가스를 온동네에 풍기던 추억이 떠오른다.
오랜동안 정설로 굳어 있던 세 바퀴 자동차의 커브길 주행 불안정을 파괴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물론 이 경우 사건은 대부분 기술의 혁신적인 개발을 뜻한다. 바로 세 바퀴 자동차의 커브 주행성능을 대폭 향상시키는 다이내믹 비클 컨트롤(DVC) 시스템 개발이다. 세 바퀴 자동차의 차체를 속도와 도로의 회전반경에 따라 적절하게 기울여주는 지능형 틸팅 기술력이다. 물론 틸팅 기술에 관한 DVC 시스템은 특허로 등록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실현됐던 최초의 레저용 세 바퀴 자동차 "카르버"의 생산은 아쉽게도 실패했다. 마치 로마노프왕정 말기 서유럽 자유주의 사상에 물든 일단의 청년장교들이 혁신과 개혁을 주장하면서 일으킨 데카브리스트 봉기처럼 말이다. 홀랜드 사람 "안톤 반 덴 블링크"가 고안한 카르버는 네 바퀴 자동차와 두바퀴 모터사이클 세상에서 틈새를 노리고 세 바퀴 트리크(Trike) 세상을 열려던 네덜란드의 데카브리스트다.
트리크의 첫 반응은 뜨거웠다. 그러나 판매가격을 놓고 일대 혼란이 일었다. 카르버를 수제작했던 홀랜드의 카르버엔지니어링은 연간 500대 생산 기준에 초기 판매가격을 3만유로(한화 약 4,400만원)로 정했다. 그러나 경영미숙에 따른 마케팅 실패로 부도가 나고 말았다. 결국 당초 계획인 500대에는 미치지도 못한 채 200대 판매로 생산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유럽에선 트리크를 일반 운전면허증으로 탈 수 있었지만 유럽 이외에선 면허 및 인증과 허가 문제도 걸림돌로 작용했다.
너무 일찍 날아든 트리크 데카브리스트 제비가 얼어죽고, 시간이 흘러 2010년에 진입하면서 주변 환경이 풀리자 본격적인 트리크 제비들이 날아들 조짐이 곳곳에서 보였다. 우선 카르버 마니아들의 열정이 여전히 식지 않았음을 눈치챈 발빠른 독일업체가 카르버 생산을 인계받아 2011년부터 다시 주문제작에 나섰다. 그리고 카르버 제작에 걸림돌이 됐던 DVC 특허는 기한이 해제돼 미국의 페르수 모빌리티로 넘어갔다.
이 회사는 페르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V3에 틸팅 기술을 더욱 개선해 양산을 준비중이다. 교통기관뿐 아니라 레저나 스포츠용으로도 개발하고 있다. 그 와중에 초기 3만유로의 가격은 무려 5만유로 이상으로 치솟았다.
카르버가 자동차와 확연히 구별되는 건 모터사이클이나 비행기처럼 차체에 작용하는 횡력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카르버는 커브길에서 속도와 도로의 반경에 따라 45도까지 차체가 기울어진다. 자동차와 확실히 구분되는 주행성능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차체가 기울어지면 창밖으로 손을 내밀어 손바닥으로 땅을 만지면서 선회할 수 있다. 이 맛은 타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커브길 틸팅으로 모터사이클의 주행력을 느낄 수 있고, 틸팅하는 캐빈 내에서 스티어링 휠을 잡으면 하늘에서 선회하는 항공기의 선회력을 체감할 수 있다. 앞바퀴는 모터사이클, 캐빈과 운전석은 항공기 그리고 뒷차축은 자동차로 조합된 차세대 이동 놀이기구인 셈이다.
카르버는 결국 인간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한쪽으로 고정된 생각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새로운 이동수단의 등장을 만들어낸 셈이다. 틈새시장과 땅 위에서 안전하게 날아보는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트리크의 환생, 기대해 본다.
베를린=이경섭(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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