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연합뉴스) 유철종 특파원 =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대통령 당선자)가 4일 자국 자동차 산업 육성 방안의 하나로 모든 공무원에게 국내산 자동차만 이용하도록 강제하는 특단의 조치를 들고 나왔다. 현재 대부분의 러시아 고위 공무원들은 메르세데스 벤츠, BMW, 아우디 등의 고급 승용차를 관용차나 개인차로 이용하고 있다.
이타르타스 통신 등에 따르면 푸틴 총리는 이날 러시아 남부 사마르주(州)의 자동차 산업도시 "톨랴티"에서 열린 자동차산업 육성 방안 마련을 위한 회의에 참석해 연설하면서 "국내 자동차 산업이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수출 잠재력을 강화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면서 "모든 중앙 및 지방 정부기관과 정부 예산 지원을 받는 기업들은 가장 가까운 시일 내에 단일경제공동체(CES)에서 생산된 자동차 제품만 구매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필요한 제품이 CES 국가들에서 생산되지 않을 경우만 예외로 적용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CES는 러시아,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등 옛 소련권 3개국이 올해부터 상호 관세 장벽을 없애고 자본과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할 목적으로 출범시킨 경제통합체다. 푸틴은 이를 통해 국산 자동차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고 국내자동차 산업 인프라와 기술 수준을 끌어올리겠다는 계산이다.
푸틴은 "이는 상당한 규모의 보장된 주문"이라면서 "관련 규정이 정부구매법에 반영되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 구매가 국내법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러시아가 지난해 가입한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도 어긋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러시아 하원 산업위원회는 현지 언론에 푸틴 총리의 발언이 모든 공무원들이 "라다"나 "볼가" 등 러시아제 승용차만을 이용하라는 의미는 아니라며 러시아 국내에서 조립생산되는 외제 승용차도 허용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러시아에선 BMW, 토요타, 포드, 폴크스바겐, GM 제품 등이 조립생산되고 있다. 폴크스바겐에 속한 아우디 승용차는 모스크바 인근 칼루가주의 폴크스바겐 조립 공장에서 조만간 생산될 예정이다. 따라서 러시아 관리들이 가장 선호하는 메르세데스 벤츠, BMW, 아우디 승용차 가운데 메르세데스만 러시아 현지 생산 능력이 없는 상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벌써부터 푸틴 총리의 이같은 방침이 어느 정도 지속적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에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국내 자동차 산업을 키우려면 무엇보다 국산 자동차의 질적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이 급선무이며 정부의 강제적 조치로 국산차를 이용하도록 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러시아에선 보리스 옐친 대통령 시절인 1990년대 후반 현재 대표적 반정부 인사인 보리스 넴초프가 제1부총리로 재직하면서 공무원들에게 외제차 대신 국산 중형 승용차인 "볼가"를 탈 것을 요구하는 운동을 펼쳤으나 공무원들의 지지를 얻지 못해 실패한 바 있다.
cjyou@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