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타가 올초 신형 캠리를 내놓으며 "103가지 변화"를 내걸었다. 이전 대비 103가지 항목이 새로워졌다는 의미다. 그러나 실제 어느 부분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구체적인 항목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에 따라 오토타임즈는 103가지 변화를 일일이 파악, 변화의 폭을 연재키로 했다. 더불어 일반적인 자동차 기능에 대한 설명까지 포함해 소비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국내 자동차 전문지 사상 최초로 시도되는 이번 연재가 자동차에 대한 소비자들의 시각을 넓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편집자 주>
#3. 차체/안전
31. 높게 설정된 종감속 기어비 6단 자동변속기 자전거를 타 본 사람은 변속기가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 안다. 낮은 기어를 고르면 페달은 바쁘되 바퀴는 느긋하다. 대신 페달이 가볍다. 그래서 오르막을 오를 때 요긴하다. 반대로 평지나 내리막에선 높은 기어를 쓴다. 그러면 같은 횟수로 페달을 저어도 바퀴가 훨씬 빨리 돈다. 그래서 속도 붙여가며 쏜살같이 내빼기 좋다.
자동차 변속기도 비슷한 역할을 한다. 엔진 힘을 필요에 맞게 다듬는다. 낮은 기어로 힘차게 출발하지만 높은 기어로 회전수를 낮춰 연료를 아낀다. 회전수와 토크는 기어의 비율로 바꾼다. 감속비 2.0인 조합은 회전수를 절반으로 떨어뜨린다. 엔진이 축을 두 번 돌릴 때 바퀴는 한 번 돈다. 그러면 속도가 느리다. 대신 토크는 두 배가 된다.
종감속비는 기어비의 "종결자"다. 변속기를 거친 힘을 구동 바퀴로 전달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다듬는 비율이다. 뒷바퀴 굴림 차에선 엔진에서 뻗어 나온 드라이브 샤프트의 회전력을 직각으로 꺾어 바퀴에 잇는 역할도 겸한다. 종감속비는 엔진 추진축과 바퀴 구동축 기어의 비율로 표시한다. 종감속비는 자동차의 무게, 가속성능, 등판능력을 감안해 정한다.
종감속비를 키우면 고속성능이 떨어진다. 대신 가속과 등판에 유리하다. 토요타 신형 캠리는 종감속 기어비를 높였다. 초고속의 세계를 넘나드는 스포츠카가 아닌 까닭이다. 최고속도에 미련을 버린 대신 얻은 게 더 많다. 일상 주행에서 가속성능이 뛰어나다. 힘도 좋다. 그래서 사람과 짐 가득 싣고도 헐떡이지 않고 고갯길을 치고 오른다.
한편, 신형 캠리는 6단 자동변속기를 얹는다. 8단 기어 달았다며 으스대는 차도 있다. 하지만 토요타는 개의치 않는다. 캠리의 성능과 성격에 6단이 가장 어울린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직분사 엔진을 얹지 않은 이유도 비슷했다. 헛된 욕심내지 않고 해당 상품에 딱 맞는 패키지로 완성했다. 30년 전통, 9년 연속 북미 베스트셀러의 저력은 이런 데 있다.
32. 우수한 핸들링과 직진 안정성으로 최적화된 현가장치
서스펜션은 차대와 바퀴 사이를 잇는 받침이다. 노면에서 오는 충격을 흡수하는 역할을 한다. 그 결과 차가 보다 안정된 자세를 유지할 수 있다. 서스펜션 뿌리는 마차에서 찾을 수 있다. 화물차에 주로 쓰는 판스프링이 바로 마차에서 유래된 방식이다. 오늘날 서스펜션은 승차감을 살릴 뿐 아니라 차의 몸놀림까지 좌우하는 주인공으로 거듭났다.
자동차가 코너를 돌 때는 바깥쪽이 주저 않는다. 원심력 때문이다. 이른바 "롤링(Rolling)"이다. 정면에서 봤을 때 차가 오른쪽 혹은 왼쪽으로 기운다. 제동이나 가속 때는 앞뒤로도 주저앉는다. 바퀴를 차체와 직접 연결하면 이럴 때 노면을 놓칠 수 있다. 반면 서스펜션이 있으면 걱정 없다. 차체가 다양한 방향에 휘둘려도, 바퀴가 늘 땅바닥과 밀착될 수 있게 돕는다.
서스펜션은 크게 서스펜션 암(arm)과 쇼크 업소버(댐퍼), 스프링 3가지로 나뉜다. 스프링은 바퀴를 타고 올라오는 진동을 꿀떡 삼킨다. 쇼크 업소버는 반발력으로 통통 튀는 스프링의 진동을 상쇄시킨다. 팔을 뜻하는 암은 서스펜션의 구조를 결정짓는다. 암 구성과 구조에 따라 맥퍼슨 스트럿, 더블위시본, 리지드 방식으로 나뉜다.
토요타 신형 캠리는 앞 스트럿, 뒤 듀얼 스트럿 방식을 갖췄다. 스트럿은 가장 널리 쓰는 서스펜션 가운데 하나다. 미국 포드의 기술자 E. 맥퍼슨이 처음 개발했다. 위아래로 움직이는 로어 암과 쇼크 업소버, 스프링으로 구성된다. 구조가 비교적 간단하고 가볍다. 노면 추종성과 승차감도 좋다. 부피를 적게 차지해 공간을 활용하기도 좋다.
서스펜션은 차의 움직임 특성을 좌우한다. 각 부품의 각도와 길이에 따라 성격이 달라진다. 해당 업체의 노하우가 가장 잘 드러나는 부품이다. 토요타 신형 캠리는 이전보다 스포티한 성격으로 다듬었다. 운전재미를 살리기 위해서다. 물론 서스펜션만 잘 세팅한다고 가능한 숙제는 아니다. 엔진과 변속기, 스티어링의 반응을 한층 민감하게 조율한 결과다.
33. 신개념 서스펜션과 고강도 차체 주행 안정성
차체 강성은 느낌이 아닌 수치다. 반면 운전감각은 숫자로 객관화하기 어렵다. 오감을 통해 파악할 수 있다. 감성의 영역이다. 그런데 둘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차체 강성이 대표적이다. 굳이 기술 제원을 확인할 필요도 없다. 운전자가 단박에 느낀다. 손아귀와 엉덩이, 등받이를 통해 전달되는 느낌이 예사롭지 않다. 움직임의 마디가 단호하고 결기 넘친다.
악수 한 번 해보고 그 사람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잘 다져진 차체는 사소한 단서로 눈치 챌 수 있다. 설령 전문가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가령 스티어링 휠을 감아 챌 때 앞머리의 움직임이 대표적이다. 강성이 뛰어난 차체는 입력과 반응의 간격이 무척 가깝다. 내 몸 일부를 다루는 것처럼 빠릿하게 움직여 준다.
만약 생각처럼 움직여주지 않으면 짜증이 난다. 왜 그런지 딱히 꼬집어 말하기도 어렵다. 이 같은 불만이 쌓여 스트레스로 남는다. 꼭 운전이 아니더라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반대로 의도와 결과가 맞아 떨어지면 기분이 좋아진다. "운전의 즐거움"은 스포츠카의 전유물이 아니다. 기본기를 제대로 다진 차라면 장르와 상관없이 꿈꿀 수 있는 특권이다.
"운전의 즐거움"은 비단 코너링 때 몸놀림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시속 100㎞ 이상으로 달릴 때 묵직하게 노면에 붙어 있는 느낌, 차선을 바꿀 때 머리부터 꽁지까지 일사 분란한 움직임 등 운전하는 순간순간 느낄 수 있다. 크고 작은 경험에서 신뢰를 쌓고 나면 차를 믿을 수 있다. 안심하게 된다. 그러면 여유가 생긴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토요타 신형 캠리는 벌써 7세대다. 정형화하기 힘든 가치를 다듬어 온 역사다. 심지어 속도방지턱만 타고 넘어도 라이벌과 다른 점을 느낄 수 있다. 차체를 흔드는 진동의 수위가 낮다. 그리고 꽁무니를 터는 진동이 사라지는 시간도 가장 빠르다. 차체 강성과 서스펜션은 아주 심오한 세계다. 하지만 그 결과는 이처럼 쉽고 간단하다.
34. 속도감응형 전동식 파워스티어링
한 손으로 턱을 괴고 남은 한 손으로 운전대 빙빙 돌리는 모습이 새삼스럽던 시절이 있었다. 파워스티어링이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요즘은 경차부터 트럭까지 파워스티어링 달지 않은 차를 보기 어렵다. 파워스티어링은 유압을 이용해 힘을 보탠다. 유압은 엔진의 힘을 빌린다. 공회전 때 스티어링 휠을 감으면 엔진회전수가 미세하기 떠는 이유다.
파워스티어링은 일찍이 20세기 초 고안됐다. 1900년 미국에서 기계식 파워스티어링과 관련된 특허가 등장했다. 그로부터 반세기 지난 1951년 크라이슬러 임페리얼이 "하이드라 가이드"란 이름으로 파워스티어링을 선보였다. 일반인이 살 수 있는 양산차 가운데 최초였다. 파워스티어링에도 세대가 있다. 엔진의 힘을 빌리는 유압식은 점차 퇴출되는 분위기다.
그 다음 세대는 전기유압식이다. 전기모터로 유압을 발생시켜 힘을 보탠다. 1965년 미국에서 머큐리 파크레인이란 차가 처음 달고 선보였다. 이후 토요타 MR2, 폭스바겐 3세대 골프 등이 해당 방식을 도입해 썼다. 지금도 많은 차가 전기유압식 파워스티어링을 단다. 파워스티어링의 최신 세대는 전동식이다. 유압 없이 전기모터로 직접 힘을 보탠다.
전동식 스티어링의 장점은 여러 가지다. 우선 유압식처럼 엔진의 힘을 갉아먹지 않는다. 그만큼 연비에 도움이 된다. 당연히 이산화탄소 배출도 유압식보다 낮다. 또한 스티어링 휠을 조작할 때만 작동한다. 부피도 작다. 그만큼 차를 설계할 때 공간의 여유가 있다. 부품 수도 적다. 따라서 정비가 수월하다. 무게가 가벼워서 차체의 군살을 뺄 때도 요긴하다.
파워스티어링 오일을 갈 필요도 없다. 폐유로 인한 오염과도 작별을 고했다. 차의 속도에 따른 답력 변화 등 부가 기능을 담기도 좋다. 나아가 조작감이 섬세하다. 토요타 신형 캠리도 전동식 파워스티어링을 쓴다. 위와 같은 장점은 기본이요, 조작감까지 민감하게 다듬었다. 이번 캠리가 유독 스포티한 감성을 강조한 데는 스티어링에 대한 자신감이 뒷받침됐다.
35. 제동성능을 높인 ABS
ABS는 제동을 돕는 안전장비다. "Anti-lock Brake System"의 머리글자 모음인데, "잠김 방지 브레이크" 정도로 풀이할 수 있다. 여기서 잠겨선 안 될 대상은 바퀴다. 급제동 때 바퀴가 완전히 잠기면 차를 조종하는 게 불가능해진다. 타이어가 노면을 놓친 상태기 때문이다. 따라서 급제동하면서 장애물을 피할 수도 없다. 제동거리 역시 늘어난다.
ABS는 1초에 6∼7번 정도 브레이크를 밟고 뗀다. 따라서 바퀴가 잠기지 않고 멈출 수 있다. 엄밀히 따지면 바퀴가 잠겼다 풀리기를 반복한다. 다만 잠기는 순간이 워낙 짧을 뿐이다. ABS는 원래 항공기에서 쓰던 장비다. 1952년 던롭이 항공기용 기계식 ABS를 처음 개발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내구성이나 가격 때문에 승용차에 얹기 힘들었다.
ABS는 크게 휠 스피드 센서와 ECU(전자식 제어장치), HCU(유압 제어장치) 등으로 구성된다. 휠 스피드 센서는 바퀴의 회전속도를 감지해 ECU로 전한다. 센서는 발전기와 비슷하다. 속에 자석과 코일이 있다. 바퀴가 회전하면 전압과 진폭에 변화가 생긴다. 이 정보로 회전속도를 파악한다. 각 바퀴마다 센서를 갖춘 경우 4센서 ABS로 분류한다.
ECU는 ABS의 두뇌다. 휠 스피드 센서가 보내온 정보를 토대로 차의 실제속도와 휠의 회전속도 차이를 파악한다. "슬립률"이라고 한다. 정지상태에선 0%, 달리다 바퀴가 완전히 잠긴 경우가 100%다. 타이어는 슬립이 전혀 없을 때보다 10~30% 있을 때 접지력이 가장 뛰어나다. 따라서 ECU는 급제동할 때 "슬립률"이 범위 안에 들어가도록 제어한다.
HCU는 제동력을 조절한다. 여기에서 각 휠로 뻗어가는 브레이크 파이프 개수에 따라 3~4채널로 나뉜다. 토요타 뉴 캠리 ABS는 4채널 4센서 타입의 ABS다. 한편, ECU는 매번 시동 건 이후 스스로 센서를 진단한다. 이때 "위-잉"하는 작동음이 들릴 수 있다. 만약 ABS에 문제가 생기면 경고등을 띄운다. 물론 그래도 기본적인 브레이크 성능에는 이상이 없다.
36. 스마트한 제동력의 EBD
자동차의 무게배분은 움직이는 이상 끊임없이 변한다. 가속할 땐 뒤로, 제동할 땐 앞으로 쏠린다. 코너링 때는 좌우로 기울어진다. 서스펜션이 춤추는 물리력을 어느 정도 상쇄시킨다. 하지만 중력을 받는 지구 위를 달리는 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브레이크 역시 마찬가지다. 차의 움직임에 맞춰 변화를 담을 수 있어야 한다.
가령 급제동하면 차가 앞으로 쏠린다. 관성 때문이다. 특히 보닛에는 자동차 단일 부품 중 가장 무거운 엔진이 있다. 예전 브레이크는 이처럼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린 상태에서 제동력을 네 바퀴에 똑같이 나눴다. 그러면 상대적으로 가벼운 뒷바퀴가 잠긴다. 당연히 제 역할을 할 수 없다. 그래서 고안된 장비가 EBD(전자식 제동력 분배)다.
요즘 신차에 달리는 4채널 4센서 ABS는 대개 이 기능을 기본으로 포함한다. EBD는 상황에 따라 제동력을 각 바퀴로 적절하게 나눈다. 특히 앞뒤 바퀴 제동력에 변화를 준다. 앞쪽으로 진행하다 급제동하는 경우 EBD는 무게가 잔뜩 실린 앞바퀴 쪽에 제동력을 더 옮긴다. 그 결과 네 바퀴 제동력의 균형을 고르게 맞출 수 있다.
EBD는 ABS의 유압 시스템을 그대로 쓴다. 속도와 바퀴 회전 차이를 감시해 개입할 시점과 정도를 결정하는 것 또한 비슷하다. 따라서 ABS에 약간의 제어시스템만 보충해 완성할 수 있다. EBD는 작동 시점을 파악하기 어렵다. 결과 또한 너무 자연스럽다. 한쪽으로 쏠리거나 꽁무니 삐쭉거리는 느낌 없이 안정적으로 멈춰선다.
토요타 신형 캠리 브레이크에는 EBD 기능을 포함한 4채널 4센서 ABS가 기본이다. 따라서 급제동이 필요할 때 운전자가 해야 할 일은 간단하다. 브레이크 페달만 냅다 때려 밟으면 된다. 그러면 시스템이 바퀴가 잠기지 않게 알아서 제동력을 끊어준다. 아울러 승차인원이나 짐 무게를 감안해 제동력을 적절한 비율로 나눈다. 이래서 뭐든 첨단이 좋다.
37. 긴박한 순간 압력을 강하게 만들어 주는 브레이크 어시스트
의식과 행동이 늘 일치하는 건 아니다. 급제동이 대표적이다. 의외로 100% 제동력을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유는 단순하다. 브레이크 페달을 완전히 꾹 밟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다. 밟는 힘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여성만 실수하는 건 아니다. 남성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브레이크 페달을 끝까지 밟지 않았다는 사실을 스스로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ABS 달린 브레이크로 급제동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페달 부러뜨릴 기세로 짓이겨 밟으면 된다. 그래야 제동력을 에누리 없이 쓸 수 있다. 그런데 생각처럼 쉽지 않다. 급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하기 때문이다. 또한 운전하면서 급제동을 경험할 일이 드물다. 운전학원에서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브레이크 작동원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이기도 하다.
"브레이크 어시스트"는 운전자의 실수를 막는 장비다. 센서는 운전자가 브레이크 페달을 밟는 속도와 압력을 감시한다. 평소보다 긴박한 움직임을 눈치채면 급제동이라고 판단한다. 가령 운전자가 페달을 충분히 밟지 못해 70%의 제동력밖에 쓰지 못하면 "브레이크 어시스트"가 남은 30%를 보완한다. 그 결과 100%의 제동력을 낸다.
몇 년 전 대형 세단을 몰고 테스트했다. 시속 80㎞로 달리다 예고 없이 튀어나오는 장애물을 신호 삼아 급제동했다. "브레이크 어시스트"가 없는 차는 34m를 더 가서 멈췄다. 그러나 "브레이크 어시스트"가 있으면 28m 지점에 섰다. 6m면 보행자 생명을 좌우할 거리다.
"브레이크 어시스트" 효과는 통계로도 입증됐다. 독일 통계청이 발표한 1998~2000년 독일 내 교통사고 통계가 좋은 예다. "브레이크 어시스트"를 갖춘 차의 후방추돌 사고율이 8%나 떨어졌다. 보행자 사고도 13%나 줄었다. 토요타 신형 캠리는 "브레이크 어시스트"를 기본 장비로 갖췄다. 그래서 누구나 카레이서처럼 브레이크를 100% 활용할 수 있다.
38. 바퀴의 스핀과 미끄럼을 방지하는 TRAC
종종 영화에서 스포츠카가 뭉게뭉게 연기 피우며 튀어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구동력이 마찰력을 넘어서면서 바퀴가 헛돌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고성능 차에 대한 장밋빛 환상을 부채질하는 장면이다. 그런데 사실 빠른 가속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한, "트랙션 컨트롤(Traction Control)" 없다고 동네방네 자랑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트랙션 컨트롤"은 자동차 바퀴를 움직이는 구동력을 제어한다. 영어 몇 글자만 따서 "TRAC"로 표기하기도 한다. 바퀴가 헛도는 것을 막기 위해 고안된 "트랙션 컨트롤"은 ABS와 기술적으로 겹치는 부분이 많다. 각 바퀴의 회전 차이를 감지해 작동하는 개념부터 같다. 실제 둘은 비슷한 시기 개발돼 나란히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트랙션 컨트롤"은 헛바퀴를 감지하면 곧장 개입한다. 운전자의 명령을 무시한다. 설령 가속 페달을 깊숙이 밟아도 엔진이 들이킬 공기나 불사를 연료를 제한한다. 그러면 출력이 시들해진다. 자연스레 속도가 떨어진다. 그 결과 바퀴가 접지력을 되찾는다. 최신 "트랙션 컨트롤"은 브레이크와 디퍼렌셜까지 종합적으로 제어한다. 그래서 코너링 성능마저 높인다.
엔진 힘을 다독이는 "빼기" 개념을 넘어선 결과다. 한층 영리해졌다. 이를 테면 미끄러지는 바퀴에만 브레이크를 건다. 나아가 스핀 중인 바퀴의 구동력을 반대편 바퀴로 옮기기도 한다. 자갈길 같은 데선 바퀴가 헛돌더라도 구동력을 제한하지 않아 신속한 탈출을 돕는다. 코너링 땐 스티어링 휠을 비튼 각도와 뒷바퀴 속도 차이로 선회반경을 파악해 작동한다.
토요타 신형 캠리 역시 "트랙션 컨트롤"을 갖췄다. 따라서 살얼음 낀 노면에서도 편안하게 가속페달을 밟을 수 있다. ABS는 작동 유무를 눈치 챌 수 있다. 브레이크 페달로 규칙적인 진동을 전하기 때문이다. 반면 "트랙션 컨트롤"은 은밀하게 작동한다. 그런데 공통점도 있다. ABS와 "트랙션 컨트롤" 모두 될 수 있으면 작동할 일 없는 편이 좋다.
39. 제동력과 엔진의 출력을 자동조절 VSC
ABS와 "트랙션 컨트롤"은 차의 안전성을 크게 높였다. 그런데 한계도 있었다. 굽잇길에서 뾰족한 효과를 보기 어려웠다. 그래서 태어난 게 "주행안정장치"다. "차체자세제어장치"라고도 부른다. 업체마다 이름은 제 각각이다. 토요타는 "차체안정성제어"의 영어 이니셜을 따서 "VSC"라고 부른다.
자동차 코너링 특성은 뉴트럴 스티어(중립)와 언더스티어, 오버스티어로 나뉜다. 중립은 운전자가 스티어링 휠을 꺾은 만큼 차가 회전하는 것을 말한다. 반면 운전자 의도보다 궤적이 바깥으로 벗어나면 언더스티어다. 또한, 꽁무니가 미끄러지면서 코너 안쪽을 파고들면 오버스티어다. 가장 이상적인 건 뉴트럴. 하지만 대개 언더나 오버스티어 경향을 보인다.
언더스티어는 그나마 운전자가 손쓸 여지가 있다. 속도를 줄여 앞바퀴가 접지력을 찾을 때까지 기다리면 급한 불은 끌 수 있다. 물론 공간이 충분해야 한다. 반면 오버스티어는 스티어링 휠을 반대로 꺾는 카운터 스티어를 써야한다. 제어가 까다롭다. 대부분 당황해서 스티어링 조작이 과해진다. 그러면 관성이 누적돼 순식간에 차가 돌 수 있다.
"주행안정장치"는 이런 상황에서 언더스티어나 오버스티어를 예방하는 "수호천사"다. 브레이크를 개별적으로 제어해 위기를 모면한다. 가령 언더스티어가 나면 코너 안쪽 바퀴에 제동을 건다. 오버스티어가 발생할 때는 브레이크로 코너 바깥쪽 바퀴를 움켜쥔다. "주행안정장치"는 이처럼 뒷바퀴 좌우를 개별적으로 제동하는 장치로 출발했다.
이후 네 바퀴 각각 따로 제동하는 시스템으로 진화했다. "주행안정장치"는 여러 센서의 정보를 토대로 이상적인 궤적과 실제 진행을 비교한다. 여기에 차이가 생기면 엔진의 출력을 다독이고, 각 바퀴의 브레이크를 따로 제어한다. 토요타 신형 캠리는 "VSC"로 무장했다. 항상 감시의 눈초리 번뜩이는 "수호천사"가 있으니, 안심하고 몰아도 된다는 이야기다.
40. 열악한 주행환경을 고려한 VSC-off 스위치
최신 "주행안정장치"는 운전자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영리하다. 1초를 몇 십 조각 이상으로 나눠 쓸 만큼 부지런하다. 그만큼 두뇌회전이 빠르다. 반응 또한 신속하다. 또한, 정교하다. 가속과 브레이크 페달을 각 바퀴마다 따로 조작하면서도 실수하는 법이 없다. 입력된 대로 정확히 수행한다. 이런저런 사정 봐주는 법도 없다. 망설임 없이 단호하다.
그러다 보니 종종 "주행안정장치" 때문에 난처한 상황을 겪을 수도 있다. 진창길이나 눈 쌓인 곳에서 빠져 나올 때가 좋은 예다. 구동바퀴가 동시에 헛돌면 "주행안정장치"는 구동력을 차단한다. 움켜 쥘 접지력이 남아있지 않은데, 더 이상 바퀴를 굴린들 의미가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난감해진다. 탈출 시도조차 못한 채 주저앉을 수 있다.
"주행안정장치"는 이처럼 운전자가 털끝만큼도 위험해지는 상황을 용납 못한다. 따라서 차를 능숙하게 다룰 능력 있는 운전자는 거추장스럽게 느낄 수도 있다. 주말 트랙데이 때 적당히 타이어를 문질러가며 달리고 싶을 때가 대표적이다. "주행안정장치"는 스릴이나 재미를 위험과 똑같이 간주한다. 그래서 운전자가 한계를 넘볼 여지조차 주지 않는다.
토요타 신형 캠리는 "주행안정장치(VSC)"를 인위적으로 끌 수 있다. 그러면 진창에서 탈출할 때 더 이상 구동력을 차단하지 않는다. 바퀴로 힘차게 박차 벗어날 수 있다. 100% 성공할 수 있다고 아무도 장담 못한다. 하지만 적어도 시도해볼 기회는 주어지는 셈이다. 트랙에서 역시 마찬가지다. 그립과 슬립의 미묘한 경계를 마음껏 탐닉할 수 있다.
"주행안정장치"의 빗장이 풀리는 순간, 판단과 대응의 주도권은 운전자에게 넘어온다. 자유엔 책임이 뒤따른다. 따라서 "주행안정장치"를 끄는 건 아주 제한적인 경우에만 시도하는 게 좋다. 손수 그 역할을 대신해 보면 깨닫게 된다. 그동안 "주행안정장치"가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 일을 그토록 쉽고 은밀하게 해치웠는지. 그건 노련한 고수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김기범 자동차 칼럼니스트/자료협조 한국토요타
▶ [특집]토요타 캠리, 103가지 변화의 실체-1편▶ [특집]토요타 캠리, 103가지 변화의 실체-2편▶ [특집]토요타 캠리, 103가지 변화의 실체-3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