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자동차산업을 뒤흔들 소프트웨어 전쟁

입력 2012년04월15일 0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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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르는 바퀴 위의 새로운 전산시스템 오토사 4.0

 최근 기아자동차가 K9을 BMW 7시리즈와 비교하면서 "효율은 높되 가격은 낮다"고 발표해 말이 많은 모양이다. 그러나 비교할 때는 비교대상과 비교조건이 같거나 적어도 비슷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 기아차 K9와 BMW 7시리즈 비교는 상식과 다소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기아차가 K9과 비교한 차종은 BMW 6기통 7시리즈인데, 아직 K9이 시판되지 않았기에 일단 비교가 쉽지 않다. 굳이 하자면 BMW도 곧 출시될 차와 비교하는 게 논리적으로 맞다. 검증됐거나 혹은 공인된 기관이나 단체의 평가가 아닌 기아차 자체 평가라면 더더욱 말이다.

 비교는 보통 같은 체급, 그리고 같은 배기량으로 하는 게 일반적이다. 3.8ℓ K9 엔진과 BMW 3.0ℓ 엔진을 비교한 것은 일단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마케팅을 겨냥한 자체 평가라는 의심을 받아도 할 말이 없다.

 기아차 K9에는 여러 신기술이 들어있다고 소개돼 있다. 신기술을 살펴보니 유럽 프리미엄 차종에선 이미 오래전부터 상용화 된 게 대부분이다. 그동안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을 뿐 신기술로 삼기에는 곤란하다. K9이 품질과 가격 그리고 효율에서 나름대로 경쟁력 있다고 선전하는 차원이면 이해못할 바도 아니지만 기아차가 국내 소비자를 너무 깔보는 처사가 아닌가 싶다. 게다가 BMW 7시리즈를 모방했다는 목소리가 많은데도 BMW와 경쟁할 만하다고 하는 것은 도가 한참 지나쳤다. 

 K9의 신기술은 이미 국내 여러 매체를 통해 잘 소개돼 있으니 설명은 생략한다. 그렇다면 곧 출시될 BMW 7시리즈에는 어떤 신기술이 소개되는지 살펴봐야 한다. 지난 연말 발표된 BMW 7시리즈에는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새로운 전산시스템이 들어 있다. 이름하여 "오토사(AUTOSAR : AUTomotive Open System ARchitecture : 개방형 자동차표준소프트웨어 구조) 4.0" 시스템이다. 오토사는 복잡한 여러 전자제어시스템을 통합하고, 표준화한 개방형 자동차 소프트웨어다. 
 

 오토사의 개방형 소프트웨어구조 4.0을 간단하게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현재 자동차에는 50여개 이상의 ECU(Electric Control Unit)가 들어있다. BMW 7시리즈에는 통상 65개에서 70여개의 전자제어유닛들이(ECU) 장착돼 있다. 그러나 오토사 개방형 소프트웨어구조 4.0이 적용된 7시리즈에는 모두 6개의 ECU가 장착됐다. ECU 숫자를 무려 열 배 이상 줄였다. 
 
 일반인에게 그나마 잘 알려진 대표적인 ECU는 엔진 컨트롤 유닛이다. 자동차에는 엔진 제어유닛 말고도 수많은 전자제어유닛(ECU)이 존재한다. 기어박스 제어시스템, 에어백 제어시스템, 잠금 및 안전장치시스템, 텔레매틱스 정보와 엔터테인먼트가 결합한 엔포테인먼트시스템 등 대략 최소 50에서 150개에 이르는 각종 전자제어유닛(ECU)이 장착돼 있다. 하이브리드나 전기자동차에는 더 많은 ECU가 필요하다. 간단하게 말하면 이 모든 ECU를 하나로 통합해서 사용하자는 게 오토사의 핵심이다. 통합 소프트웨어구조로 표준화하자는 것인데 물론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지난 2003년 BMW, 벤츠, 보쉬, 지멘스, 콘티넨탈 등이  자동차 전자제어 소프트웨어 개발을 위해 파트너십을 형성했다. 이후 토요타, 푸조, 포드, GM 등이 가세하면서 자동차 미래 소프트웨어 전쟁을 위한 연합군을 형성했다. 현대차도 뒤늦게 피아트, 타타, 르노 등과 함께 연합군에 가세했다. 서로 다른 회사의 프로그램 언어로 구성돼 있는 ECU를 연결해줄 수 있는 미들웨어(Middleware)와 잠재적 기능 버스(VFB: Virtual Funtional Bus)는 필수다. 오토사연합군들은 일단 오토사에 가입하지 않은 적군을 상대로 싸우지만 궁극적으로는 오토사의 기본 플랫폼이 마련되면 같은 연합군도 치열한 경쟁을 하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오토사의 플랫폼이란 결국 공정하고 치열한 경쟁을 위한 규칙이 되는 셈이다. 
 

 오토사 4.0은 2005년 버전 1.0이 등장한 후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해 왔다. BMW가 최초로 적용했지만 올해 폭스바겐, 벤츠 등도 신차에 활용해 출시할 예정이다. 오토사 연합군들의 소프트웨어 전쟁이 시작된 셈이다.
 
 미인 대회에 참가한 여인들이 모두 같은 수영복을 입으면 각자 타고난 고유의 아름다움만 갖고 경쟁한다. 소프웨어도 마찬가지다. 오토사 안에서 벌어지는 전쟁이지만 각자 고유의 다양한 응용 소프트웨어가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현대차가 "오트론"이라는 전자제어 전문회사를 설립한 배경이기도 하다. 
 
 이처럼 복잡하고 다양한 응용프로그램을 켜켜히 쌓아야 하는 소프트웨어는 몇몇 회사나 천재들에 의해, 혹은 수직적인 명령이나 밀어 붙이기식으로 단시간에 개발되기보다 특화된 여러 중소기업이 모여 창의적인 협동과 기술적인 조화를 이루면서 장시간에 걸쳐 수행해 나가야 한다. 오토사라는 사각의 링 위에 올라선 현대차도 덩치와 맷집으로만 버티기엔 세계 자동차시장이 너무 살벌한 곳으로 변모하고 있다. 
 
 따라서 자동차 엔지니어링 기술과 연결할 수 있는 부분네트워킹(Partial Networking) 소프트웨어는 물론 이더넷 지원 아래 오토사의 개방형 표준소프트웨어구조의 기술 개발만이 미래 자동차전쟁에서 유효한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절대 잊어서는 안된다. 자동차 소프트웨어가 제품력을 좌우하는 시대에서는 말이다. 
 
베를린=이경섭(자동차 칼럼니스트)  kslee@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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