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과 유럽의 자동차 "플리트 마켓(Fleet Market)" 경쟁이 치열하다. 자동차 수요가 정체된 상황에서 경쟁이 플리트 마켓으로 옮겨가는 중이다. "플리트(Fleet)"는 원래 영국 런던 템즈강으로 흘러드는 지류, 플릿강가에 1737년 형성된 시장이 어원이다. 이른바 대량 구매를 하는 "회사 대 회사"의 거래를 말한다.
독일에서 플리트 비율은 결코 적지 않다. 플리트 마켓, 다시 말해 관청이나 회사차 등 사업자용의 거래대수는 전체 시장에서 51%를 차지하고 있다. 렌터카, 리스, 택시, 물류운송 사업자 등의 구입량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특히 다국적 리스사나 렌터카회사가 연간 구입하는 자동차는 적게는 수백 대에서 많게는 수 천대에 달한다.
이런 플리트 시장에서 현대자동차 i30나 i40 같은 유럽형 차종의 인기가 높다. 지난해 현대차는 7,392대를 플리트 시장에 판매, 무려 59% 늘렸다.이 사실은 토마스 디츠 현대자동차 독일 법인 마케팅 담당이 독일 유력지 한델스 블라트와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실제 독일 내 현대차의 판매량 가운데 60%가 플리트 거래다.
플리트 판매는 2000년대 중반 토요타도 효과를 본 적이 있다. 독일에서 주력했던 게 바로 플리트 판매였고, 어느 정도 성공을 했다. 폭스바겐, 벤츠에 이어 BMW 등도 뒤 이어 뛰어 들었고, 이제는 체코의 스코다(Skoda), 스페인의 세아트(Srat) 등도 가세했다. 물론 우리의 현대 기아차도 빠지지 않는다. 기아차는 최근 "HLA(Hannver Leasing Automotive)"라는 리스회사와 계약을 추진중이다. 비즈니스가 성사되면 현재 약 3,700대 규모의 플리트 판매가 2017년경 3만대로 상승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현대기아차의 독일 내 마케팅 전략은 매우 공격적이다. 대표적인 게 보증수리다. "5년 혹은 7년" 기간에 "운행거리 무제한", 때로는 15만㎞의 무상보증을 해준다. 여기에 동급의 독일차보다 20% 이상이 저렴한 가격도 강점이다. 대량 구입이 전제되는 플리트 시장에선 무엇보다 저렴한 가격과 장기간 보증수리가 큰 장점이 될 수밖에 없어서다.
게다가 현대기아차는 플리트 회사를 위해 별도로 43개의 "플리트 비즈니스 서비스 센터"를 운영 중이다. 올해 연말까지 70여개로 늘린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플리트 비즈니스센터는 렌터가, 리스차는 물론 영업용 차를 위해 운영된다.
한국산 자동차의 플리트 선전에 위협을 받는 곳은 폭스바겐이다. "히든 챔피언"으로 불리는 독일 내 중소기업의 회사차 구매에서 현대기아차의 경쟁력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독일 플리트 시장 구매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만큼 비중이 막강하다. 참고로 "히든 챔피언"이란 경영학자 헤르만 시몬 교수가 그의 저서에서 기술력과 마케팅에서 세계 1위의 중소기업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해 일반화 된 단어다.
플리트 시장에서 일정 판매량을 확보해 점유율을 높이면 자동차회사에 돌아오는 장점도 적지 않다. 첫째는 단기간에 높은 매출 상승이 가능하고, 둘째는 빠른 시간 내에 제품과 기업이미지를 동시에 알릴 수 있다.
반면 실패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짧지 않은 보증기간이 자칫 미래 수익의 발목을 잡을 수 있고, 원할한 애프터마켓 부품공급라인이 마련되지 않아 중고차시장에서 활력을 잃을 수 있다. 중고차 가격이 하락하면 제품과 기업은 생명력을 잃는 것과 다름없다. 의외로 몰락은 순간임을 잊어서는 결코 안 된다.
무엇보다 경쟁자들이 녹녹치 않다. 현대나 기아가 타깃으로 삼은 경쟁자는 벤츠나 BMW 같은 독일 프리미엄 회사지만 유럽에선 생각이 다르다. 독일에서 일반인들이 현대차의 경쟁자로 지목하는 대표적인 브랜드는 스페인의 세아트와 체코의 스코다, 그리고 루마니아의 다시아(Dacia)다.
현대나 기아가 짭잘한 재미를 보는 가격 경쟁력은 잠재적인 후발업체도 사용이 가능하다. 실제 우리에게 짚시와 드라큐라로 유명한 루마니아에서 생산되는 르노-닛산의 자회사 다시아 차종은 독일에서 정말 저렴하다. 로마 사람들이 산다는 "로마니아"의 인건비가 저렴한 탓이다. 르노-닛산의 품질이 기반되는 만큼 가격은 얼마든지 추격당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만큼 현대기아차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는 얘기다. 물론 그래서 새로운 브랜드 전략을 내놓았을 것이다. "리브 브릴리언트" 브랜드 전략, 유럽에서도 잘 먹혀야 될텐데...
베를린=이경섭 자동차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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