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측량한다면?

입력 2012년06월07일 0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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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아산 장영실묘


 삽교천방조제를 달려 아산시내로 향하던 걸음이 멈춰선 건 지방도 한쪽에 서 있는 이정표 때문이었다. "세계 최초의 측우기 발명 장영실 묘소". 혹 잘못 본 건 아니겠지, 장영실의 묘소라니. 조선 세종 때의 천재과학자 장영실은 찬란한 과학문명으로 "세종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위대한 업적과 달리 생몰연대가 미상인 역사적 인물이다. 그래서 숱한 작가들이 세종과 장영실을 둘러싼 권력관계와 그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작품으로 그려내고 있다. 


 얼마 전 무대에 올랐던 이윤택 연출의 연극 "궁리"도 그 중 하나다. 중국계 귀화인과 기녀 사이에 태어나 부산의 관노비였던 장영실은 세종을 도와 수많은 과학기구와 활자, 심지어 악기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세종 24년 임금이 타고 갈 수레를 잘못 만들어 태형 80대를 맞고 쫓겨났다는 기록이 끝이다.
 
 이후 역사 속 어디에서도 장영실을 찾아볼 수 없다. "왕의 총애를 받아 노비에서 종3품 벼슬에 오른 인물이자 당대 최고의 과학기술자가 왜 하루아침에 역사에서 사라졌을까." 연극 "궁리"가 던지는 질문이다. 


 역사 속에서 실종된 그 장영실의 무덤이 이 곳에 있다니. 차를 돌려 이정표를 따라 인주면 문방리로 향했다. 좁은 길은 마늘밭과 감자밭, 금방 모를 낸 논 사이로 구불구불 이어진다. 마을의 집들은 낡고 허름해 폐가처럼 보였으나 빨래가지가 널려 있다. 집앞 화단에도  막 자라긴 했으나 씨를 뿌려 피운 꽃들이 가득하다.   


 이정표가 사라진 마을에서 길을 잃고 이리저리 헤매다가 자전거를 타고 오는 촌로를 만났다. 꼬장꼬장한 인상의 얼굴이 언뜻 "자긍심 가진 장영실의 후손"처럼 느껴져 기쁘게 말을 붙였다. 장영실의 묘소를 찾아왔는데 찾지 못해 헤매고 있노라고.
 
 이런 경우 열에 아홉은 몸소 앞장서 길안내를 하거나 지나치게 친절한 설명으로 발길을 붙잡기가 일쑤이건만, 순간 촌로의 표정이 어이없어하는 듯했다. 아니 왜 저런 표정을.....자전거에서 내린 노인은 질문자의 아래위를 잠자코 훑어보더니 한참만에야 이렇게 되물었다.  

 "그 가짜 묘?"
 "예? 가짜라구요? 그럼 진짜는 어딨나요?"

 이렇게 말귀를 못 알아듣나 하는 표정으로 다시 한 번 아래위를 훑어보더니 일갈한다.

 "진짜가 있으면 가짜를 왜 만들겠어. 하기사, 세월 가면 저 가짜가 진짜로 둔갑하겠제."    

 그런 말을 듣고 찾아온 때문인지 산자락에 자리한 장영실의 묘역은 마치 세트장처럼 느껴진다. 2기의 봉분은 위아래로 조성돼 있는데, 위에 있는 게 시조인 장 서의 묘이고, 아래의 것이 장영실의 가묘다. 



 묘역에 있는 안내문에 따르면, 아산 장 씨의 시조인 장 서는 중국 송나라 때 사람으로 고려 예종 때 이 곳 아산에 정착한 후 득성했다고 한다. 시조 묘소는 오랜 세월 여러 차례 실전위기가 있었으나 고종 때 봉심(奉審)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그 예손들이 아산에 살았다. 그 후 1967년 전국의 아산 장 씨 후손들이 묘소 주변을 정화하고 재실을 건립해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그러나 조상을 기리고자 하는 후손들의 마음이 빚어낸 넓은 묘역을 둘러보는 심정은 내내 불편했다. 가묘로라도 조상의 흔적을 만들어야만 했던 것일까. 그의 무덤이 없다고 해서 위대한 과학자 장영실의 흔적이 역사 속에서 사라지는 건 아닐진데....씁쓸한 마음으로 발길을 돌리는데 있는 그대로의 푸름을 내보이는 주변 논밭이 더없이 어여쁘다.



*맛집
 
 문방리에는 식도락가들이 즐겨 찾는 인주 장어촌이 자리하고 있다. 장어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들이 2,30년 전부터 맛집촌을 형성해왔다 아산정(041-533-9955)을 비롯해 옛날돌집장어집(533-6700), 꽃동네원조장어(533-2561), 숲속장어(533-7756) 등 소문난 맛집이 즐비하다.

*가는 요령

 서해안고속도로 서평택이나 송악 나들목에서 빠져 아산반망조제를 넘거나 삽교천방조제를 건너면 아산시 인주면이다. 이곳에서 현대자동차 방면으로 가다보면 문방리 삼거리에서 왼쪽 길옆 장영실 묘소를 알리는 이정표가 보인다.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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